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는 우버(Uber)가 불법이 아닙니다. 전에 호주 살 때는 머무는 곳으로 택시를 부르기도 어려웠고, 목적지를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택시비는 겁났었습니다. 이제 우버가 있어 너무 좋습니다. 손님에게도 기사에게도.
힘들어진 것은 이미 라이센스를 고액으로 주고 산 개인택시 기사분들일 겁니다. 그러나 산업의 지도는 늘 바뀝니다. 저항 때문에 지연될 수는 있어도.
이번 일정에서는 차를 렌트하지 않았습니다. 출국하는 날 국내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려서 국제운전면허증 받아둔 것도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아내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아내 명의로 렌트하자고 몇 번 꼬셨지만 끝내 운전을 안 하시겠답니다.
보험료까지 포함하면 하루 5만 원 정도 드는 렌트보다는 우버 이용이 더 경제적이기는 합니다. 차를 매일 타야 하는 일정도 아니니 말입니다. 바로 이 논리 때문에 아내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차가 있으면 여기저기, 훨훨,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짐 걱정 없이, 제한 없이 다닐 수 있지 않겠냐는 나의 주장은 결국 꺾였습니다. 나는 아내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이기지 않는 것이 편하게 사는 길입니다.
여기가 아시아인데
그러다 어느새 우버를 타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처음엔 긴장이 되었었지만 타다 보니 어떤 아저씨를 배정받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호레이(가명)를 만나고 난 뒤부터 풀어진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본인이 스스로 우버앱에다가 올린 프로필 사진입니다. 웃으며 찍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코스비 가족> 시트콤의 코스비 같은 말투와 외모를 가진 아저씨입니다. 우버 차에 올라탈 때 흑인이나 아시안을 만나면 맘이 편합니다. 뭘까요, 이 동질감은. 젊은 백인 여성 운전자를 만난 것이 두 번이었는데요, 많이 추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어색함이겠지요. 그녀들은 내가 무서웠을지도 모릅니다.
호레이는 우리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유쾌하게 말을 건넸고 말 끝마다 '킥킥'을 빼놓지 않습니다.
내가 영어로 던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질문,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나요, 어디에서 왔나요" 정도입니다. 4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피지에서 왔다고 합니다.
몇 년전 시드니의 어떤 도로에 "아시아인들 니네 땅으로 가라"는 플래카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여기가 퍼시픽 아시아(Pacific Asia)라고 하면서 킥킥댑니다. 아시안에게 아시아를 떠나라니. 그럼 백인들은 지네 고향인 유럽으로 가야지 않냐고. 맞아요, 호주는 경도 상 아시아 쪽입니다.
호레이는 애가 여섯 명이고 손주가 열 명이라고 합니다. 아들을 낳으려고 계속 낳다 보니 여섯이나 낳았다고. 근데 혹시 자기도 모르게 일곱일지도 모른다며 또 킥킥댑니다. 딸 많이 가진 아빠 특유의 따듯함과 유머가 있습니다. 확실히 딸 아빠들은 다릅니다.
우리 딸아이의 나이를 듣더니 어려 보인다고 깜짝 놀랍니다. 밤길 조심하라고 합니다. 호주에도 이상한 놈들 많고 마약 하는 녀석들도 많다고. 괜찮은 남자 친구 딱 하나만 만들라고 합니다. 하긴 딸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는 괜찮은 녀석 하나가 지켜주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운전자를 맞이할 차례였습니다. 우버앱에 폴(가명)은 시드니 출신이라고 적혀있었는데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에 베트남어도 적혀 있었습니다.
큰 백을 들고 있는 우리를 보자 차에서 후다닥 내려 트렁크를 열고는 백 싣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백인 우버 운전자들은 매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트렁크가 작아서 백이 들어가지 않을 때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뒷좌석 의자를 접어야만 할 때에도, 의자의 헤드가 걸려 의자가 완전히 접히지 않을 때에도 운전석에서 꿈쩍하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시안 우버 운전자들은 손님이 큰 가방을 들고 있으면 내려서 짐 싣는 것을 돕습니다. 하여간 우버에서 아시안을 만나면 마음이 편합니다.
