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고 보는 정의와 신념은 새 선악과를 낳는다.

교제 폭력 사건을 둘러싼 모호한 진실, '정의'가 만들어내는 잔혹한 파괴

by 은밀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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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기반이 무너져 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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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펼쳐지는 수많은 갈등과 소요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때로는 분쟁의 범위와 범주가 매우 광범위하게 느껴져, 개인이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도 많습니다. 분쟁 속에서 각자의 정의를 관철시키고자 진영을 나누어 완전한 정의와 가치를 주장하며 충돌하는 현장을 보면서 저는 깊은 이질감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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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로 이 '정의'라는 양분을 먹고 자라난 열매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혼란과 파괴를 낳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연극 <열매의 시차>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총학생회장의 교제 폭력 사건, 끝나지 않은 진실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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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열매의 시차>는 극단 문지방에서 창작한 작품입니다. 지난해 연극 <시추>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극단이기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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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시차>는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선 오민혁에 대한 '교제 폭력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열린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 자리에서 총학생회장 후보 오민혁과 피해자 대리인 장혜주가 서로의 주장을 팽팽하게 펼치면서, 사건의 뿌리가 된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이는 단편적인 폭로를 넘어, 사건의 복잡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진실 공방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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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움직임과 해체주의적 무대를 활용하여 극을 구성합니다. 배우의 움직임, 무대 위 위치, 조명 디자인은 인물의 감정과 동선을 정교하게 구성하며, 파편화된 진실과 인물들의 내면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구현합니다. 분리된 공간을 오가는 배우들의 불안한 동선이나,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되는 날카로운 조명은 사건의 모호함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 극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정의의 잔혹성: 흑백논리가 감추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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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시차>를 보며 제가 느낀 것은 '정의의 상대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온전히 설명이 안 되는, 오히려 '정의의 잔혹성'이었습니다. 극 중 사건은 매우 모호하며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애매함이 가득합니다. 그 안에 담긴 진의는 당사자들조차 명료하게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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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사건에서 오민혁은 분명 전 애인인 이수에게 애인으로서 성적인 폭력을 행합니다. 하지만 이수 역시 민혁에게 지울 수 없는 물리적 폭력과 상흔을 남겼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두 인물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양가적인 감정과 입장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 행동의 당위성이 사랑인지 분노인지 하나의 감정으로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 사회의 수많은 논쟁들처럼, 사건의 본질이 이분법적인 '선악'으로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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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흑백논리나 확증편향, 그리고 일반화의 오류 등으로 발생되는 경계선의 문제점을 극중에서 매우 잘 보여줍니다. 객석에서 이러한 불편함은 제가 극단 문지방의 이전 작품 <시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일치했습니다. 완벽한 정의, 도덕, 윤리, 규범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은 어쩌면 그 기준들이 언제든지 부정되고 잘못되었다고 변할 수 있는 가치임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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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참정권이 한 세기 전에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고 사회적 상식으로도 수용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정의롭지 못하거나 무지한 인간들로 단순히 정의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질문일까요? 이 역시 아닐 것입니다. <열매의 시차>는 이처럼 어떠한 정의나 가치의 의미는 분명하나, 이를 적용하는 사이에 발생되는 '애매모호'함이 존재한다는 점을 선악과를 먹은 후 변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들면서 적확히 자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선악과, 그리고 사유의 영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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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시차>는 많은 화제를 대두시킨 '페미니즘' 담론을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야기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세밀하게 다루면서 극을 전개합니다. 특정 이념이 가진 긍정적인 가치와 함께, 그것이 가진 맹점이나 오용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하는 연극의 방식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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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리하면서 연극 <열매의 시차>는 새로운 가치와 정의가 절대적으로 모든 것에 정답을 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맹신하는 사람들과 단순히 수용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낄 '불편함' 또는 '불쾌감'은 관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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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절대적인 옳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신념이 오히려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모든 일에 '올바름'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애매모호한' 영역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극단 문지방 연극 <열매의 시차>가 던지는 메시지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질문이라고 느꼈습니다.


혼돈의 시대, 진정한 정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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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열매의 시차>는 무너진 신뢰와 갈등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 속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선악과'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맹신하는 신념이 어떻게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예리하게 보여줍니다. 모호한 사건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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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지적인 불편함과 깊은 성찰을 선사합니다. 해체주의적 무대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복잡한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정의'의 열매가 과연 낙원을 회복할지, 아니면 또 다른 파괴를 가져올지에 대해 묻습니다. <열매의 시차>는 모든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지만, '사유하는 관객'으로서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일깨우는 강력한 작품이었습니다.


[마무리]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연극 <열매의 시차>를 보면서 여러분에게 가장 깊이 와닿은 '정의의 잔혹성'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이 작품이 여러분의 '가치 판단'에 어떤 질문을 던졌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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