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구세라다, 브랜드가 되는 캐릭터와 페르소나에 관해

무형적 브랜드-사람이 브랜드라면_캐릭터 편 : 구세라

by 전해리

#내가구세라다, 브랜드가 되는 캐릭터와 페르소나에 관하여.

무형적 브랜드-사람이 브랜드라면_캐릭터 편 : 구세라



본격적인 말머리를 떼기 전,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내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옛날에 한 살인마가 살고 있었어요. 그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아주 잔인하기로 유명했어요. 어느 날,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망설였습니다.
“이렇게 끔찍한 나를 그녀가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는 궁리 끝에 가면을 쓰기로 결정했어요. 매우 부드러운 인상에 미소가 돋보이는 가면을 쓰고, 그 가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합니다.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상냥하며 사람들을 돕는 일이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그를 그녀도 마침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는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인자하고 든든한 아빠로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냅니다. 또 사람들에게 여전히 봉사하는 삶을 살며 사회적인 존경과 인기까지 얻습니다. 그렇게 그는 웃음과 미소의 의미와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의 가치를 깨달으며 삶에 감사함을 날로달로 깨닫습니다.
그러던 또 어느 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에 한 사람이 끼어듭니다. 그 사람은 그의 아내와 자녀, 그리고 대중들을 향해 그가 사실은 잔혹한 살인마이며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라고 폭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진실을 보여주겠다면서 그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 버립니다. 그러자 모두 깜짝 놀랍니다. 그의 얼굴엔 인정이 가득하며, 사나웠던 눈매엔 유순한 기운이 어렸고, 입꼬리는 웃음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의 진짜 얼굴은 그가 수십 년간 쓴 가면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져 있었던 겁니다. 아무도 그가 애초에 섬뜩한 얼굴의 악랄한 살인마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후로 가면을 쓰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에 이바지하며 잘 살았답니다. -끝-

사람은 변화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떻게 변화할까. 정답은 없지만 방편은 있다. 나에게 긴요한 인격이자 인성인 ‘캐릭터(character)’를 지닌 다른 이로부터 발견하고 빌려서 쓰는 것이다. 그 가면(persona)을 쓰고, 그에 걸맞는 언행이 자연스레 몸에 배게끔 연마한다. 사람은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떤 변화를 또 불러일으킬까.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 드라마를 본 건 아니었다. 아무 의욕 없이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우연히 보게 된 장면이 바로 구세라가 구의원 후보 보궐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짤막한 앞머리에 고불고불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배낭을 멘 채 길거리에서 혼자 ‘기호 5번 구세라’가 적힌 명함을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돌리며 우렁차게

“오늘도 내일도 ‘구세라’입니다!”

외치는 모습. 그 모습이 무척 비현실적으로 비쳤으나,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마지막이 언제였는지도 까마득한 울음을 터뜨렸다.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구의원 선거에 뛰어든 구세라의 이야기, ‘출사표’가 이 드라마의 이름이다. 그리고 구세라는 구의원이 된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비현실. 비현실? 이 드라마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비현실일까. 아마 혹자는 이리 생각하며 혀를끌끌 찰 것이다: ‘저스펙’에 ‘흙수저’인 ‘젊디 젊은 여자’인 ‘구세라’는 현실이고, 권력 중에 권력인 ‘의원’이며 ‘연 90일 출근에 연봉 5000 받고’ ‘신이 만들고 잊었다’던 ‘꿀의 직장’이라는 구의원에 그녀가 도전하는 이야기가 비현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극중에서도 사람들은 그녀를 말린다. 희망과 가능성을 혼동하지 말라고 한심하게 쳐다본다. 그런 사람들의 만류와 회의적 시선에도 구세라는 ‘안 될 게 뭐 있냐’고 시원스레 받아 친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해 보자면, 구세라는 사람들이 후보 1,2번만 유심히 보는 세상에서 기호 5번에, 사람들이 후보 공약은 안 보고 정당만 보고 찍는 세상에서 무소속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당선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아 보인다. 시민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조직 선거판’이라는 보궐 선거에서 아무도 그녀를 경쟁자로 경계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가 뭔가 해낼 거라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2040 여성 1만 명만 잡으면 된다고 선거 유세를 이어 나간다. 만약 이런 요소로만 드라마가 구성되었다면 그녀의 당선은 ‘비현실’이라고 할 법하다. 그랬다면 디즈니에 나올 법한 동화가 된다. ‘착하고 씩씩한 세라는 우여곡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구의원에 당선되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그런데 디즈니에서도 요즘은 이런 이야기는 안 만든다. 즉, 이유 없는 해피엔딩은 없다. 그러니까 구세라는 순조롭지 않게, 어쩌면 매번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타개하며 결국 구의원에 당선된다. 그 당선에는 기본적으로 세라의 끈기와 솔직, 또 단일화 과정 중 손은실 후보의 사퇴, 그리고 세라의 행복동 유세가 일조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세라는 ‘저스펙 흙수저’다. 그러나 사실 세라는 ‘불나방 민원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민원 신고에 열성인 사람이다. 마원구의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고장난지 훤히 꾀고 있는 ‘불나방 민원왕’이야말로 ‘마을정치’에 적합한 사람임을 일깨우며 진보당 인사인 손은실 후보는 자진사퇴한다. 그러한 손 후보는 세라를 격려한다.

