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짜 밝다

발광(發光)

by still

’너 진짜 밝다.‘


당신들이 무얼 안다고 나 자신의 명도를 재단했을까,


지금까지 만났던 애인들은 한 명을 제외하곤 전부 연상이었다. 이 말인즉슨, 그들은 아마 나보다 모든 경험에서 앞섰을 것이다. 그것이 quantity이든, 혹은 quality이든. 때로는 그게 그냥 꼴보기가 싫더라. 능구렁이를 오백마리는 잡아삼킨 것 같은 화법과 처세는 날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개별에 귀속된 차이들엔 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내게 있어, 교집합만이 즐비한 거대한 덩어리들이다. 지겨운 무의미다. 다시 말해 우스울 정도로 기대가 없다. 결론적으로, 많은 이들과 이별이란 것을 하고 내게 남았던 건, 내가 그들과의 관계에서 가면을 써왔다는 성찰과 실토. 그냥 그 뿐이다.


나는 밝은 사람이 맞다.

정확히는 밝게 보이는 사람이 맞다.

밝다-로 치환되는 성정이 조명이라면 on-off가 존재하는데, 보통 on의 상태로 사회를 마주한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다시 말해 off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시기에 만난 애인은 이마저 발광(發光)으로 치부했으니, 이는 그의 높은 애정에서 기인한 것인지, 매우 낮은 기대도에서 기인했는지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나는 밝은 사람이 맞다.

상대에게 짐을 주지 않으려 한다.

나보다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연상의 애인을 만났을 땐, 거짓말까지 해가며 대신 밥을 산 적이 있다.

이게 애정이라고, 어디 가서 기 죽고 오는 애인을 볼 때면 이게 은애냐 연애냐 싶었다. 시야를 한참은 내려야 눈에 걸리는 작은 여자가, 제 품을 내준다고 할 때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 이제는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나는 밝은 사람이 맞다.

피로의 싹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순간들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더욱 밝게 대꾸하곤 한다. 가공된 무지는 그들과 나를 가장 편안한 상태로 이끈다.

‘나중’이라는 책임감 없는 미래에 태워버린 묵시와 철저히 계산된 대화술은 잔인하디 잔인한 무탈을 만들었다. 나라는 인간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너만 모른다.

아니지, 알 것이다. 당신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지점토처럼 가지고 논다. 예상치 못한 곳에 우울을 치덕치덕 갖다붙이곤, 마치 그게 제 한계점인 양 언행한다. 알고도 말 못하는 나와, 알건데 말 안하는 당신은 참 끼리끼리다.


아, 나는 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잔소리를 회피하는 어린 아이처럼, 이제 다시 무의 상태로 돌아가려한다.

지겹도록 골몰하는 나를 위한다면, 체감에 실패한 애정들을 탑 쌓듯 쌓아대지 않아야 한다. 그저 쓰러져가는 건물의 설계도를 빼앗아 꽁꽁 감춰 버릴테니.

양이 아닌 음의 방식으로 off를 끄면 된다.


그렇다면, 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