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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Jul 28. 2023

나는 22년차 1형당뇨인

젊은 사람이 벌써 당뇨야? 식습관이 아주 망가졌나보네, 운동도 안하고!

나는 3살 때부터 1형 당뇨 판정을 받았다. 

너무 어렸기에 아예 기억은 없다. 그러나 엄마는 의사선생님께서 오늘이 고비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병명도 모르고 뛰어다니던 우리 부모님은 여러 병원을 거듭해서야 내가 1형당뇨임을 알았다고 했다. 


지금처럼 펜 주사기가 아니던 시절,

혈당을 재며 엄마 아빠는 나에게 주사를 놓아 주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간호사처럼 약통에서 내가 맞을 만큼의 단위를 주사에 넣어주셨 나도 유치원때부터 딱딱한 케이스에 주사를 넣고 다니며, 점심을 먹은 후엔 화장실에 들어가서 주사를 맞았다.

이 사진과 같이 엄마는 매일 아침 일정 단위의 약물을 넣은 주사를 챙겨주셨다.


제 몸도 못가눌 어린 나이에 혈당 관리란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저혈당 쇼크가 와 쓰러졌다. 친구들은 놀리거나, 더 온정을 베풀거나, 그저 몸이 약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되자 위 사진처럼 진짜 주사가 아닌 펜 형식의 주사로 주사기가 바뀌었다. 바뀐 주사기에서는 주사 단위를 설정해서 주사를 맞을 때 드르륵 소리가 났다. 화장실 한 구석에서 주사를 맞던 나는 괜히 다른 소리로 오해받을까 마음을 졸였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기숙사 학교를 가게 되었다. 기숙사 학교에서는 대부분 간식이나 음식물 섭취가 엄격히 금지되었는데, 1형당뇨인인 나는 언제 어디서 저혈당이 찾아올지 몰랐으므로 옷장 깊숙히 초코파이를 넣어두는 것이 허용되었다. 


대학생 때는 중, 고등학생때보다 학교에 매여있지 않았다.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운동을 했다. 가방 한 켠에는 꼭 스니커즈 초콜릿 바가 있었다. 언제 저혈당이 올까, 너무 많이 먹어 고혈당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했다.


그러던 중 '연속혈당측정기'가 등장했다. 수시로 혈당이 날뛰는 1형당뇨인에게는 동앗줄 같았다. 이젠 매번 손가락 아파가며 채혈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는 내가 연속혈당측정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이렇게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인슐린을 맞으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삶이 이제는 익숙하다. 


어떤 날에는 극악한 확률로 1형당뇨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내가 특별한 사람 같고 으쓱하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나는 왜 주사를 맞지 않아서 또는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서 하루에 몇번이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가 슬퍼지기도 한다.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병에 대해 말해야 할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젊은 사람이 벌써 당뇨야? 운동도 안하고, 식습관이 아주 망가졌나보네!"

"당뇨에 좋은 음식이랑, 당뇨대체식 해서 먹어봐! 인슐린 맞지 말고!"

"어쩌다 그렇게 심각한 당뇨까지 왔어~ 젊은사람이!"


1형당뇨는 2형당뇨와 다르다. 나의 당뇨는 잘못된 식습관이라던가 운동부족, 유전으로 온 것이 아니라 자가면역질환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저 '당뇨'에만 꽂혀 나를 위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 앞에서 1형 당뇨에 대해 설명하는 자동응답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반면 1형 당뇨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확 열린다.


그니까 나는, 22년차 1형당뇨인이다. 그리고 부디, 사람들이 1형 당뇨에 대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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