“세라씨가 당선되면 더 많은 보통사람들이 도전하는 기회가 열려요. 내 한 표를 세라 씨에게 주는 거에요. 꼭 승리합시다.”

손 후보는 세라에게 편지도 남긴다.

“이기고 싶으면 나만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해요.”

남이 만든 프레임 위에선 승리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얻은 세라는 선거율이 가장 떨어져 아무도 가지 않는 행복동에서 유세 일정을 마무리한다.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스터디 카페에서, 만두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에게, 버스 정류장에서, 그렇게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후보 명함을 돌리고 구호를 끝까지 외친다.

“오늘도 내일도 ‘구세라’입니다!”

세라는 3표 차이로 당선된다. 기적이다. 그래서, 구의원이 되어 비현실, 불가능도 기적처럼 현실과 가능으로 바꾸었냐고? 이 글을 읽기를 여기서 멈추지 말아 달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선거 운동 당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세라의 구의원 활동은 매번 위기였다. 구의원 활동 환경은 세라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았다. 세라는 그 과정에서 외로웠다.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구청장이든 어느 곳에서도 세라를 껴 주지 않고 늘 배제하며 이용하려 든다. 어느 의원들은 세라에게 반말지거리를 서슴지 않고 세라를 ‘의원’이 아닌 ‘구 양’이라고 부르며 무시한다. 또 어떤 의원들은 조례안을 훔치고 약속을 어기는 등 모두 제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그 와중에도 세라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골프장의 공이 집으로 날아온다며 수십 번 민원을 넣은 할머니, 부당 해고 시스템을 신고한 경비원 아저씨들,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공사 일정을 고발하는 스마트원시티 6구역 공사장 인부들까지 사람들은 도와 달라며 세라를 찾고, 세라는 ‘불나방 민원왕’의 이력을 발휘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의원들을 설득하러 사방팔방 뛰어 다닌다. 그러나 모든 일이 세라가 구의원이 된 것처럼 기적처럼 아니, 깔끔하게 해결되진 않는다. 골프장 민원은 세라의 노력이 무색하게 구청장의 계략 중 일부가 되어 해결되고, 경비원 아저씨들은 결국 해고되어 발레파킹을 하거나 공사장으로 향한다. 사랑동 지명 변경 재표결안은 결국 가결된다. 세라는 본인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당선과 달리, 세라의 구의원 활동에는 패배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세라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안 될지언정 안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타협하지도 않는다. 세라는 비현실, 불가능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도무지 주눅드는 법이 없다. 끝까지 간다. 그 이유는, ‘애쓰는 게 아니라 포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질문 하나 하겠다: ‘인사권자 한 명의 마음과 유권자 일만 명의 마음 중 어느 쪽이 더 빠를까?’ 세라는 ‘도장을 찍는 건 수학이 아니라 가슴’이라고 답한다. 많은 이들이,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의 기회를 손에 쥐고 흔드는 권위자들은 희망과 가능성을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세라는 그런 이들 앞에서 언제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말한다. 세라는 ‘고작’ 민원 수첩 하나로 구의원이 되었다면서 구의회에서 몰아 내려는 조맹덕 의장에게 일갈한다, ‘고작’이 아니라 ‘기적’이라고. 세라의 첫 민원은 ‘사랑리조트 화재 사건’ 참사의 자리에 놀이공원이 들어서는 걸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를 기점으로 세라는 고칠 수 있는 불편을 참지 않고 민원을 꾸준히 넣어 ‘불나방 민원왕’이 되고, 있어서는 안될 부당을 무시하지 않고 모두 ‘YES’라며 손을 내리는 자리에서 홀로 ‘NO’라고 손을 든다. 그런 세라는 구의회에서 속기사 일을 하던 중 초등학교 맞은편에 물류창고가 들어서면 안 된다고 손을 들어 또 부당해고를 당했고, 그 사건이 손은실 후보로 인해 알려지며 구의원 후보 선거 운동을 하던 때와 맞물려 물류창고 공사 반대 시위장에 올라가 이렇게 말한다.

