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파고 속, 자기기만에 갇힌 한 남자의 비극이 던지는 존재론적 성찰
“니들도 뭐 다를 것 같아!”
저는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하며 가장 피부에 가깝게 느꼈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정서가 익숙한 곳으로 불리는 중국입니다. 복합적인 역사와 다면적인 문화를 지닌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산 기억은 현재에도 저에게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사상가인 루쉰의 날카로운 시선을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루쉰의 대표 소설 중 하나인 <아Q정전>을 연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신해혁명이라는 격동적인 역사의 현장 속에 한 익명의 장물아비, 아니 '아Q'라는 이름조차 온전히 가질 수 없었던 우둔한 사내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창작창작소 숨에서 2023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번에 쿼드에서 재연 무대를 올리며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연극 <아Q정전>의 주인공은 출신 불명의 이름 없는 날품팔이 '아Q'입니다. '아(阿)'는 성을 모를 때 친근하게 부르는 접두사이며, 'Q'는 그의 머리에 난 땋은 상투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의 미천한 신분과 무지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아Q는 마을 주민들과 주인 영감 집에서 항상 부당한 대우와 차별, 멸시를 받습니다. 그러던 와중 중국 근대의 격변기, 혁명이 들어오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은 한 세기가 지나도 위대한 문학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아Q'라는 한 인물의 실패담 속에 중국 근대 계몽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조건을 복합적으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아Q는 항상 마을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조롱당하지만, 자신만의 '정신적 승리법'을 주장하며 근거 없는 자기 우월감으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예를 들어, 얻어맞고 나서는 '나는 자식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며 내심 만족하고,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을 '내 열등감 때문에 질투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오히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죠.
이는 당시 혁명 속에서 중국 민중의 자기기만적 정신 상태를 통렬하게 비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아Q는 시대의 분위기에 맞춰 선동하고 혁명에 편승하여 우위에 서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처형당하며 중국 근대인의 무지, 무력, 그리고 왜곡된 자기의식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극 <아Q정전>은 이러한 루쉰의 비판적 시선을 현대 연극의 언어로 탁월하게 옮겨 놓았습니다. 철제 큐빅과 소도구 등을 활용한 비언어적인 움직임, 그리고 조명 디자인을 통해 빈 공간에 여러 공간과 시점을 조명하며 현대적인 무대를 구성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인공 아Q를 배우가 '하이브리드 퍼펫'을 활용한 '인형극' 성격의 '피지컬 씨어터'로 풀어낸 점입니다.
이는 아Q의 심리적 갈등과 행동을 입체적으로 나타내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아Q가 스스로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듯, 때로는 인형이 아Q를 조종하고 때로는 아Q가 인형처럼 무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은 그의 왜곡된 자아와 자기기만의 실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메타포였습니다. 퍼펫과의 연기를 통해 아Q의 무지, 비굴함, 그리고 때로는 비상식적인 우월감이 강렬한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며, 백 마디 말보다 더 통렬한 풍자를 선사했습니다.
연극 <아Q정전>은 당시 봉건 문화의 잔재, 근대 문명의 혼란함, 무력한 민중의 자기기만을 통해 형성된 중국 사회가 공유한 자기기만의 문화를 통렬히 풍자합니다. 아Q의 죽음은 혁명이 민중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루쉰의 냉혹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혁명은 '명분의 축제'로 끝났고, 민중을 계몽하지 못한 혁명 엘리트 계층,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민중은 '자기기만의 화신'인 아Q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루쉰은 이 작품을 통해 '혁명은 일어났으나, 민중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날렸습니다. 아Q는 혁명이 일어나 부자집에 침입했으나 정작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고, 오히려 그가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당합니다. 패배를 승리로 뒤집는 기묘한 정신 논리를 가진 아Q의 모습을 풍자적 거리두기로, 연극 <아Q정전>은 현대 연극의 언어로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연극 <아Q정전>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다양한 소요 속에서 루쉰이 100년이 지나도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민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아Q처럼 성장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정신 승리'만을 위해 시대를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듭니다. 사회의 불평등이나 부조리 속에서 우리는 개인적인 위안에 그치거나, 쉽게 선동되고, 혹은 자신과 무관한 일로 치부하며 진정으로 참여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정치적 무관심이나 소셜 미디어 속에서 자신만의 가상 자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만약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위선 가득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면, 한번쯤 연극 <아Q정전>을 통해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사고하길 추천합니다. 100년 전의 비극이 오늘 우리의 거울이 되어,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위한 용기를 선사할 것입니다.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연극 <아Q정전>을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아Q의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정신적 승리'를 외쳤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