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발견을 위한 사전, 라이프 딕셔너리
평소 즐겨 보는 #롱블랙 노트에서 에디터나 작가에게 필요한 건 취향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선택해서 관철시켜야 하는 힘, 저는 이 관점이야말로 에디터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 취향이 중요하다는 역설 또한 주장합니다. 취향을 먼저 발견해서 그걸 고심하며 가다듬어야 비로소 나만의 관점이 생긴다고 믿거든요.
회사, 혹은 짐짓 있어 보여야 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아니면 곤경에 처했을 때 꺼내어 쓰기 좋은 마법 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이라거나, 'MZ세대들의 니즈'라거나, '눈에 보이는 지표로 측정하기 어렵다'거나, '애플의 사례처럼'과 같은 단어들요. 취향 또한 전 그 연장선 상에 있는 단어일 때가 많음을 느낍니다. 덧붙여 과연 각자가 알고 있는 그 취향이 진짜인지 역시 궁금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찾고 헤매가며 정말 모든 정보를 섭렵한 뒤 찾은 취향이 맞는지 말입니다. 누군가는 성실한 시간과 함께 쌓고 있는 취향을 다른 어느 누군가는 과시의 수단으로 쓰기도 하고 삽시간에 돈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취향의 발견엔 필연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과 정보량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제가 그간 읽기를 주저하며 늘 회피로 일관했던 형태의 책입니다. 엄청난 두께의 벽돌 책은, 그 자체로 너무나 큰 진입장벽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곤 하니까 말입니다. 1,279페이지의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전 이 책은 꼭 한 번 경험해보길 바란다는 역설을 다시 한번 주장합니다. 나만의 관점을 만들기 위해, 그에 앞서 나만의 확고한 취향을 찾기 위해, 그보다 더 먼저 ‘다양한 인풋과 인사이트를 내 안에 축적하기 위해’ 말입니다. 나만의 관점을 만들기 위해 먼저 우린 다양하면서도 동시에 유의미한 사례와 정보, 그리고 누군가의 경험을 먼저 섭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비로소 나만의 취향이 확고해지며,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고유한 관점과 개성, 색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 믿습니다.
‘라이프 딕셔너리’라는 제목의 이 벽돌 책은,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의 창업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모은 사례집이자 인터뷰집으로, 각자 자신만의 뾰족함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터뷰 형태의 글이 가지는 힘은,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책 속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몰입감을 제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사이의 글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대화의 흐름과 그 맥락, 어떤 지점을 강조해서 말하는지, 또 어떤 점을 눈여겨봐야 할지 윤곽이 잡히기 때문에 깊은 이해에 용이합니다. 저자들의 ‘연결’을 통해 북저널리즘이 그간 쌓아온 힘 또한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167 팀의 사례 중 내게 유의미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고 구분하면서 내 안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더불어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는 그 길 위에서, 실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역시 이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위안을, 혹은 작은 확신을 더해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번에 내달리는 완독의 형태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들춰보는 나만의 아이디어 노트, 혹은 새로운 영감을 위한 창고, 나보다 한 발 앞선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가늠하기 위한 아카이빙 사전. 뭐라고 명명하건 각자의 이용과 쓰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도모하려는 모두의 목적은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그 배움의 과정에서 이따금 터져 나오는 즐거움이 모두의 바람 아닐까요.
그간 167팀을 인터뷰하며 발 빠르게 쌓아 올린 북저널리즘의 저력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연결의 힘이 확보된다면 보다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 또한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시장은 언제나 불황이라는 우스갯소리 가장한 현실 속에서도 기존의 방법만을 고수하지 않고 늘 발 빠른 시도와 결과물을 내놓는 그들을 저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계속된 폭우와 거듭 불어오는 태풍에도 지금 그 나침반이 계속 한 방향을 가리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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