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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해리 Jan 07. 2022

당신이 필요할 여행

page4 머리말

머리말 


시작도 못해봤는데 끝장난 것 같다. 이 문장을 쓰고 나는 한참 동안 어떤 단어도 쓸 수 없었다. 그저 문장 하나를 썼을 뿐인데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간신히 운을 떼자면, 지금으로서 내가 오직 할 수 있는 건 글을 쓰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음을 직감한 순간 세상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구질구질 살면서 바득바득 믿은 신념과 가치관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조차도 나에게 사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째서 지금, 두 번째 여행 에세이 [당신이 필요할 여행]의 머리말을 쓰고 있을까. 무너지는 억장으로도 나는 왜 글을 쓸까. 

그게 바로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지금까지 행동하기 위해 글을 썼고, 내가 쓴 글을 바탕으로 산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방식으로 살기에, 내가 쓴 글은 온통 나의 살아있는 생각이자 지나간 시간이며, 존재에 대한 증거이다. 나의 글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은 나의 삶에 대한 예의이고 약속이다. 바로, 삶을 쉽게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니 먼 이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것도 고사하고 집 문 밖으로 한 발자국 떼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기에, 첫 번째 여행 에세이이자 어린 날부터 꾼 꿈의 실체인 [당신이 필요한 여행]을 탈고했음에도 여전히 출판이 막연한 처지에, 또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당신이 필요할 여행]을 써야 한다. 나는 여행이란 물리적 이동보다도 심리적 행군이라고 [당신이 필요한 여행]을 집필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감지하고, 여행에서 내딛는 모든 발걸음은 결국 나를 향한 진일보라며 [당신이 필요한 여행]을 집필하면서 확신했다. 첫 번째 여행 에세이 [당신이 필요한 여행]은 여행을 갈 수 없어도 여행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원천이고 원동력 자체다. 그 속편이자 두 번째 여행 에세이 [당신이 필요할 여행] 저술은 ‘여행이 곧 삶, 삶이 곧 여행’이라는 나의 여행 가치관과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당신이 필요한 여행]의 존재 가치에 대한 증명이 될 것이다.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고, 내가 알던 일상이 멈췄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듯, 삶이라는 여행은 당연히 계속된다. 

사실 내 딴엔 [당신이 필요할 여행]을 쓰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긴 했다. 아무리 쓸 수 있다고 해도 아직 첫 번째 여행 에세이도 출판하지 못했는데, 써야할 글이 쌓여 있는데 하물며 시작하면, 나는 또 얼마나 어렵게 쓸까 걱정이 앞섰다. 그 어떤 글도 쉽게 쓴 적 없지만, 여행 에세이는 유독 긴장감의 정도가 다르다. 많고 많은 종류의 글 중, 에세이를 쓰는 일이란 평화로운 나루 위를 조각배를 저으며 찬찬히 둘러보는 일과 같다. 가뿐하고 경쾌한 직무는 그 앞에 여행이 붙으면 확연히 달라진다. 에세이를 쓰는 일은 끈질긴 너울이 들썩이는 바다 위로 옮겨 간다. 그 과정은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정이 절대 아니다. 나는 날 전복시키려는 파도와 폭풍에 맞서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 즉, 여행 에세이를 쓰는 일은 매 순간 거칠고 까다롭고 예측 불가능하다. 그게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괴로우니 자진해서 심화된 고생길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당신이 필요한 여행]에서 여행에 관한 견해와 감상을 전부 쏟아 부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또 할말이 있다고? 

[당신이 필요한 여행]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여행 에세이의 전형이었다. 여행 에세이 책을 쓰겠다는 다짐을 한 후 기준과 목표를 세워 두고 그에 맞추려고 부단히 애썼고, 천만다행히 그 노력은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필요한 여행]에 대단히 만족한다. 그렇다 보니 나로서는 그 속편에 대한 착상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 성가심을 떠나 극히 의외다. 쥐구멍에 숨어 있어도 여행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이 뇌리에서 튀어 올랐다. 그 생각들은 전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

“더 솔직해지고 싶다.”

[당신이 필요한 여행]에서 나는 분명히 솔직했다. 그럼에도 솔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솔직하지 않았다거나 덜 솔직했음이 아니라 다른 관점도 잃고 싶지 않다는 뜻일 테다. 내가 바라고 정해둔 길을 가느라 차마 가지 못했던 길이 이제 와서도 눈에 밟힌다. 다만, 새삼스럽진 않다. 가지 못하는 길에 대한 호기심과 미련은 본디 인간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와 불안이 안개처럼 자욱한 지금, 어차피 새로운 길로 가지 못하는 바에야 마음이 쓰이는 길로 가겠다. 결국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용기를 내는 순간 시작된다. 

모든 여행은 각기 다른 형태를 보이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불가측성. 불가측성은 고유한 여행을 탄생시킨다. 고유한 여행은 순간마다 고유한 단안을 낳지만, 그 단안조차도 뜻밖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자는 그 무엇도 단언하지 않는다. 자신하지 않는다. 여행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불안이 된다. 여행에서 불안은 마땅하다. 글을 하는 이 삶이 불안하더라도, 두 번째 여행 에세이 [당신이 필요할 여행]를 쓰는 여정의 끝을 장담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글로 남기고 싶은 것이 존재하는 한 그냥 쓰는 거다. 

훗날 여행을 회억할 때 우리는 환경 조건보다도 그 환경에 반응했던 우리 자신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행을 ‘그날 날씨는 맑았음’이 아니라 ‘그날 날씨가 맑아서 길거리를 걷기 더없이 상쾌했다’고 기억한다. 추억하는 건 날씨 자체 대신 그러한 날씨에서 여행하는 나 자신이다. 하다못해 날씨가 좋지 않거나 원래 가려던 곳이 문을 닫았다고 해도 우리는 ‘여행 중’이라는 구실 하나만으로 다시 길을 나설 힘을 낸다. 고로 지금, 여행을 갈 수 없는 여행, 삶답지 않은 삶이라고 해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 여행 중이다. 

나서라. 















2021년을 여미며.


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당신이 필요할 여행]은 머리말까지만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머리말 이후의 글은 브런치에 공개하지 않고 씁니다.

언제쯤 출판하게 될지는 

막 시작한 현재로서는 알 수 없겠지만

책으로 만나게 될 [당신이 필요할 여행]에 

따스한 기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당신의 여행을 응원하며 

전해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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