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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재영
Jun 06. 2023
손바닥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다.
오디에 담긴 추억
봄이 익어 나뭇잎이 무성 해지는 5월이 오면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친구들과 들녘으로 달려갔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그때
5
월에 익는 뽕나무 열매 오디의 별난 맛이
어린 친구들을 들녘으로 불러냈다.
한 손 가득 까맣고 빨간 오디를 따서 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달고 신 과즙이 목구멍을 넘어가면서 오금을 조리게 했고
입 밖으로 검붉은 오디즙이 흘러내렸다.
손바닥과 입술이 까맣게 물들도록 오디를 따먹었다.
배가 부르면 들고 간 주전자에 가득 오디를 따 담았다.
부른 배를 튕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쉬는 날
아내가 밀양에 오디를 따러 가자고 했다.
어릴 적 기억이 스물스물 떠오르면서
주전자 대신 무엇에 오디를 따 담아야 할까 고민할 때
아내는 플라스틱 김치통을 내 왔다.
한 손에 김치통 들고 한 손으로 오디를 딴다?
뽕나무 가지는 어떤 손으로 당겨야 하지?
팔뚝에 손잡이를 걸 수 있는 주전자가 제 격인데
냉장고에 컵을 대면 마실 물이 흘러나오고
예전같이
농삿철에
주조장에 가서 막걸리를 사 와야 하는 경우가 없어져서
집에
큰 주전자가 없다.
아쉽
다.
그렇다고 큰 주전자를 살 수도 없고
대신 검은 플라스틱 봉지 몇 개 챙겨서 집을 나섰다.
봉지를 사용하면 두 손 다 사용할 수
있어
오디 따기가 쉽지.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들과 만나기로 한
곳은
수산의
너른 들판 가운데 나지막하게 솟아오른
언덕 위 '
섬
' 카페.
바람이 솔솔 불고 사
방이 탁 트여 시야가 맑아지고
요즈음 보기 힘든 보리들이 다 영글어 타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봄의 청보리 물결과 5월 중순의 황금빛 들판이
보기에 좋다고 하니
그때 다시
와서
눈을 감고 바람에 보리들이 서걱대는 소리를 들어 보기로 했다.
카페 뒤에 서 있는
뽕나무
밑에는 바닥이 까맣도록
오디가 떨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는
가지를 당겨 잡고 한 손으로 오디를 따는 그런 뽕나무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누에를 먹이기 위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해
미루
나무나
참나무처럼
그냥
언덕 위에 서 있는
키 큰
나무에
오디가 달려 있어서 사람들이 따러 오는 곳처럼 느껴졌다.
바닥이 까맣도록 오디가 떨어져 있다는 것은
어릴 적
오디에 담긴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적거나
외딴 마을에 위치한 '
섬
'이라는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페를 오르는
언덕길
옆 빨간 우체통에 부착된
'어른 5천 원, 아이 3천 원을 넣어 주세요'라는 글귀와
카페 내
'무제한 제공'이라는 글귀에 어울리게
냉커피와 미숫가루, 비빔국수까지 내주는 넉넉한 주인아주머니는
오늘 오직 우리 한 팀만을 위해 카페를 열고 불을 밝히고
온종일 서빙을 위해 주방 앞에 서 있었다.
듬성
듬성 치열이 고르지 않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귀가 길에는 작은 된장 한 통과 꿀 한 통을 건네주었다.
수다를 떨던 아내와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오디를 따기로 했다.
아니 딴다기보다는
줍는
다는 표현이 옳다.
키 큰 나무에 손이 닿지 않아 직접 딴 것보다는 주운 것이 많다.
긴 장대로 나뭇가지를 쳐서 오디를 떨어뜨려 주웠다.
이전에 떨어진 것과의 구분은 쉽다.
새로 떨어진 오디는 탱글탱글하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오디꼭지가 싱싱해서 연두색을 띠었다.
아내 친구 중 하나가 주문했다는 찰떡을 찾기 위해
여자들이 밀양을 잠시 다녀오는 동안
나는 언덕 이곳저곳을 다니며 손에 닿는 오디를 부지런히 땄다.
까만 봉지를 손에 걸고 한 손으로는 가지를 당기고
한 손으로는 오디를 땄다.
잘 익은 오디는 손만 대면 아래로 떨어지므로
나뭇가지 위에서 따지 말고
나뭇가지를 치켜들고 아래에서 손을 벌리고 중지 손가락을 오디에
대
면
잘 익은 오디가 손 안으로 떨어진다.
많이 땄다.
손바닥과 손톱 속이 까맣게 물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디를 씻어 냉동고에 보관했다.
가끔씩 꺼내 갈아서 오디 주스를 만들어 마실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이 날 것이고
'
섬
' 카페에서 마셨던 미숫가루가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봄만 되면 카페 앞에 펼쳐질 청보리 들판을 떠 올리고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러가고 싶어 몸살을 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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