차 안에는 작은 생수병 2개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마셔도 된다고 합니다. 멘토스 사탕 봉지를 내밀며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가장 싼 Uber X 클라스였는데 서비스는 프리미엄 클라스입니다.
운전대 옆에 네비가 켜져 있는 두 개의 폰이 걸려있습니다. 하나에는 우버앱이 제시하는 네비, 다른 하나에는 구글맵이 제시하는 네비가 보입니다.
그와의 대화는 다리 선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지도를 보여주며 "너 급하니? 급하지 않으면 다른 다리로 가면 좋은데"라고 합니다. 우버 앱은 "Go Between Bridge"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다리가 유료인 것을 한 번 경험한 터였습니다. 자그마치 3.19달러(AUD). 차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나란히 "William Jolly Bridge"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습니다. 이건 무료입니다. 폴은 우리의 돈을 아껴주고 싶어 한 겁니다. 좋아요! 땡큐.
폴이 우버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에 "Go Between Bridge"로 건넌 뒤 손님들에게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손님들이 우버앱에다 악평하는 리뷰를 남겼을 겁니다. 옆에 무료 다리가 있는데 유료 다리로 건넜다며. 근데 우리가 우버 타고 같은 경로를 여러 번 다녀봤는데 우버는 항상 유료 다리를 선호했습니다. 그게 살짝 빠른 경로니까요. 잘못은 우버가 한 건데.
폴은 유료 다리로 건넌다고 자기가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돈을 밝히는 사람 아니라고.
아이가 Brisbane State Highschool 에 다닌다고 합니다. 그가 무심한 듯 얘기했지만 슬쩍 자랑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학교는 뺑뺑이로 들어가는 공립학교가 아니라 시험 봐서 들어가는, 퀸스랜드 주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아이들이 들어가는 학교거든요.
'아, 머리가 있는 집안이구나. 하긴 눈빛이 좀.. 괜찮아 보였어.'
우리가 지금 브리스번에서 좀 긴 휴가를 갖고 있다고 하니 나를 보면서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다고 합니다. 응? 40년을 호주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받침이 'ㄴ'으로 끝나는 듯한 베트남 억양, 그리고 워낙 뜬금없는 내용인지라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휴가를 길게 갖고 있다고 하니 했던 말인가 봅니다.
"아, 나, 백만장자 아니에요."
"하하, 아니에요, 백만장자가 될 필요 없어요. 맛있는 거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이 있고,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면 되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William Jolly Bridge로 접어들 무렵 그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당신은 베트남 출신인가요?"라고 묻자, 맞다면서, 그러나 시드니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호주에 온 지 40년이 넘었다고.
그때가 몇 살 때였냐고 했더니 일곱 살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보트를 타고 온 난민이었다"고 합니다.
"아.."
베트남 전쟁 때 피난 온 보트 피플이었습니다. 그들이 탔던 배가 말레이시아에서 가라앉게 되었고 국제법에 따라 그들은 구조되었고 호주행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읽었던 틱낫한 스님의 책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갑니다.
월남전. 프랑스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이어진 전쟁이었고 미국이 개입한 전쟁이었습니다. 미군에 의한 잔인한 학살이 있었죠.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이 들어간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우리 정부도 공식적으로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폴은 평소에 우리가 다니던 길과는 다른 길로 차를 몹니다. 그러면서 두 개의 네비를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합니다. "봐요, 이 길이 이렇게 막히잖아요. 그래서 이쪽으로 이렇게 돌아가는 거예요."
