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꿈이 꿀이다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by 전해리

음식 : “아카시아꿀100%” 퓨어 허니스틱 (고려인삼)

글 : <설경구라는 인연>(신기주 글, 에디터스 레터, 에스콰이어 코리아 07.2018)

<박창진의 생존>(인터뷰어 : 신기주, 박찬용 에디터, 인터뷰이 : 박창진, 에스콰이어 코리아 07.2018)

<기억의 습작>(신기주 글, 에디터스 레터, 에스콰이어 코리아 01.2019)

<이병헌의 여정>(백진희 패션 에디터, 신기주 피쳐 에디터, 김희준 사진가, 에스콰이어 코리아 01.2019)

<새해를 기대하면서>(고현경 피쳐 에디터, 에스콰이어 코리아 01.2019)

노래 : 기억의 습작(김동률 노래, 작사, 작곡)

마음(아이유 노래, 아이유, 제휘 작곡, 아이유 작사)

Someone in the Crowd(Emma Stone, Callie Hernandez, Jessica Rothe, Sonoya Mizuno 노래, Justin Hurwitz 창작)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조금 배웠다고 이젠 더는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떤 욕심은 기어코 삼켜 속이 쓸린 다음에야 그 자체로 과분했다고 깨닫게 된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란 걸 모르진 않았지만… 역시 먹지 말았어야 했다. 그 각성의 시간은 꼭 새벽 2시 언저리다. 곧 자야 할 시간, 하루의 집안일을 마무리하기 더없이 촉박한 시간, 의욕이 느닷없이 솟아나는 시간, 아쉬움과 후회가 뒤섞이는 시간, 나의 새벽 2시에는 이름이 많다. 또 있다: 잠에 들기엔 뜨거워 들썩이는 뱃속을 어쩔 줄 몰라 종종거리는 시간. 새벽 2시는 더 이상 뭘 먹으면 안 되는 냉담한 시간이지만 이 뱃속으로 도저히 잠들 수 없으니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소화제는 그만, 매실차도 지겹다. 해답을 찾았다. 바로, 꿀이다.

