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된 두 존재가 서로의 세계를 채워가는 기적 같은 여정 - 연극 렛미인
“난 상관없어, 그냥 니 냄새야!”
많은 콘텐츠에서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가 지닌 삶의 영원성과 특수한 능력, 그리고 치명적인 약점 등 다양한 요소들은 서사로 풀어내기에 언제나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처럼 매력적인 소재, 뱀파이어를 통해 결핍과 성장이란 무엇인지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 연극 <렛미인>입니다. 2009년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John Ajvide Lindqvist)의 소설로 출간된 이 작품은 이후 스웨덴, 미국에서 영화로 상영되고 미국에서는 드라마로까지 제작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존 티파니(John Tiffany) 연출로 2010년 연극으로 제작된 후, 국내에서는 2016년 초연되었고, 2025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신시 컴퍼니의 재공연으로 다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뱀파이어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연극 <렛미인>은 어느 한 마을 숲속에서 피를 채취당한 채 살해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시작됩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소년 오스칼은 숲속에서 복수를 위해 칼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던 와중, 신비로운 존재 엘리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이후 엘리와 오스칼은 저녁에 숲속에서 서로의 삶과 일상을 공유하며 가까워지던 와중, 일련의 사건을 통해 엘리의 충격적인 정체를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은 기존 뱀파이어 설정 중 오늘날에는 잘 활용되지 않는 '뱀파이어는 타인의 초대가 없이는 타인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설정을 중심으로 극의 주제와 갈등을 다룹니다. 이 설정은 본래 뱀파이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비방적인' 성격으로 기억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렛미인>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엘리가 오스칼의 영역으로 들어가 함께하기 위한 '동의'의 목적으로 사용된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이 '초대'라는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허락하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자신의 가장 취약하고 고립된 내면의 세계를 내어주는 '신뢰'의 행위이자, '경계'를 허물고 '함께'하고자 하는 가장 순수한 '동의'가 됩니다. 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집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라는 대극장이지만, <렛미인>은 고정형 무대를 활용하여 삭막한 설원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했습니다. 숲의 공간 속에서 차갑고 푸른 조명, 간결한 가구, 그리고 이동식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역동적인 군무를 활용하여 극 중 공간의 전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연출은 오스칼이 처한 고립된 환경과 내면의 외로움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관객들은 차갑고 정체된 그의 삶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무대 위의 눈과 얼음, 그리고 배우들의 섬세한 몸짓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둡고 차가운 공간 속에서 두 존재가 마주하며, 고립과 단절이라는 결핍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무대 예술의 힘을 빌려 더욱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렛미인>은 고립되고 정체된 삶을 사는 소년 오스칼과 영겁의 세월을 살면서 인간의 감정과 단절된 삶을 산 뱀파이어 엘리가 만나 서로의 결핍을 충족시키면서 사랑과 성장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는 보통의 뱀파이어 소재 작품과는 사뭇 다른 지점입니다. 뱀파이어의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면모보다는, 두 존재가 가진 고유한 외로움과 부족함을 채워가는 관계 자체에 집중합니다. 소재의 설정을 제외하고 본다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소년 소녀가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고 이를 충족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청춘 로맨스와 같은 감상을 받습니다.
엘리의 헌신적인 동반자였던 하칸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결핍'은 드러납니다. 피를 공급하며 엘리를 보호하는 하칸의 '등가교환적 관계'는 피와 보호를 대가로 사랑과 헌신이 거래되는 냉혹함이 존재합니다. 이는 순수하게 서로의 내면을 받아들이는 오스칼과의 관계와 대비되며,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오스칼의 부모님, 그리고 학교 동급생과의 관계를 통해 그가 현재 삶에서 얼마나 고립되고 정체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두 주인공의 성장과 연대, 그리고 삶의 공유라는 메인 서사에 깊이를 더합니다.
연극 <렛미인>은 원작 소설의 매력을 무대 예술로 성공적으로 구성해 담아낸 작품입니다. 고립된 소년과 영원히 어린 뱀파이어라는 독특한 설정 속에서, 외로움과 결핍, 사랑과 성장이란 무엇인지 진중하게 질문합니다.
이 작품은 두 인물의 앞으로의 여정과 성장을 기대하게 하는 '열린 결말'을 제시합니다. 이 열린 결말은 단순한 미지수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스칼은 엘리를 통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용기를 얻고, 엘리 또한 오스칼과의 관계 속에서 잊었던 인간적인 감정을 다시 느끼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확인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한 번으로 끝나는 완성형이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고 채워가며 계속해서 진화하는 '여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된 결핍과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은 분이라면, 연극 <렛미인>을 꼭 한번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연극 <렛미인>을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초대'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통한 성장'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