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의 거리
H가 출장을 갔다. 아주 오랜만에 집을 비우는 셈이다. 함께 일을 하고 있는 탓에 시시콜콜한 것까지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 엉겨 붙은 채로 완벽한 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다. 그런 그가 떨어져 나갔으니, 나는 혼자 이곳에 남았다는 남모를 해방감을 조심스럽게 느끼고 있다.
어떤 날에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때가 있다. 일찍 퇴근을 했음에도 그가 집에 돌아와야만, 집에서의 안락함이 시작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안락함에 대한 추구ㅡ나의 불완전함을 메우려는 근본적인 욕구는 우리 둘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된다. 그 욕구가 조금만 흘러넘쳐도 우리 관계에는 브레이크가 작동되고, 삐끗하는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다. 조금씩 금이 간 바닥이 일순간에 출렁거리며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1미터 개인의 간격>(홍대선)이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거리를 1m로 정의하고 있다. "내 반경의 올바른 사용법은 반경 1미터의 경계가 단단한 고정불변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가장 기초적인 사용법은 함부로 확장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느린 속도로 상대의 경계에 다가서야 한다. 나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이해받기 원하는 나의 형태를 상대방에게 건네기 위해서는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조급해지는 순간 혹은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나누려다 보면, 어느새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상대를 발견하게 된다. 둘의 이름으로 안정적인 집을 꾸리고 셋 또는 넷을 꿈꾸는 마음은 내가 설정했던 인내의 선을 넘기자마자 조급함으로 돌변한다. 거기엔 느닷없이 등장하는 남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마음도 어려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방향을 잃고 이름 모를 곳에 정박된 채로 빛을 바란다.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은 종종 어긋난 채로 부산물이 되어 떠다닐 뿐이다.
H의 부재 덕분에 우리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일에만 집중했던 내 모든 관심을 거둬들이고, 나와 '나' 사이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까지의 항해에 대해 거리를 두고, 나의 세계에 대해 지긋이 바라본다. 무엇보다 나의 가능성을 투명하게 열어놓고 싶기에, 스스로 옭아맨 굴레 안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어른들의 말씀처럼,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맞춰져있을 우리라는 관계에 대해 너무 깊이 골몰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내가 지금 골몰하는 모든 경우의 수는 어차피 지금이라는 환경에만 철저히 맞춰져 있다. 3년 뒤에는 어떤 환경 안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 바라는 게 있다면, 함께하는 삶 안에 각자의 삶이 충실히 녹아있는 것이다. '함께'라는 것이 강요되지 않는 것, 철저히 자발적인 동행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 가능성은 완벽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엉겨붙었있던 내 몸에서 그의 몸이 떨어져나간 덕분에 생긴 빈 공간을 응시하면서 부풀게 되었는데, 처음엔 그 거리감각이 낯설겠지만 이내 조용한 해방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안다. 그와 얼굴을 맞대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가 다시 또 내 몸을 욱여넣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이 빈 공간에 대한 감각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 거리감각에 익숙해지는 것은 연습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와 물리적 거리를 두는 이 절대적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것이기에, 이 빈ㅡ틈 안에서 무언가 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