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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한바퀴 방문기
온화한 도시, 달랏을 찾아서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도시
by
이재영
Dec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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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의 지루하게 내리는 비를 피해
따뜻한 햇빛과 푸른 바다를 찾아 나트랑에 온 지 불과 하루 만에
달랏을 또 다른 행선지로 추가시켰다.
달랏 출발시간 8시 30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여
전날 예약한 Q코드 전자티켓을
승차권으로
교체한 후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인근의 작은 간이식당에 들렀다.
붙지 않도록 기름대신 얉게 빚은 돼지비계를 프라이팬에 깔고
계란과
밀가루를
섞은 묽은 반죽을 두른 뒤
숙주나물, 손가락 크기만 한 총알 오징어와 작은 새우를 넣고 붙인 전을
한 접시에 두 개씩 담아 내주었다. 반새우 일종 같다.
모든 베트남 음식에는 항상 동반하는 향채도 한 채반 곁들어 주었다.
전 한 조각에 향채를 듬뿍 얹고 약간 매운 어간장을 뿌려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먹을 만했다. 돼지비계기름에 볶은 것이니 무엇인들 맛이 없으랴.
짬뽕, 볶음밥이 맛있는 거의 모든 중국집의 맛의 원천은
돼지비계기름에
볶는다는 것이다.
가냘프고 다리가 온전치 못해 거들거리는 노인이 하롯불을 살리기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작고 뚱뚱한 아주머니가 음식재료를 팬에 넣어 부쳐내는 반새우는
쌓일 틈도 없이 간편한 아침대용으로 팔려 나갔다.
보통의 길거리 베트남 간이식당에서는 위생관념이 철저히 무시된다.
수 십 차례 식탁을 닦았을 행주가 걸쳐있는 나무 젓가락을 뽑아 들어야 하고
채반에 받친 새우가 녹아 고인 물을 부어 얼어붙은 오징어 덩어리를 녹이는 광경을 보고서도
애써
무시
할 수 있어야 베트남의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취식 후 신문지 대신 하얀 종이조각으로 입을 닦을 수 있는 것이 그만 다행이라 여긴다.
어쩜 스마트폰이 신문지를 대신하지 않았다면
입을 닦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아내어 주는 쟁반대신 신문지가 사용되었을 런지도 모른다.
음식물에 신문지의 활자가 복재되어 새겨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승차권을 발행해 준 좁은 풍짱 버스
사업소는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승객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대기장소로
모인 승객을 도시외곽에 위치한 터미널로 실어다 주는 고객서비스 일종이다.
8시가 넘어 지시대로 중형버스에 오르니 복잡한 거리를 헤치고 주택지에 이르러
승객 한 명을 더 태우고 도시를 빠져나와 터미널로 향했다.
승객이 예약만 하면 집 앞에서 픽업해 주는 맞춤형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어제저녁 호텔옆 여행대행사에서 8시 30분 달랏행 버스를 예약하겠다고 하니
6시에 호텔 앞에서 픽업할 것이라니
편리할 것이라고 했다.
출발 전 2시간이나 일찍 나서야 하고 편도요금 17만 동에 17만 동을 커미션으로 요구해서
직접 휴대폰으로 예약했다.
도로도 복잡하고 개별 승객을 태우는 중형버스가 느리게 달려
풍짱버스터미널 위치를 모르는 나는
달랏
출발시간까지 갈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났다.
기대와 달리 풍짱 슬리핑 버스는 승차 난이도가 높다.
3열 2층 구조로 개인에게 겨우 몸 하나를 눕힐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주어진다.
2명 1명 배치구조가 아닌 각 개인에게 독립된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
창가에 하나씩, 중간에 추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두 개의 복도를
내야 했다.
각 개인공간마다 에어컨, 전기플러그와 액정 모니터가 있지만
복도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커튼을 쳐서 확보한 개인의 공간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남미에서
슬리핑버스를
타고 24시간 안락하게 여행했던 것과 대비되었다.
2명 1명 배치로 복도를 하나만 만들어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1층과 2층을 구분되어 있고 커튼도 쳐지않아 답답하지 않은
남미 까마(침대) 2층 버스가
더
편하고 합리적 구조라고 생각된다
.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개인프라이빗을 존중하고 왜소한 베트남 체형을 반영했겠지만
덩치 큰 해외관광객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구조이다.