또 말합니다. 자기가 교통 혼잡 때문에 다른 길로 돌아가면 화내는 손님들이 있어서 네비 두 개를 켜놓고 운행한다고 합니다. 화낸 사람들은 어쩌면 아시안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폴은 자기는 만약 손님이 화를 내면 돈 안 받는다고 합니다. 손님이 행복해하지 않으면 돈을 벌어봐야 자기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남을 기분 나쁘게 하면서 돈을 벌 필요는 없지 않냐고.
자기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말합니다.
"응, 알겠어요. 당신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를 향해 힘 있게 말해줍니다.
그의 얼굴 표정은 그의 프로필 사진에 나타나는 표정과 거의 흡사했습니다. 나도, 아내도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다시 차에서 내려 내가 짐을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진한 악수를 나눴습니다.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각자 한국 억양과 베트남 억양의 영어로, 서로 잘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나눈 대화보다 따듯한 눈빛으로 교환한 정보의 양이 훨씬 더 컸습니다.
차에서 내리면서 은정과 나는 "그래.."라고 하면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한 말이 가슴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다."
비록 길을 돌아돌아 오느라 평소보다 4달러 정도 요금이 더 부과되었고, 이는 Go Between Bridge 통행료인 3.19달러보다 더 큰 금액이었으나, 나는 폴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인도인들이 애를 많이 낳았어
그의 이름은 레오(가명). 이 형은 좀 무서워 보였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아마도 집에서 셀카로 찍으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래도 트렁크 문을 열어 짐 넣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그 다리가 가까웠을 때 "Go Between Bridge" 말고 다른 다리로 가달라고 하자, "응, William Jolly로 가자는 말이지?"라고 응답합니다.
"너네 그 다리(GBB) 건너는데 얼만지 알지?"라며 묻길래
"네, 3-4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Bull shit!"이라고 외치며 "말도 안 되지, 그지? 뭐 저걸 만들어놓고 그렇게 비싸게 받는지!"
마음속으로 동의해드립니다.
'네에, 형..'
그는 피지에서 왔고 호주에 거주한 지 13년 정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 피지에 가본 적 있어요. 10년 전쯤에요."
그랬더니 반가워합니다.
자기는 한국 사람들과 일 많이 해봤다고 합니다. 강에 다리 놓는 일 할 때 같은 노동자로서 말입니다. 자기는 주말에만 술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은 매일 일 끝나면 술 마시고, 먹는 것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기한테 꼭 같이 마시자고 한다며 한국 사람들 참 좋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한승태 작가가 동남아 노동자들과 지내면서 썼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착취 현장에 비하면 호주는 거의 천국 수준입니다.
"우버가 몇 퍼센트나 떼 가나요? 요금 10달러 나오면 얼마 떼요?"
"25% 가져가. 내가 75% 먹지. 처음에는 내가 80% 먹었었는데 우버가 욕심이 커졌어. 이제는 25%를 떼어 가네? 그래도 이거 되게 괜찮아. 일주일 내내 열심히 하면 2천 달러 벌어. 진짜 괜찮아. 근데 호주애들은 이걸 몰라."
헉, 한 달 열심히 일하면 7-8천 불도 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레오는 호주에 살고 있는 백인들에 대한 반감을 살짝 드러냅니다. 얼마 전에 자기가 애보리진을 태웠다고 합니다. 애보리진(Aborigine)은 호주 땅의 토착 원주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애보리진이 말하기를 "잉글랜드에서 온 백인들이 자기들을 오지(Aussie)라고 하는데 꼴 같지도 않아. 자기들이 잉글리시(English)지, 왜 오지(Aussie)냐?"
오지(Aussie)는 '호주의, 호주스런'이라는 뜻입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언어가 영어와 더불어 공식 언어이며 각종 표지판에 영어와 마오리어가 함께 표기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오리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마오리인들은 백인들과 꽤 동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마오리족 역시 다른 땅에서 그쪽으로 이주해온 종족이긴 합니다.)