“전 누가 봐도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입니다. 하지만 바라는 마음 없이 어떤 미래가 가능할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 우리가 바라는 미래 아닐까요?”

비현실이란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현실이 아니어야 하는 것’들이 현실이다. 다들 ‘입바른 소리 하다가 좌천된 서공명 사무관을 두고 좌천 딱지 붙었는데도 매일 다시 돌아갈 거라 헛된 꿈만 꾼다고, 어차피 안 될 게임이라고 얘기’한다. 많은 이들이, 더 솔직하게 말하면, 수많은 또래 젊은이들과 청춘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야망을 품지 않는다. 아니다. 꿈을 꾸면서 그 꿈을 모른 척한다. 뭘 해도 안될 세상이라는 점에 수십 번 공감한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으로는 나의 꿈이 이뤄질 세상이 오지 않는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지 않고선 그 어떤 미래도 비현실적이고 희망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세라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남이 붙여준 딱지만 붙이고 살 순 없다’고 말한다. 세라가 구의원이 된 건 ‘바라는 마음’ 하나로 시작해 비현실을 불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행동의 결과다. 지금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제발 ‘바라는 마음’을 품어 달라. 세라는 그렇게 세상을 바꿨다.

세라는 세상을 바꿨다. 그러나 혼자 바꾼 건 아니다. 세라를 의심하고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세라에게 감화되어 세상을 함께 바꾼다. 그들은 모두 세라의 친구, 이웃, 동료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출사표의 주요 인물들은 삼국지의 인물들인 관우, 장비, 조자룡, 제갈량, 방통, 십상시, 조조로부터 이름을 따왔고 그들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세라는 적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사람을 챙기는 유비의 역할이다. 지더라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세라는 자신을 위해 사퇴를 한 손은실 후보를 다시 찾아가 구청장 선거에 나와 달라고 부탁하며 본인이 선거 운동을 도울 것을 약속한다. 손은실 후보는 그런 세라의 독려에 구청장 선거 후보로 나서며 세라,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안전’, ‘기억’, ‘약속’을 슬로건으로 건다. 세라 덕분에 ‘논리가 아닌 마음’을 알게 된 공명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신의 동생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사랑리조트 화재 사건’이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윤희수 의원이 환경영향평가서를 손은실 후보 캠프에 가져다 주도록 설득하고, 더 나아가 세상에 비리를 숨긴 조맹덕 의원인 아버지의 실체를 밝힌다. 손은실 구청장은 취임식에서 ‘과거 사랑리조트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현재 노동자의 고충을 헤아리고, 미래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키워갈 가족들을 생각하겠다’고 연설한다. 또한, 언제나 도전하는 세라를 보고 감명 받은 시 의원은 서울시의회에 출마해 당선되고, 세라의 친구이자 일하는 엄마로 살고 싶은 권우영도 그러한 모습에 자극 받아 구의원 선거에 도전하고 당선되어 드디어 세라처럼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한다. 그리고 세라와 공명이 세간에 잊히지 않도록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사랑리조트 화재 사건’의 추모비는 민주초등학교 학생들로 인해 학교로 옮겨 지고, ‘사랑동’이라는 이름은 표결로 사라져도 ‘(구)사랑리조트’라는 정류장 이름 속에 사랑이 남게 된다. 게다가 자룡은 이러한 세라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고, 자룡의 웹툰을 본 ‘북극곰당’원들은 세라를 찾아오며 세라에게 또 한 번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내민다. 드라마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구세라’가 내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구세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라를 만나기 전까지 위축되어 있었다. 항상 힘들었는데, 이 힘듦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음을 알아 사랑해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려고 내 모든 걸 던져야 했는데, 사실 이게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눈물도 더는 안 나왔다. 내가 지금껏 했던 일들과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일만큼은 남이 날 말리지 못하게 입을 꼭 다물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핀잔과 조롱을 들어야 했다. 덕분에, 척척 해내는 사람 대신 툭툭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덜덜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내가 왜 하필 세라의 보궐 선거 유세 운동 장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고 생각하나. 저 모습이 바로 내 이야기여서 그렇다. 명함 한 장 한 장 돌리고, 사람들 앞에서 ‘후보 구세라’를 알리기 위해 목청껏 외치고, 앞에선 기운차도 뒤에선 초콜릿 하나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나였다. 