순간을 시간으로 늘리기 위해 따뜻한 물에 꿀을 탔다. 그러곤 오래전의 에스콰이어를 폈다. 속을 달래는 참에 마음도 함께 달래고 싶었다. 잡지를 펴는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때그때의 유행을 담아내는 데 충실한 잡지를 발행시기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꺼내 읽는 것도 실로 묘한 일이다. 세상을 뒤엎을 듯 들썩이는 것들도 결국은 다 찰나고, 영원한 건 없고 다 지나가는 것뿐임을 깨닫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래된 잡지 한 권 읽으면 그만이다. 동시에 불편한 진리도 깨치고 만다. 만물이 한때임과 마찬가지로 화르르 타오르는 열의마저도 언젠가는 끝남을 알게 되는 건 여전히 쓰라린다. 나는 어차피 꺼뜨릴 불에 뭘 그리 욕심을 걸었나. 더욱이, 읽었던 잡지를 꺼내 보기가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신기주 전 편집장의 글을 읽고 싶어 용기를 낸다. 내가 당시 무슨 생각으로 남성 잡지를 샀는지 도무지 기억 나지 않지만 그때의 나를 칭찬하고 싶을 만큼 에스콰이어 코리아 2018년 7월 호를 아끼고 있다. 당시엔 내가 이럴 줄 몰랐지만 지금은 그 7월 호를 잡지의 표본으로 여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 차치하고, 가장 주된 이유는 신 전 편집장과 박찬용 에디터가 함께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의 인터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고 울어본 건 그 인터뷰가 처음이어서 그런가, 다른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어도 내 마음은 제자리를 찾듯 그 인터뷰를 찾았다. 머리가 띵 울린 인터뷰는 지큐 코리아 정우영 에디터의 사카모토 류이치 인터뷰지만, 마음이 울린 인터뷰는 단연 에스콰이어의 박창진 인터뷰다. 읽어도 읽어도 새삼 다시 위로 받는 기분이 드는 소이연은 나 자신과 마음이 세상사에 한껏 쪼들리고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아픈 배를 움켜잡지 않고 허리와 어깨를 피려고 박창진의 에스콰이어 인터뷰를 읽는다. 그 인터뷰로 인간의 존엄에 대해 처음 인지했고, 이는 전부 훌륭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덕분이라 단언한다. 좋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존엄을 이야기할 대답도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엄을 확인하고, 기분이다! 오랜만에 맨 앞장부터 다시 펼쳤다. 에디터스 레터가 있었다. 사실 잡지를 많이 정리했음에도 신 전 편집장의 글을 읽기 위해 몇몇 권의 에스콰이어는 남겨뒀다. <설경구라는 인연>은 몇 번을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지만,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글에 애착이 생긴다. 이런 변화에 아마 편집장님을 실제로 뵌 경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설경구 배우에 대한 편집장님의 쑥스러운 일화가 나에게도 있다. 때는 12월의 에스콰이어 클럽 파티, 난 초대받은 걸로도 모자라 웬일로 운이 좋아 [요즘 브랜드] 책까지 상품으로 탔더랬다. 상기된 기분으로, 또 무슨 생각으로 마침 주변에 계셨던 편집장님께 다가가 말을 걸어버렸다! 짧은 순간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글에 드러난 것과 다르게 굉장히 젊어 보이신다’는 나의 (생뚱맞은) 말에 인자하게 웃으시며 부인한 편집장님이 아직도 또렷하다. 그 순간만 떠올리면 쥐구멍에 숨어 영원히 나오고 싶지 않지만, 그 경험으로 <설경구라는 인연>에 담긴 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 애틋함에 다시 읽다, 뜻밖에 그땐 전혀 알지 못했던 마음이 읽힌다. 잡지 중에 남성지, 남성지 중에 에스콰이어를 집은 건 설경구 배우가 있는 표지의 영향이 컸다. 표지 모델로는 드문 선택이었고 그래서 끌렸다. 그 선택에 대한 설명을 이리 옮겨 본다.

“(생략) 그렇기에 이 남자의 행보에서는 스스로를 남김없이 태워버리려는 격렬한 치열함이 읽힌다. 설경구를 [에스콰이어] 커버로 다루고 싶었던 이유다. 온 세상이 찬란한 미래를 향해 겁 없이 상승하는 청춘의 얼굴을 찾을 때 [에스콰이어]만큼은 이달만큼은 인생의 수많은 고비를 넘어 마침내 절정기를 통과하고 그 정점에서 치열하게 활활 타오르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당 호에 실린 설경구 인터뷰를 읽다가 문득 에디터로서 첫 인터뷰로 설경구 배우와 대화한 20년 전의 그날로 되돌아간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문장을 읽고 나까지 의도치 않게 그 잡지를 산 3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2019년 1월 호의 에디터스 레터로 옮겨 간다. <기억의 습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첫사랑은 떠났어도 김동률은 남았다.” 순간, 떠난 것과 남은 것이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정확히는, 떠나야 할 것과 남아야 할 것이다.

