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힘들 일인가
3월 들어 과수면에 시달리고 있다.
많이 자는 게 못 자는 것보다 낫다고 늘 생각했지만
겪어보니 절대 아니었다.
과수면도 수면장애의 한 종류이고,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라는 게 실감 났다. 잘 수록 기가 빨렸다.
수면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호하다.
계속 누워있고, 잠시 깨어 멍하니 누워있다가
다시 얕은 잠에 드는 것의 반복이다.
잠시 깨어 있을 때도 ‘잠에 취해’ 있어서 뭔가
하루를 몽땅 잠에게 빼앗겨버린 기분이 드는데
이 기분이 정말 별로다.
기분이 별로지만, 어쨌든 많이 쉬고 회복하면 좋은
거지! 하고 애써 과수면을 받아들이며 지내는데,
요 며칠은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다.
계속 무언가에게 쫓기는 꿈,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꿈,
등장인물만 바뀐 채 과거에 겪은 일이 일어나는 꿈,
그중에서도 제일 생생했었던 일은
유치원에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꿈이었다.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꿈을 꾼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다 기억하고 있고, 잠에서 깨고 나서
한참 지나 이게 꿈이라는 걸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꿈 해몽을 믿지는 않지만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꿈이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미처 지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내 무의식은 쫓기고, 위협받고, 두려운가 보다.
어쩌면 내 두려움을 내가 ‘긍정적 마음가짐’이라는
포장으로 회피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아직도 내 공무상 요양(증상이 계속되고 의료자료가
나온다는 가정 하에)의 최대 기한은 한참 남았다.
물론 이 공무상 요양 행정 처리에 매달 마음 졸이고
눈치 보고 진이 빠져서 쉬는 느낌은 전혀 아니지만!
요양 초반엔 내 뒤에 공무상 요양을 승인받게 될
누군가가 “선생님~ 몇 년씩 휴직한 사람 없어.”라는
말을 듣게 하기 싫고, 학교와 교육청에 대한 분노가
미치지 직전이고, 당당히 받아야 할 국가배상이니
깨끗하게 회복될 때까지 배상받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미 내 근로능력이 회복되긴 어렵고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에 모든 신체능력을 쓰는
삶에 지치고 질려버렸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아프고 삶이 무거운데
누구에게 내가 아프다는 것을 매달 증명하는 과정이
나를 더 괴롭고 작아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재해보상을 받는 ‘공무상 요양자’가 아니라
‘교직 포기 유예자’라는 말이 더 알맞게 느껴진다.
그저 교직의 자연재해라고 생각하는 그 사건을
겪었던 당시에도,
보상금 조금 지급하고 실질적인 복귀 지원은
안중에도 없이 아픈 증거만 내놓으라는 지금도,
버림받은 기분이다.
적당히 쓰고 고장 났는데, 수리는 없이 보관만 하는
사실상 교직 구제 의사가 없는
교직 포기 유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