내가 쓴 글 한 줄이라도 사람들에게 읽히기 바라며 여러 플랫폼에 부단히 글을 올리고, 오늘도 척척 출판되는 다른 이들의 책들과 거절 이메일 혹은, 그 거절 이메일조차 받지 못해 텅 빈 메일함을 보고, 그런 매일을 보내고 매번 녹초가 되어 하루 끝에서 나가 떨어졌다. 세라가 구의원이 되겠다고 하자 다들 ‘미쳤냐’는 식의 시선과 발언을 서슴지 않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눈에 익다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겪었던 바와 몹시 흡사했다. 아무도 내가 뭔가 해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불편한 기대만 안겼다. 모순적이면서 동시에, 나의 선택을 지지 받지 못했거나 몰매 맞았다. 나의 선택을 얘기하면 상대방은 윽박지르거나 의심을 표했고, 심지어 ‘너 그렇게 하면 인생 망쳐’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의 선택을 얘기했는데 상대방이 무시했다면 그나마 나은 거라고도 할 수도 있다. 난 덕분에 입 다물고 혼자 해결하는 데 아주 이골이 났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세라가 나와 굉장히 달랐고 자신의 선택을 명랑하고 능청스럽게 때론 버럭버럭 밝히는 모습에 하고 싶은 걸 즐겁고도 기세등등 해내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서 다시금 샘솟음을 감지했다. 한편, 세라가 구의원이 되어 걷는 고생길에서 나는 몇 번이고 울었다. 골프장 민원 해결에 온몸으로 부딪치면서도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조맹덕 의원의 수작으로 월급이 안 나와 녹즙 배달원으로 일하며 대리 운전까지 하는 세라에게서도 내가 보였다. 혼자 주최하는 사진 전시회에서 홀로 앉아 나의 사진을 멸시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스마트폰을 보느라 무시하는 이들을 어찌할 도리 없이 목도해야 했다. 전시회를 열기 전엔 ‘하라는 취업은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그래서 불효(不孝)한다는 말에 ‘그래도 세상에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꼭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꾸해야 했다. 앞으로도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글을 썼고, 그 글을 뒷받침할 책과 옷, 그림 재료들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몸살과 병원비에 앓아 눕기도 하고, 하루 종일 바빠도 당장의 금전적 성과가 없어 그 미안함에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나는 먹지도 않을 밥을 안칠 때 자괴감에 이를 악물었다. 세라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홀로 바락바락 ‘왜 안되냐’고 말할 때, ‘사랑동’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지명변경에 대한 재검토안을 내놓았지만 결국 ‘혁신동’으로 변경되는 마당 앞에서 쓸쓸한 표정을 지을 때, 그러니까 아무리 뛰고 뛰어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때 유독 공감되었다. 나의 전부를 담았는데도 이 알 수 없는 흐름의 세계와 코로나가 닥친 세상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넓고 크게 벌릴 때마다 ‘굳이 왜 하냐’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공명의 말을 빌려 답하자면 이러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걸 바칩니다.’

이 드라마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쉽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과 별개로, 큰 주목을 받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야무지게 제 이야기를 해낸 드라마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세라를 알아본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더불어, 나에겐 믿음이 생겼다. 내가 이 드라마와 세라를 알아보았듯이 누군가도 이런 나를 알아봐 줄 것임을 믿고 싶어 졌다. 내가 세라 덕분에 행복했고, 세라로 인해 내 안의 자신감을 깨우고, 세라를 보며 진득하게 내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자기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해내는 나와 그런 내가 쓴 글과 그 글이 바탕이 되는 여러 창작 활동에서 영감과 의지를 얻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구세라’를 ‘구세라’가 알아봐 줄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건 나 자신과 나에게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결심하고 난 후부터 이 소중한 존재들이 늘어난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쓰는 글들은 일정 부분 ‘구세라의 낙선 편지’와 닮아 있다. ‘낙선 편지’를 보면 세라는 애초부터 당선될 가능성을 보고 출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 있다. 세라는 단지 하고 싶어서 출마했고, 보궐 선거 유세 기간 단일화 과정 당시 손은실 후보에게 그저 후보 사퇴만 하지 않고 결국 ‘민원 수첩’을 넘겨준 것도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쳤기 때문이다. 그런 세라가 ‘낙선 편지’를 미리 써서 동네방네 돌린 건 어쩌면 당연했다. ‘구세라의 낙선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선거 운동 13일 동안 내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매순간 간절한 건 우산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세라와 함께 비를 맞은 9%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모두에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오길 바라며.”

