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위한 힐링] #32
오늘은 삼촌이 유난히 수다스러운 것 같다.
삼촌 : 너 혹시 백일 된 아이를 본 적이 있니?
선영 : 세미요, 왜 혜영 언니 딸 있잖아요. 세미 백일 사진도 봤구요, 그 맘 때 언니 집에 많이 놀러 갔었어요. 그때는 제가 결혼하기 전이었잖아요.
삼촌 : 아, 그래, 혜영이 딸 이름이 세미였지. 세미가 남이 아니고 언니 딸이니까 더 예쁘지?
선영 : 그럼요, 언니 모습이 나오는 걸요. 가족이라는 게 뭔지… 언니 애니까 그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삼촌 : 너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삼촌 : 너와 네 신랑을 닮은 아이가 나오면 기분이 어떨 거 같니? 백 일 짜리 통통한 녀석의 얼굴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네 남편의 얼굴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봐. 웃기지 않니?
푸근한 미소가 매력인 우리 남편의 얼굴이 통통한 아기의 몸통에 접합되는 그림이 떠올랐다. 웃음이 나왔다.
삼촌 : 백 일 된 녀석은 부모 속을 하나도 썩히지 않는단다. 그때까지는 별로 아프지도 않거든. 부모에게 반항하지도 않지. 물론 얄미운 짓도 안하고. 녀석이 우는 이유는 딱 세 가지란다. 기저귀를 적셨거나, 배가 고프거나, 아니면 졸리운 거지. 어찌나 단순한지… 먹고, 싸고, 자는 게 일이란다. 네가 젖을 물리면 씩씩 거리면서 빨다가 어느새 네 품에서 잠이 들 거다.
선영 : 백일 때까지는 애들이 별로 안 아파요?
삼촌 : 그래, 엄마 젖을 먹는 아이들이 그렇지. 엄마 젖에 아이들의 면역력을 튼튼하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거든. 어떤 여자들은 유방 모양 예쁘게 한다고 모유를 일찍 끊기도 한다던데, 너도 그럴테냐?
선영 : 아뇨, 저는 모유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먹일 거에요. 제 인생에서 모유가 나오는 때가 뭐 얼마나 되겠어요. 평생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닌데, 나올 때까지는 열심히 먹여야죠. 두 살, 세 살 때까지 먹이는 엄마들도 있던데요?
삼촌 : 하하, 그렇지만 아기 입에서 이가 솟아나면 그때는 이유(離乳)를 해야 되는 때란다. 이가 난다는 것은 이제 젖을 떼고 씹는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자연의 신호지.
선영 : 아, 그렇군요.
삼촌 : 너는 아기가 백일이 되면 백일 사진을 꼭 찍어라. 나는 우리 애들 백일 사진도 없고, 돌 사진도 없어. 그냥 내가 찍으면 되지, 뭐 하러 사진관에 가서 호들갑 떨면서 사진 찍느냐고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 다른 아이들 예쁜 옷 입고 재밌는 배경에서 찍은 백일 사진들 보니까, 그런 사진 한 장 남겨주지 못한 것이 아쉽더라.
삼촌 : 에이 참, 삼촌 정말 멋 없으셨다. 저는요, 백일 사진, 돌 사진 놓치지 않고 꼭 찍을 거에요. 아마츄어가 찍는 거하고, 프로가 찍는 게 어디 같겠어요? 백일 때가 애들이 제일 통통하고 예쁘대요.
어느 새 내 마음은 사진관에 가 있었다. 아이는 검은 색 줄무늬 티셔츠와 멜빵이 달린 진한 노란색 바지를 입었다. 작은 발에는 딱 맞는 깜찍한 운동화도 신었다. 머리에는 빵모자를 썼고, 얼굴은 새하얗고 보조개가 쏙 들어가 있는데, 내가 흔들어주는 딸랑이를 쳐다보면서 방실 거리고 있다.
삼촌 : 참 잘 하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삼촌이 말을 던졌다.
선영 : 네, 뭘 잘해요?
나는 내가 입 벌리고 넋 나가 있다가 침이라도 흘렸는 줄 알고 얼른 입 주변을 손으로 만졌다.
삼촌 : 상상을 참 잘한다고. 지금 네 아기 백일 사진 찍는 상상을 했지?
그랬다. 삼촌의 말을 따라 어느새 백일 된 아이를 떠올렸고, 모유 먹이는 생각, 내 품에서 잠드는 아이 생각을 했고, 이내 아기 사진관까지 내달렸다. 사진관 속 풍경을 생각하며 잠시 마음이 행복했었다.
삼촌 : 아주 잘 했어. 네가 우주에 쏘아올린 그 웨이브와 비슷한 웨이브가 네게 돌아올 거야.
선영 : 네? 제가 뭘 쏘아올려요?
삼촌 : 웨이브(wave), 너의 파동. 생각의 파동. 네 생각은 너의 뇌 속에만 머물지 않고 사방팔방, 전 우주적 차원으로 발사되지 않을까? 네가 좋은 음악을 수신하고 나서 미소를 송신하면 그 에너지가 온 우주로 전파되는 것처럼 말야. 그리고 반응은 또 다시 반응을 불러온다.
삼촌은 전에도 우리가 송신기이자 수신기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삼촌 : 너 백일 된 너의 아이를 상상했지? 통통한 그 녀석과 함께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 그림을 떠올렸지? 그리고 네 감정은 평온한 행복 속으로 젖어들었지. 네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지 않았니?
선영 : 그랬네요.
삼촌 : 너는 몇 분 동안, 내가 과연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았어. 너는 몇 분 동안 백일 된 아이를 안은 엄마였어. 그렇지?
선영 : 하하, 정말 그랬네요.
삼촌 : 네가 그런 상상을 할 때에 너의 우주는 그렇게 움직인단다. 너는 네 우주의 중심이야. 네가 중심에서 소원을 발사하면 너를 둘러싼 우주의 힘들이 너의 분부를 따라 반응하지.
선영 : 삼촌, 너무 오바하시는 거 아니세요? 제가 우주의 중심이라고요?
삼촌은 종이를 가져다가, 윗 끝에서부터 아랫 끝까지 닿는 선을 하나 그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