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와 어른의 종이학
길을 지나가다 꼬마와 어른이 마주쳤다.
꼬마가 자신이 접은 종이학을 보여주었다.
어른도 따라서 자기가 접은 종이학을 보여주었다.
두 종이학은 비슷해보였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어른의 종이학은 수많은 시도를 거친 흔적이 보였다.
어른은 종이학을 접을 때 중간까지 접었더라도
좀 더 나은 모양이 떠오르면
처음부터 다시 접기를 반복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이 닿은 자국은 많았지만
그럴듯한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하지만 꼬마의 종이학은 달랐다.
한 번에 접은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잘 접은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다시 접어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었다.
어른은 조심스레 말했다.
“여기 조금만 다시 접으면 더 예쁠 것 같은데?”
그러자 꼬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다시 접기 귀찮아. 그냥 이대로 둘래.”
어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접지 않겠다는 말이
그날의 기분일 수도,
그 아이만의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다시 접으면 예쁠 것 같은 그 부분이
계속 아른거렸다.
다시 말해볼까 고민했지만,
어른은 결국 자신이 접은 종이학에
마음을 두기로 했다.
이 글은 친구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친구는 참 착하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방어적이고 회피하는 성향이 있어, 가끔은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조언마저도 피하거나 거리를 두곤 한다.
나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건네는 말이 단지 불편한 간섭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그래, 뭐 바꾸기 싫다는데 억지로 바꿔서 뭐해” 하며 내가 먼저 물러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사실 나도 다르지 않다. 나 역시 고집이 세고,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단점을 짚어줄 때 그걸 인정하고 고치기보다 그냥 흘려보내거나 무시해버린 적이 많았다. 처음엔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기회를 놓쳐버리는 일이기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의 ‘꼬마’는 결국 나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방어하고 회피하는 우리들.
그리고 ‘어른’은 그런 우리를 아끼고,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종이학’은 내가 만들어가는 나 자신을 의미한다.
나는 앞으로 종이학을 접을 때, ‘어른’같은 사람이 해주는 조언을 들으며 접어 나가고 싶다.
그게 결국 나 자신을 조금씩 다듬고 고쳐가며 살아가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친구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글은 그 친구를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한 조용한 응원의 마음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