선거 전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마원구의 9%가 세라를 찍겠다고 밝혔다. 그 9%가 세라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나야말로 그 심경을 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건 나 자신을 지키고자, 그리고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고자 함이다. 나에게 있어 ‘9%’란 나의 글을 읽어준 사람들. 그들이 해준 말을 사실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세라가 스쳐 지나가는 버스 안 학생들이 외쳐 준 응원을 듣고 지친 표정에서도 미소를 짓듯이 나도 ‘말에 임팩트가 있다’,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매번 소리없이 잘 보고 있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와 같은 말을 듣고 그간의 몸고생과 마음고생을 잊을 미소를 짓는다. 나의 글을 읽어준 사람들이 감사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글을 쓴다. 나의 글은 ‘구세라의 낙선편지’다.

세라에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나에겐 ‘말과 글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세라가 그 마음으로 구의원 활동을 했듯이 나도 그 믿음으로 글을 쓰고, 그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읽고, 형태를 넘어서길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세라가 친구, 이웃, 동료와 함께 어제보다 나은 세상으로 결국 바꾼 것처럼, 비현실이 아닌 현실이 이 세상에 자리하고 이 세상에 희망이 가능하도록 ‘구세라’들이 나와 함께하길 소망한다. 내 세상은 바뀌고 있었으니 ‘구세라’들이 함께하면 내 세상은 아예 바뀔 것이다.

세라가 구의원이 해야 할 일을 하게끔 여러 번 도움을 준 봉추산 의원에게 세라는 묻는다.

“왜 저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봉추산 의원의 답은 이러하다.

“내 편이 한 명만 있어도 신념을 지킬 수 있어요. 옆에서 같이 지켜주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당신은 어떤 세상이 현실이 되고 어떤 세상이 비현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젊은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윽박지르는 어른들이 넘쳐나는 세상은 현실로 남아야 하나 아니면 비현실이 되어야 하나. 귀와 눈을 막고 도전을 막는 시스템이 도처에 도사리는 세상이 현실로 남아야 하나 아니면 비현실이 되어야 하나. 관습과 허례허식에 자기자신을 숨겨야 하는 세상엔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은가. 부당함에 조목조목 대꾸하다가 어른한테 말대꾸한다고 혼나는 현실은 또 어떤가. 기억되어야 할 일들이 음해 당하며 잊혀지는 세상에 대해선 어떠한가. 소중한 가치와 윤리, 권리가 짓밟히는 세상은 계속될까, 사라질까. 그리고 당신은 어떤 현실을 바라며 어떤 현실에 살고 있는가. 혹,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현실이 되면 안될 것들’로 가득해서 비현실이 되길 바란다면 아니, 마땅히 비현실이어야 한다면, 부디 ‘구세라’가 되어 달라.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든 당신의 일을 굳세게 이어가 달라. 이 ‘구세라’라는 브랜드로 행동해달라. 브랜드 지침서는 다음과 같다: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라, ‘구세라’가 되어.

*안 되는 걸 해서 되게 하라, ‘구세라’가 되어.

*내쳐지는 사람이 없게 하라, ‘구세라’가 되어.

*지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구세라’가 되어.

*이기는 편에 서지 말고, 내가 서는 편이 이기게 만들어라, ‘구세라’가 되어.

