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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Nov 18. 2020

수영, 삶을 배우는 운동

새벽 수영, 내가 그 곳에서 배웠던 것은

매일 아침 7시 10분.


동도 트기 전임에도 사람들이 하나 둘 서늘한 새벽공기 헤치고 수영장에 들어옵니다.

회사가기 전 잠시 들린 직장인들, 대학생 자녀를 두신 어머님들, 퇴직 후 무료한 시간 달래러 오신 아버님들.

그리고 저와 같이 건강한 생활패턴을 갖기 위해 새벽 수영강습을 등록한 앳된 청년들까지.


모두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미끈한 수영복을 입고 검푸른 수영경을 단단히 둘러씁니다. 그리고 미리 도착한 강습생들과 두런두런 짧은 대화를 나누며 강습시간을 기다립니다. 다같이 준비체조를 하고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드니, 겨울이라 따스해진 물결이 온몸을 부드럽게 스칩니다.


곧 강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영장을 채우고, 초급반인 저는 1번 라인에서 '자유형 세 바퀴 배영 네 바퀴 평영 세 바퀴'를 돕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헉헉 몰아쉴 때면, 제 다음 차례의 발을 바삐 놀리는 남성 수강생이 금세 제 발치를 따라붙습니다.


독특한 자세로 팔을 돌리는 젊은 청년의 모습에 웃음을 빵 터트리고, 코와 입을 침투하는 물바람에 꿀렁꿀렁 물배를 채우고, 항상 손응원을 보내주시는 어머님과 으샤으샤하다보면, 강습시간 50분은 눈 깜짝할 새 끝이납니다. 1번 라인 초급반 수강생들이 다같이 손을 모아 하나 둘 셋, 화이팅! '내일 아침에 봐요!' '내일은 늦지 마요!' 서로에게 건네는 '내일을 위한' 아침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정규 강습시간이 끝나면 다음 강습시간 전까지 수영장에서 맘껏 연습할 수 있는 '1시간의 자유수영타임'이 주어집니다.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는 저는, 늘 한 시간 정도 더 수영장 물에 몸을 맡깁니다. 사람이 빠져 텅 빈 라인 위에서 잠시 마음껏 헤엄치다보면, 자유수영 시간대만 오시는 어머님들이 삼삼오오 수영장에 들어오십니다. 머리가 눈꽃처럼 하얗게 세신 어머님, 함박미소가 아름다운 어머님, 엄청난 체력으로 쉴새없이 앞뒤를 오가시는 어머님, 초록빛 수영복을 입어 부레옥잠을 떠올리게 하는 어머님, 공무원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수영으로 스타트를 끊으신 어머님까지. 다들 어찌나 오래 수영을 즐기셨던 분들인지, 수영자세와 속도 그리고 호흡까지 모두 백점만점입니다


"아가, 허리가 그렇게 굽어져서 되겠어?"


어머님들과의 첫 인연은 약 한 달 전, 키판없이 배영을 도전하려다 정신없이 연거푸 물을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눈꽃 어머님이 저를 가만히 지켜보시더니, 그 한 마디를 던지시며 제 곁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아침수영을 15년간 오셨다던 어머님은, 직접 제 허리를 받쳐 앞으로 수월히 나갈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배영할 때의 손자세, 발차기 속도, 호흡방법 등을 천천히 설명해주셨던 눈꽃 어머님. 그 날 어머님은 당신의 수영시간을 전부 할애하면서까지 저의 배영연습을 도와주셨습니다.


당시 옆에서 구경하던 부레옥잠 어머님과 체력왕 어머님도 가세해, 그 날 1번 라인에서는 가히 저의 대대적인 '배영성공프로젝트'가 열렸습니다. 다시, 다시, 다시!  어머님들은 제 손 모양이 틀리거나 엉거주춤하면 '처음부터!'를 호탕히 외치셨습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거냐구요!' 연이은 물먹기에 물린 제가 투덜이면, 어머님들은 '원래 수영은 물 먹는거다' 란 명언을 쿨하게 날려주시며 제 몸을 다시 물 위에 띄웠습니다.


키판없이 물에 뜨는 게 될리가 없어, 난 못할거야, 설마 되겠어 ... 앗, 어라? 다여섯 바퀴를 돌 때 쯤, 저는 어느새 손을 키판에서 떼고 푸르른 풀장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부레옥잠 어머님의 열띤 강습으로 손헤엄도 서투르게 성공할 수 있었죠. "이제 되네!" 완벽하게 배영으로 헤엄쳐 돌아왔던 저는 출발지점에서 세 어머님이 아이처럼 웃으며 박수치시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합니다. 그 날 제가 그 분들에게 배웠던 건 '배영'만이 아니였습니다. 바로 '타인에게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이었습니다.


   



   

"저 이제 완전 잘하죠? 자유형 실력 얼마나 늘었는데요~"
"예끼, 잘하긴! 손모양 엉망이구만. 자, 내가 하는 거 봐봐!"


오늘 아침엔 괜히 어머님들께 넉살 한 번 부렸다가 함박미소 어머님께 따끔한 한 소리 듣습니다. 함박미소 어머님이 인어처럼 부드럽게 앞으로 헤엄쳐나가자, 부레옥잠 어머님이 본인이 더 잘한다며 앞차례를 언른 제치고 나아갑니다. 수영장은 금세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기분좋게 가득 채워집니다.


새벽 밤하늘이 거친 후 통유리로 흘러 온 근사한 아침햇살, 눈부신 물결을 일렁이는 수영장, 그리고 누구보다 일찍 하루하루를 부지런히 열어가는 근사한 사람들까지.


오늘도 수영장에서 저는 '수영'을 배우고, '꿈'을 키우며, '삶'을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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