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채우는 약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태열을 시작으로,
아토피 피부염을 달고 살아가는 아토피안이다.
나는 후천적으로 큰 스트레스와 자극 상황에 오래
노출되어 중증 우울증을 얻었다.
우울증 치료에 열심이지만, 이제는 극복보다는
우울증과 더불어 잘 살아가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만성질환 2관왕의 삶이다.
물론 이 2개의 만성질환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
그런데, 일상에 큰 지장이 있다.
야금야금 떨어지는 삶의 질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증상을 버티고 관리하는데
써야 한다.
어쩌다 보니 아프느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즘같이 아토피도 심하고 우울증도 심한 기간엔
사회생활을 안 해도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자는 동안 긁어 생긴 상처가
있다. 건조한 겨울에는 특히 온몸이 더 가렵다.
일어나자마자 옷에 피가 묻었는지부터 살핀다.
씻고, 연고를 바르고, 보습제를 바른다.
아주 심하지 않으면 평소에는 먹는 약은 복약하지
않는다. 난 이미 먹을 약이 많으니까.
우울증은 분명 잠에서 깼는데도 침대에 자석처럼
붙어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몇 시간을 누워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이유는 결국 약이다.
복약 스케줄이 빼곡하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다.
요즘은 우울증 관련 약, 아토피 관련 약, 발목 부상
관련 약을 먹느라 24시간이 모자라다.
합치면 하루에 총 16알.
심지어 피부과 약과 정형외과 약은 원래 하루에 2번
먹어야 하는데, 내 마음대로 1번씩만 먹고 있다.
이러다 내 간이 무너질까 봐.
이러다 하루종일 잠만 잘 까봐.
정신건강의학과 약에는 신경안정제, 항불안제가
피부과 약에서는 항히스타민제가
정형외과 약에서는 근육이완제가
복약 후 몸을 오징어처럼 만든다.
흐물흐물 거리다 결국은 눕게 된다. 그리고 잠든다.
잠들어있거나, 멍한 시간을 제외하면
제정신인 시간이 거의 없는 느낌이 든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억지로 운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약을 먹기 위해서다.
몸이 복약량을 견뎌내는 걸 너무 힘들어하니까.
약에 흐물거리지만 잠시라도 힘 있게 살고 싶어서.
하루종일 약에 취해 있다.
피부를 찌르면 피 대신 약이 나올 것 같다.
내 꿈은 하루라도 약 없이 안 아픈 경험을 하는 거다.
약 덕분에 이만큼 살아있지만
약 때문에 살아감이 벅찰 때도 있다.
오늘도 복약 스케줄이 빼곡하고, 방금 오전 약을
먹었더니 벌써 졸리다는 신호가 온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약을 ‘덜’ 먹는 날이 오겠지.
약이 아닌 내 몸의 힘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