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사과와 토끼머리, 그리고 천극-중국 쓰촨성 청두(3)
안녕하세요, 리우화입니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직업, 취미, 말투와 태도를 통해 “이 사람, 생각보다 괜찮네” 하고 마음이 바뀌기도 하죠.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지인을 만나고 문화를 체험하며
마음속 편견이 무너지고, 어느새 그 나라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오늘은 중국 쓰촨성 수도, 청두에서의 야행(夜行)을 함께 떠나보려 합니다.
다소 낯설고 때론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문화의 일부로 함께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늘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청두의 별빛 아래 좋은 밤 보내세요.
1. 중국의 지독한 '황금' 사랑
"너넨 진짜 황금에 미쳐있구나?"
중국 쓰촨 성 청두 IFC(International Finance Center) 몰 근처 번화가. 수 억은 족히 쏟았을 번쩍이는 건물 하나. 바로, 황금 판매점이다. 가게 앞에선 수려한 외모의 직원들이 '금 할인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시민들은 집 앞 슈퍼 들리듯 가게 안으로 줄지어 들어간다.
한국에서도 금을 싹쓸이한다는 중국 쉐도우 부자들. 예로부터 중국에서 황색은 '황제의 색'이라 불리며 부와 권력, 번영을 뜻하는 색으로 쓰였다. 지금도 춘절이나 결혼 예물, 출산 선물에 금장식이 오간다.
황금 진열장은 가히 압도적이다. 중국 고대 화폐 원보(元宝, 금덩이 모양), 돈나무, 금사슴과 금사자. 손만 대도 값을 물어야 할 것처럼 호사스럽다. 수 억을 호가하는 금빛 재물들에 없던 탐욕도 솟는다.
"너네 경제 불황 아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게에 손님이 많네."
"중국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금을 집에 쌓아 놔. 안전 자산이라 생각하거든."
과연 세계에서 알아주는 금 생산량 1위, 중국답다. 지하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젊은 여성이 수백만 원짜리 골드바를 사서 나간다. 상대적 박탈감보다, 그들의 통 큰 소비가 그저 경이로웠다.
妙波喜乐果
금빛 사치를 뒤로 하니 이번엔 부의 끝판왕이다. 이 사과는 직역하면 '기쁨의 열매'다. 100위안 화폐 99장(한화 약 200만 원)을 잘게 찢어 만들었다. "완전 돈지랄이네." 지하오가 못 듣게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이 사과는 붉은빛과 황금빛, 종잇돈까지 갖춰 중국인에게는 ‘복사과’나 다름없다.
그 옆엔 장식품 이상의 아우라를 지닌 백주(白酒)도 있다. ‘중국의 술’이라는 자의식이 강한 백주. 한 병당 한화 약 560만 원이다. 괜히 깨뜨렸다 배낭여행객에서 외노자가 될까 멀찍이 떨어져서 관람했다.
"이런 건 왜 만드는 걸까? 어차피 사 가는 사람도 없잖아." 내 순진한 질문에 지하오는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국에서 '꽌시(关系, 인맥 문화)' 문화는 필수야. 다른 세상에 사는 고위층 인사들은 이런 술 한 병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름하지. 금이나 돈사과 역시 맞찬가지고."
그의 말을 듣고 나니 호화스러운 진열대가 조금 달리 보인다. 황금은 불안한 세월을 견뎠고, 돈사과는 복을 사려는 소망이 담겼다. 백주는 사람 사이를 잇는 체면의 마중물이었다. 눈부신 금빛 장식과 진귀한 술병 너머엔, 중국이 살아온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함께 비치고 있다.
2. 먹어는 봤나, 쓰촨의 괴식 문화
*일부 음식 사진은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제발, 음식이라고 말하지 마." 토끼머리, 토끼 몸통, 토끼 다리. 마라향 폴폴 나는 청두의 대표 별미다. 시식용 고기는 잘게 잘려 원형을 알 수 없다. 다만 머리는 귀만 뗀 채 그대로 팔린다. 점심을 거른 허기가 단번에 사라진다.
"은근히 괜찮아. 개구리 허궈 기억나지? 먹어보기 전까진 맛을 모른다니까." 지하오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너넨 네 발 달린 것 중 책상 빼고 다 먹잖아'. 중국어로 말하려다 싸울날까 참았다.
"먹어 볼 거지? 청두까지 왔는데, 용감하게 한 입씩 하자." 지하오가 금세 사 온 토끼머리를 내 눈앞에 내밀었다. 향신료로 가득 덮였지만, 기다랗고 하얀 앞니만은 선명하다.
지하오가 내 두 눈을 가리고 볼짝을 뜯어 먹여줬다. 식감은 족발 용기 구석의 퍽퍽한 살코기 같다. 맛있냐고 물어보면, 아주 알싸하고 매콤한 죄책감의 맛.