나의 체질이나 소화능력에 걸맞지 않은 음식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어코 먹고 싶었던 건, 정말 먹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음식을 나도 같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먹었던 걸까. 아이스크림, 과자, 케이크, 매운 떡볶이, 치킨, 햄버거: 남들은 먹어도 나는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도 먹은 후 체기와 아토피를 꾸역꾸역 다스려야 했던 나날들을 스스로 안쓰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 봤자 어쩌다 한 번이었지만, 그 한 번도 내 몸엔 너무 가혹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라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온몸이 그 음식들을 거부해도 혹여 언젠가 적응이라도 될까 먹는 걸 포기하지 않았지만, 이젠 포기한다. 남들이 사는 평범한 삶을 살기를, 정확히는, 남들은 누리는 평범한 삶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포기한다. 나는 이미 고달프고 애달픈데 이보다 더 고달프고 애달픈 삶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육체가 소화되는 음식이 남과 다르듯 말이다. 그러한 현실이 그저 현실 이상으로 진실일 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이라 현실을 수긍하다가도 역해서 토해 버리는 날들도 잦았다. 죽 끓듯 하는 변덕에 소화기관이 지쳐버려 미음만 목구멍으로 겨우 넘기게 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읽은 신기주 전 편집장의 <기억의 습작>은 참 편안하고 따따했다. 어떤 사랑은 어떤 이유로 괜히 미워지게 되는데,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미움조차도 고통스럽기 마련임을, 종내 미움은 녹아내려 사랑이 영원해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의 습작>은 고백한다. 그 고백은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가능했고, 그렇기에 더더욱 고귀하다. 신 전 편집장은 ‘김동률의 음악에 위로받은 건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깊었기 때문’임을 전람회의 마지막 콘서트로부터 21년의 시간이 흐른 뒤 깨닫는다. 10대에 들은 ‘기억의 습작’을 40대에 다시 들은 소회를 내가 감히 겉잡을 수나 있을까. 다만 글에서 그 마음의 온기가 느껴질 뿐이다. ‘김동률이 평생 추구해온 음악적 목표가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됐다’는 문장에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김동률은 이런 글을 모르겠지만, 나는 김동률은 참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결국엔 그 깊이를,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사람을 떠나보내고 시간을 떠나보내고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야 나를 마주보게 되었네 (생략) 내 안의 움찔거리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적어도 더 이상 삼키지 않고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른다”는 ‘노래’의 가사에 나도 신 전 편집장처럼 눈물로 눈을 깜빡여야 했다. 신 전 편집장의 글과 함께 타고 내려온 김동률의 노래에 위장이 드디어 평화로워졌다. 그리고 내가 먹은 음식이 그저 배를 불리기 위해, 또 배를 앓아서 먹은 것이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잠잠해진 속내를 마침내 알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왜 날 알아주지 않을까’ 질문을 심중에 달고 살았다. 그래서 영화 ‘라라랜드’에 나오는 ‘Someone in the crowd’가 각별했다. 저 중 누군가는 날 알아봐 줄 거야. 필시 있을 거야. 반면, “나를 알아봐 주세요”를 반대로 말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막상 입으로 내뱉어 보려니 한 문장이 몹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셔도 돼요.” 이 문장이 처음으로 내게 어여쁘고 갸륵해 눈가에 이슬이 반짝 맺혔다.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 있어요.” 나에게 어떤 양식(糧食)이 필요한지 느껴졌다. 나를 알아봐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치만 나 여기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거에요.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겼을 글에 마음이 고정되었다. 제목은 ‘새해를 기대하면서.’ 2019년 1월 에스콰이어의 가장 마지막 장에 있다. 지금은 연초나 연말이 아닌데도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이렇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면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곧잘 등장합니다. 하지만 새해를 기다리는 지금, 당신의 365일 동안 많은 일은 있었어도 많은 어려움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었다 한들 지나보니 결국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여기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매해 어려웠다고 했다. 다사다난이 어울리지 않는 해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잠시의 착각일지 모른다. 작년과 올해만큼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 해가 또 올까. 이런 삶이 올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매번 힘들다 했지만 정말 힘든 해는 이미 지나갔을 수도, 현재 겪고 있을 수도, 혹은 곧 다가올 수 있다. 언제 덜 힘들지 언제 더 힘들지 알 수 없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 콕 집어 몇 해가 힘들다기보다는 오히려 인생 자체가 이렇게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조차도 맞는지 틀린지 모른다. 그러니까 갈수록 절실해지는 건, 매해보다 인생의 매 순간이다. 어차피 힘들다면,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아니, 가장 좋을 것 같다. 알아주길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그저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삶.

