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테이프가 남기는 하얀색 띠
종이 위에 잘못 적힌 글자가 보였다.
삐뚤빼뚤, 옆에 있는 글자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 글자를 없애기로 했다.
필통에서 수정테이프를 꺼내, 조심스럽게 덧씌웠다.
하얀 띠가 그 위를 덮었다.
잘못 적힌 글자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남은 흰 띠는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지우려고 했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는
잘못 적힌 글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 위에 다시 예쁜 글자를 써보았다.
하지만 볼펜 끝이 자꾸 흰 띠에 걸렸다.
잉크는 번지고, 수정테이프는 벗겨졌다.
지웠던 글자가 다시 드러났다.
다시 덧씌웠다.
이번엔 흰 띠가 겹쳐져 더 두꺼워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길 바랐지만,
지우려 할수록 그 자리는 점점 더 지저분해졌다.
살면서 상처받은 기억도 있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자주 마음속으로 외쳤다.
‘기억하지 말자. 잊어버리자.’
억지로 밀어내려는 그 마음은 언뜻 단단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애써 지우려는 노력은 오히려 그 기억을 더 또렷하게 만들고, 더 자주 떠오르게 한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그게 마치 수정테이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억은 종이 위의 ‘글자’이고, 잊고 싶은 기억은 ‘잘못 적힌 글자’였다.
그리고 그 잘못 적힌 글자를 덮으려는 나의 마음은 ‘수정테이프’였다.
수정테이프로 지운 자리는 흰 띠로 덮인다. 하지만 그 흰 띠는 오히려 주변 글자들보다 더 눈에 띄고,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쉽게 벗겨진다. 그렇게 드러난 글자는 더 지저분하게, 더 선명하게 남는다.
기억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지우려 할수록, 덮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잘못 적힌 글자는 잘못된 것이 맞고 지우는 게 좋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억지로 지우려고 애쓰는 일은 오히려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둔다.
가끔은 그 글자를 그냥 그 자리에 남겨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웃거나, 괜찮다고 말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그 기억들을 더 또렷하게 떠올리게 하진 않을까?
슬픈 기억은 슬픔으로, 아픈 기억은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그게 가장 어렵지만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