이번엔 오리다. 한 마리를 통째로 펴서 양념한 뒤 훈제한 '흑미오리(黑秘鸭)'. 비주얼은 더 참담하다. 밥반찬이나 맥주 안주로 먹는다. '보기도 좋아야 먹기도 좋다'란 말은 한국에서만 쓰는 건가? 오리고기니 맛은 있다. 육포보다 더 질기고 옅은 고소함이 느껴진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괴식 문화'는 뼈아픈 뿌리가 있다. 역사 속 끝없는 전란과 기근, 생존하기 위해선 뭐든 먹어야 했다. 중국은 대륙 특성상 지역마다 식재료가 달라, 결국 ‘못 먹는 게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퍼졌다. 취두부 역시 명나라 백성이 주린 배를 채우려 상한 두부를 튀겨먹은 일이 기원이 됐다는 설화가 있다.
길거리에는 괴식만 있는 건 아니다. 죽순 아이스크림, 달콤한 젤리 빙수, 판다 얼굴 케이크. 이색적이고 달달한 간식들도 행인의 눈길을 끈다. 특히 '마라(麻辣)'의 본고장답게 마라소스를 활용한 특산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시원한 젤리 빙수를 나눠 먹으며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한 식당 앞에 매여있는 '진짜' 생토끼 한 마리. 옆에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现点现杀(주문 즉시 도살)> 잔혹함에 소름이 돋았지만, 이젠 나도 토끼의 맛을 본 공식자(共食者). 도망칠 수 없는 공범이 된 듯 진땀이 흐른다.
3. 청두 문화 번영의 꽃, 오페라 '천극'
한참 길거리 음식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됐다. 이제 청두의 전통 공연, '천극(川剧, 쓰촨 오페라)'을 관람할 시간이다.
천극은 중국 5대 희곡 중 하나로 쓰촨 지방 전통 공연이다. 약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명·청대에 형성되어 쓰촨, 충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변검(变脸, 얼굴 바꾸기), 화극(火戏, 불 뿜기) 같은 화려한 기예로 유명하다.
지하오가 예약해 준 번화가 골목 공연장에 들어가자 마치 혜화동 소극장에 들어선 것 같았다. 연극장에서 판매하는 따끈한 꽃차를 우려 마시는 동안 아리따운 배우가 나와 앞서 진행될 공연의 설명을 짤막하게 전한다. 그리곤 일시에 불이 탁 꺼졌다.
화르륵- 입에서 내뿜는 화려한 불꽃과 시작된 천극! 눈 깜짝할 새에 휙휙 바뀌는 가면들, 흰 천 뒤에서 펼쳐지는 그림자 공연, 매혹적인 춤선과 해학적인 스토리까지. 쓰촨 방언으로 이뤄져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귀와 눈은 충분히 황홀하다. 배우들은 관객석을 자유롭게 오가며 노래, 무용, 곡예 등 각종 기예를 선보인다.
"太棒了! 나 이제야 중국을 제대로 경험한 것 같아!
관객들은 손뼉 치고 호응하며 무대에 빨려 들어갔다. 진한 화장이 주는 기묘함과 과장된 몸짓, 그럼에도 묵직한 위압감에 감탄이 나왔다. 창법은 가볍고 경쾌해 관객들도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작은 소극장이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홀이 됐다. 쓰촨성이 지닌 예술적 풍요로움이 무대에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듯했다.
문득 무대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젊은 세대다. 2030 세대가 전면에서 전통문화를 즐기는 신선한 풍경이다. 중국 젊은 세대는 이 밖에도 전통 복장 체험, 춘절 음식 먹기, 시녀 머리 스타일링 등 새로운 전통문화 트렌드들을 이끌고 있다.
반면, 한국의 판소리는 언제 들어봤는지도 가물하다. 우리 전통문화가 ‘소멸 위기’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한국의 젊은 세대로서 잠시 고민에 빠진 순간, 한 배우가 무대 마무리를 알리듯 불을 화르르- 내뿜는다.
양 볼에 닿는 열기의 짜릿함을 느끼며 벌떡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황금의 호사스러움도, 괴식의 충격도, 모두 하얗게 불태운 불꽃이었다.
리우화의 여행지도
청두의 밤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무대입니다. 전통과 현대, 황홀함과 기묘함이 한 곳에 어우러져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같은 아시아 국가지만 눈에 닿는 모든 문화 요소들이 여행객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워줍니다.
여러분들도 청두의 매력을 두 눈에 가득 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여행지도는 글에 미처 다루지 못한 독특한 길거리 풍경을 가져왔어요.
청두에선 다른 도시보다 중국 본연의 생활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차이얼(采耳, 귀를 파다) 역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귀지를 파내는 것이 아니라 솜털 같은 도구로 살랑살랑 간질이며 휴식을 주는 전통 서비스. 낯설지만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합니다.
청두의 상징이자 정체성, 판다(熊猫). 도시 어디를 가든 판다 인형, 가방, 머리띠 등이 넘쳐납니다. 판다를 좋아한다면 천국이겠지만, 여행 막바지엔 흰색과 검정만 봐도 판다가 떠올라 피로해졌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봐도 이렇게 한 동물 캐릭터를 도시 정체성과 산업 전반에 녹여낸 곳은 드물 거예요.
청두는 차(茶)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도시로, 전통적인 차를 넘어 이색적이고 독특한 차 시음을 즐길 수 있습니다. 선물용으로 구매하기 좋게 티백이나 말린 잎 형태로도 다양하게 판매됩니다. 그 외에도 설탕 공예, 디저트 카페, 서점 등 아이들과도 구경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곳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