예전 같으면 그러려니 가벼이 넘겼을 말이 현재 유달리 내 마음에 깊이 녹아 든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잖아요.” 특히 젊음은 더 짧다. 사실 이렇게 시간이 아까운데 코로나가 벌써 두 해째나 걸려 있다 보니 조급해진다. 젊음도 인생도 참 짧은데 나는 속이 갑갑하기만 하다. 그런데 신기주 에스콰이어 전 편집장은 이병헌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들 인생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죠. 근데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건, 목표 지점까지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 보는 데까지 가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는 거죠. 그냥 가 보는 데까지 가 보는 게 인생이구나.” 나는 기어이 웃음이 났다. 안심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니, 그냥 모든 게 다 괜찮을 거 같아서 웃었다. 갈 때까지 갈 생각에 일순 온전한 평화가 찾아왔다. 난 더는 아프지 않고 다시 튼튼해졌다.

나는 늘 바람이 많았다. 그 바람에 장단을 맞추느라 속이 남아나질 못했다. 어려서는 바람을 이루느라 속이 너덜거리는 줄도 몰랐다.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는 바람에 따라가기 급급했던 결과, 기쁘기는커녕 메스꺼웠다. 바람에 한눈 팔려 정작 꿈 앞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니 바람이 싫어졌다. 바람이 지겹다. 바라는 게 지겹다. 바람을 쫓지 않기로 결심하자 배앓이가 멈췄다. 일순 평화가 느껴졌다. 바람과 꿈은 이토록 다르구나. 덜 흔들리니 꿈의 육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바람이 적어도 노 저을 물이 끊임없이 들어오니 됐다. 세찬 바람이 부는 날이 되면 그때는 비로소 바람이 내 등 뒤에서 불 것이다. 그럼 나, 반갑게 그 바람 등에 업고 육지에서도 더 멀리 나아가리.

꿀물 한 잔을 다 마시니 마침내 속이 맨들맨들하다. 이젠 움직이지 않으면 큰일나는 시간대에 이르렀다. 나는 기꺼이 혹은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러 갔다. 아, 그래서 꿀맛이 어땠냐 하면, 신기주 전 에스콰이어 편집장의 글맛과 아이유의 마음맛이 큰 별미였다.


:: 맛있게 먹는 법

내가 곰돌이 푸라면 좋겠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니 단지에서 꿀을 퍼먹는 건 너무 불편하다. 이런 번거로움을 해소하고 편리함을 더해줄 제품 하나를 우연히 선물 받았다. “아카시아꿀100%” 퓨어 허니스틱은 한입거리인 것도 정말 사랑스럽지만, 양이 적은 덕에 꿀 특유의 끈적끈적함을 입에 덜 남기는 것도 아주 기특하다. 피곤함은 때와 위치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고 꿀 봉지는 마침 가벼우니 푸처럼 아무렇지 않게 꿀을 챙겨 다닐 요량이다. 이렇게 인간과 푸는 평생 친구 사이로 남을 수밖에 없는 걸로 입증된다.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사이는 평생 남기 때문이다.


:: 사족

<설경구라는 인연>은 이렇게 끝납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기억나는 그날, 새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 나는 배우 설경구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저도 그 파티의 현장에서 편집장님께 어떤 말을 드렸는지 기억이 아예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 역시 편집장님처럼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별것 아니었는데도 아무것도, 아무도 아닌 나에게 그런 미소, 그런 존중을 보인 사람은 편집장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편집장님의 모든 에스콰이어를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제가 읽은 편집장님의 에스콰이어만큼은 전부 최고였습니다. 영원히 잃지도, 잊지도 않을게요.


목소리와 함께 읽어 보세요!

https://youtu.be/8VGhdyT7U34


음악과 함께 듣는 글

https://music.apple.com/kr/playlist/%EC%83%B4%ED%8E%98%EC%9D%B8-%EC%9E%94%EC%97%90-%EB%8B%B4%EC%9D%80-%EC%9A%B0%EC%9C%A0/pl.u-WabZ6ojCd7P3R3


<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천 냥 빛

- 하농

- My Life bu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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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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