반면 호주의 백인들은 그 땅에 들어와 토착 원주민들을 애보리진(aborigin)이라고 부르며 온갖 모진 탄압을 했습니다. 그들은 호주 땅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개척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애보리진의 정체성을 없애려 동화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애보리진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생이별시켜 백인 가정에 강제입양시키는 짓도 했었습니다. 호주 정부가 이런 잘못된 과거에 대해 애보리진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2008년에 이르서였습니다.
"피지에 인도 사람들이 많지요? 근데 어떻게 인도인들이 피지에 많이 오게 된 거죠?"
그런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별로 궁금하지는 않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오가 피지 사람이라고 하니 갑자기 묻고 싶어 졌습니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피지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어. 그때 영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을 데리고 왔어. 농장에서 일 시키려고. 사탕수수 농장 알지? 부려먹으려고 데려온 거지. 그때 끌려 왔던 사람들이 불어난 거야. 인도 사람들이 애를 10명씩 낳았거든. 지금은 피지에 피지인보다 인도인이 더 많아."
놀라웠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피지를 점령하고 인도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지금은 인도 사람들이 피지의 메이저가 되었습니다.
인도인들은 피지를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끌려왔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메이저입니다.
북한에서 왔니?
차에 올라 타 나르한(가명)의 프로필을 보니 어디 출신인지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 외에 더 있었습니다. Persian 그리고 Farsi.
'응? Farsi?' 얼른 네이버를 뒤져봤습니다. 이란 사람이 자기네 언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란 사람 같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여기 호주에 온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더니 18년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이란 출신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씩 웃습니다. 아니라고 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스베키스탄을 갔을 때 보았던 고려인 비슷하기도 하고. 혹시 타직스탄? 키르키즈? 카작? 아는 중앙아시아 나라들을 다 대도 씩 웃기만 합니다. 아제르바이잔? 최후의 일격을 가했지만 역시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결국 답해줍니다. "아프가니스탄"
"아하~"
자기가 아프가니스탄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놀라면서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쪽 동네 사람 치고는 눈이 작다고.
말이 잘 안 통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눈빛을 많이 보게 됩니다. 룸미러로 보이는 그의 눈은 뭔가 그윽한 눈빛입니다. 우버 프로필에 올린 사진 속의 눈빛보다 훨씬 그윽합니다.
우리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북한(North)?"이냐며 말끝을 올립니다. North 아닌 거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요즘은 South와 North가 사이가 좀 좋아졌냐,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이산가족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정은과 문 대통령님이 만났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건네며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을 이리저리 넘었던 장면을 얘기합니다.
그에게 북한은 꽤 관심이 가는 국가였나 봅니다. 북한과 아프간 모두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었던 나라였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나르한은 아프간 전쟁을 피해서 호주에 왔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호주에 온 18년 전인 2001년은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킨 해였습니다.
그가 우버앱에 자신의 출신지 아프가니스탄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해봤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출신지를 보며 테러를 떠올릴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는 말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그 인생에 많은 스토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 도착 후 짐을 내리면서 나르한을 향해 외쳤습니다.
"당신의 눈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가 고맙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고국은
너희의 땅이 될 수 없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영국인의 후손으로서 호주 국적을 가진 한 백인 녀석이 뉴질랜드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향해 총질을 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기 조상들이 "Christchurch(그리스도교회)"라는 명칭을 붙인 도시에서 말입니다.
총질을 하며 선언한 말은 "우리의 땅은 결코 그들의 땅이 될 수 없고, 우리의 고국은 우리 자신의 고국이다"였습니다. 이주민들을 향해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죠. 어처구니가 없는..
여기가 누구 땅이라고 누가 왜 주장할 수 있는가? 긴 역사를 돌아보면 뭐라 답을 못하겠습니다.
우버 아저씨들을 만나며 미국, 아프가니스탄, 북한, 베트남, 호주, 피지, 영국, 인도, 뉴질랜드, 마오리, 애보리진... 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린 서로 미안해하고, 용서받아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지도는 계속 바뀝니다.
택시의 지도는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