느려터진 속도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나트랑과
거리
135km를 4시간 10분이나 걸려
베트남 중부 럼비엔 고원의 해발 1500m에 위치한 달랏에 도착했다.
다낭과 달리 10월 말로 우기가 끝나 비가 오지 않고
연평균 기온 18도로 연중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어 여행하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자 꽤 쌀쌀해져서 호텔에서 두꺼운 담요를 요구하여 덮고 잤다.
달랏은 1890년대 프랑스 지배하에 있을 때
프랑스의 유명한 세균학자 알렉산드르 예르생과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탐사로 발견되어
리조트 단지로 조성되었고
그
후 많은 유럽인들이 해안가의 더위를 피해 찾아오는 휴양지가 되었다.
그 영향으로 달랏의 전체도시가 유럽풍이고 호숫가에는
삼각진 지붕을
얹고 있는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달랏에서 프랑스식 달팽이 요리를 주문해 먹었다.
바오다이 황제의 저택, 황제와 황후의 침실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꾸며져 있다. 동서고금이 다 그렀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베트남 마지막 왕 바오다이 황제가
프랑스의 거부 부르제리의 별장을 매입하여
가족과 거주했던 저택이다.
건물 주위를 화원으로 꾸며진 전형적인 유럽식 풍으로
특히 황후의 침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원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면서 좋은 것을 먹고 최고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왕족들은
모두 고운 심성을 지니고 백성을 지극히 아끼는 선정을 베풀 것 같다.
그러나 권력유지를 위해 정적을 제거하고 폭력과 강압으로 백성을 다스렸던 역사가 존재한다.
황후의 침실과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
황제의 저택에서 600m를 걸어서 Crazy House로 알려진 항응아 빌라를 찾아갔다.
원래 고아원으로 지어진 동화의 집이었으나
복잡한 구조와 좁은 복도 등으로 안전성 문제로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건축학 박사를 받은 당비엣응아가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영향을 받아
복잡하고 유기적인, 직선이 아닌 곡선 구조물로 이 건물을 설계하였다.
바닷속 세계, 거미줄, 실타래같이 얽힌 나무넝쿨, 괴이한 조각물,
기괴한 향상의 흘러내리는 모양의 구조물 사이로 좁은 길을 만들었다.
입구와 출구만 표시되었을 뿐 상세한 길 안내가
없다
.
뒤죽박죽 뒤엉켜있지만 나름 질서와 조화를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길을 다 따라가 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죽림사는 달랏의 최대 사원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매력은 없는 곳이다.
우리식으로 치면 대웅전에 해당하는 건물에 부처님을 모시고 뒤 건물에 달마대사를 모셨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나뭇가지를 그물망같이 이어놓고
마디가 울퉁불퉁한 대나무가 이채로웠다.
린프억 불교사원은 건물내외부를 도자기를 부순 파편들을 이용한 모자이크 기법으로
용과 각종 동물 형상을 새겨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사원 부지에는 34m 높이의 7층 종탑이 세워져 있고 두 분의 관세음보살을 모셔져 있는데
실내에 모신 관세음보살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계시고
외부에 모신 관세음보살은 60만 송이의 국화꽃으로 꾸며져 있다.
생화로 장식된 보살님의 외투에 새겨진 꽃무늬와 정교한 옷자락의 묘사가 놀랍다.
베트남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종으로 간주되는 4.3m 높이의 다이홍 종을 쳐보니
소리울림통이 없어서인지 소리가 작고
여운의 울림이 없어
짧고 깊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의 테두리 부근에는 신자들이 소원을 비는 글들이 붙어 있는데
한글로 적힌 소원들 중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등 가족에게 축복을 비는 글과
부동산 매매가 이루어지기를 비는 소원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달랏 야시장에 들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사람들이 넘쳐나고
달랏의 온화한 기후에서 자란 싱싱한 과일, 특히 딸기가 많이 보였다.
군밤과 포도, 곶감을 곁들이고 볶음 라면과 쌀국수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
호텔로 돌아와 두꺼운 이불 한 채를 부탁해서
덮고
달랏의 첫날. 빡빡한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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