사실 이 세상은 사람을 참 망설이게 하는 재주가 있다. 윤희수 의원도 결정적으로 세라를 도울 수 있는 기회에서 늘 세라의 편을 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윗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시달리며 민원 해결과 가치 보전에 힘쓰는 세라 앞에서 윤희수 의원은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럼 세라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서는 편이 이기는 편이다’. 그렇다. 본인의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 아마 사랑동 지명 변경에 윤희수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사랑이라는 이름은 비단 ‘(구)사랑리조트’ 정류장 말고도 더 많은 곳곳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윤희수 의원도 알고 있었다. 찬성표를 던지면 힘있는 자들 옆에서 승승장구할 길이 열리고, 반대표를 던지면 사랑동 자체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불공정하고 부당함을 알고도 그런 세상이 나를 쥐고 흔들었던 전과가 두려워서 혹은, 지금껏 그 세상이 만든 편안을 잃을까 두려워 나 자신을 숨기는 이들, 수많은 ‘윤희수’들, 당신이 살고 당신의 자손이 살아야 할 세상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윤희수 의원에겐 가녀린 양심이 있다. 그 가녀린 양심이란, 부족한 지역 예산으로 구청 지원금이 끊긴 저소득층 공부방 아이들. 윤희수 의원은 결국 고민 끝에 스마트원시티 6구역 환경영향평가서를 손은실 후보 캠프에 전달했고, 그리하여 손은실 후보가 구청장이 되어 과거 참사를 기억하고 안전을 약속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낳은 선택들의 시작은 세라의 구의원 출마 결심이었다. 구민들이 세라를 구의원으로 선택한 것보다 세라가 구의원이 되기로 선택했음이 먼저다. 대다수 사람들은 착각한다, 본인의 선택보다 권위자의 간택이 중요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건 본인의 선택에 기저를 둔다. 우선 선택하지 않는다면 권위자의 간택도 이뤄지지 않으며, 그 권위자의 간택도 본인이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 선택하는 데 달려있다. 본인의 선택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 비록 선택이 낳은 당장의 결과가 본인을 괴롭게 할 수 있지만, 본인의 자주적인 선택이야말로 본인이 이기는 편, 더 나은 세상, 해피엔딩을 형성하는 가장 큰 지름길이다. 선택에 있어 피하지 않음, 즉 정면돌파가 핵심이다. 세라는 지금껏 늘 그랬다. 또한, 세라가 단지 ‘연 90일 출근에 연봉 5000’ 받기 위해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세라의 구의원 출마 선택은 필연적이었다. 세라는 중학생 때 ‘사랑리조트’ 참사 자리에 놀이공원 설립을 반대하는 민원을 넣은 ‘불나방 민원왕’이다. 마을의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속속들이 알고 민원 해결을 위해 ‘민원 수첩’까지 만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마치 학급을 대표해서 일하는 반장 같은 존재인 구의원이 되기를 선택하는 건 뜬금없는 행동이 아니다. 말하지 않았나, 이유 없는 해피엔딩은 없다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당신, 당신이 ‘공명’이든 ‘윤희수’든 ‘권우영’이든 혹은,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또는 ‘소중한 걸 지키고 싶다’면 ‘구세라’가 되어 달라. 자신이 꿈을 이룬 어른이 되어 자손에게 꿈을 꾸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귀와 눈을 열고 도전을 독려하는 문화가 자리잡은 세상,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안전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세상이 현실이 되도록 ‘구세라’가 되어 달라. 거짓 자신이 아닌 진짜 자기자신으로 솔선수범해서 살아 달라. 동시에 현실다운 현실에 힘써 달라. 기적은 현실에 없던 일이 비현실처럼 현실로 일어날 때 쓰는 말이다. 우린 이제까지 ‘현실에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 만연한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이 현실다운 현실에서 살기를 택한다면 더 이상 기적을 바랄 필요 없다. 그렇다면 ‘취한 척 허리 만지는 ‘양아치’에게 파채 던져서’ 해고 당하고, ‘상사의 법인 카드 노래방 사용을 고발했다가’ 해고 당해 기어이 구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 일이 기적이 아니게 된다. 비현실적인 현실이었기에 세라가 구의원에 당선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억해야 할 생명들, 또 가치와 윤리, 권리가 지켜지는 세상을 바라며 부디 ‘구세라’가 되어 달라. ‘구세라’가 되길 선택해 달라. 그럼, 적어도, 봉추산 의원의 말처럼, ‘누리진 못해도 바꿀 수 있다,’ ‘따로 또 같이.’ 세상을 바꾼 이 브랜드가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세상을 바꾸도록 ‘구세라’가 되어 ‘구세라’들과 세상을 바꿔 달라, 아니, 세상을 바꾸자. 희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더는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연대하자. ‘십시일반! 상부상조!’

드라마는 구세라의 또 다른 정치 인생이 시작됨을 내포하며 끝난다. 장담하건대 세라의 다음 선거 구호는 이럴 것이다: #내가구세라다

세라의 또 다른 정치 인생을 기다리며, 9%가 99%가 될 때까지, 그리고 오늘도 노력해서 수고한 ‘세상의 많고 많은 구세라를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구세라’(굳세라)입니다!”




2020.08.27 씀

2020.08.29수정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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