360번 버스에서
그런 적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어딜가도 늘 똑같은 위치에 보이는 해와
너무 높아 잠시 가려지기만 하지 곧이어 몇 결음 더 걸으면 다시 보이는 같은 위치의 달.
모두가 달을 볼 때 하루의 마무리가 어떻게 끝나고 어떤 기분으로 바라보는지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우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달을 바라본다.
누군가에겐 그 달이 지겹게도 보이겠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인간의 삶은 한정적이기에 지금만큼은 늘 지겨운 일상이라고 여겼을지라도 나중에 평생 다시 뜨지 못할 눈을 감기 직전엔
지겹도록 보기 싫던 그 달이
지겹도록 보고 싶어질 그 달이 되어있을 것이다.
내 삶의 마지막 밤은 길어서 지겹길 바라고
그 순간에 가슴 한 켠에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자리하지 않길 바라며 우린 우리의 삶에서 우릴 힘들게 했던 것들과 귀찮게 했던, 상처줬던 것들을 모두 청산하고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용서한다고 다시 잘 지내야만 한다는 게 아니고 내 마음 편하게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 나더라도 마음 깊숙하게 쟁여뒀던 진심 어린 말들을 최대한 담백하게 전달해보는 것.
그래야 남은 삶을 살아가는 나도
눈을 감기 전에 나도
편할테니까.
비록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겨울 정도로 밉고 화가 나거 속상할지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감정적으로 반응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부드러웠으면 좋았을텐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