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
교복을 입고, 고향을 찾으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고 교복을 손수 손 세탁해 다리미에 숯을 넣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설움을 동생인 나에게 자상하게 베풀어준 이 세상에 유일하게 한 분이셨던 내 누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숯다리미로 교복 상, 하의를 다려주었던 누나가 그립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위로는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우리 집이 가난해 부모님이 가정형편상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열세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과 함께 시골집에 거주하면서 논과 밭에 나가 작열하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뙤약볕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곁에서 들녘에 나가 풀을 뽑고 비료를 뿌렸다.
농약을 치면서 동료들은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는데 내 누나는 이글거리는 태양밑에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내가 열네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리 떨어진 읍내 중학교에 진학해서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시골집에서 경운기로 가져온 마른 소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자취를 하면서 매주 토요일날이면 오전수업을 마친 후 시골집에 오면 가장 먼저 어머님과 누나가 마당에서 신발을 벗고 뛰쳐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태어난 내 고향은 마을이라야 여섯 가구가 다 친척 일가로 농촌이라기보다는 산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구경도 하기 어려운 온 천지가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산촌이었다.
우리 집은 소박하고 가난했던 가정이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열여섯 살 누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남동생의 교복을 세탁해 주면서 소에게 먹일 소죽을 쓰기 위해 땔감나무와 갈쿠나뭇잎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남은 숯을 뜨겁게 달아 올려 검은색 교복과 푸른색 하복을 번질 하게 다려주면서 항상 나에게 해 주었던 말씀이
『너는 우리 집의 장손이고 장남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된다』 고 수없이 나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명뿐인 누나는 국민학교 6학년만 마치고 고향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논ㆍ밭일만 하다가 인근 장평면 사무소 소재 용강리에 가서 그 어린 나이에 바느질을 배워 시골집에서 농사일만 하시다가 20대 초반에 울산에서 현대조선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매형을 중매로 만나 신혼시절에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누나는 초등학교 졸업이 모든 학력이고, 매형은 시골에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조선을 다니면서 내 누나와 결혼한 후 초등학교만 졸업했다는 사실을 매형이 알고는 많이 무시하고 괄시했기에 20대 초반의 신혼이었던 누나는 설움도 많이 받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훗날 누나에게 들었다.
그 당시 누구나 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나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지라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 후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역병으로 3년간 군생활을 하고 제대(전역)하여 울산에서 신혼살림을 했던 누나에게
빈대 붙어 아침이면 누나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점심과 저녁 도시락 2개를 싸서 누나 전셋집과 가까운
사설독서실에 가서 밤새도록 공부하고, 밤이면 독서실에서 숙식하면서 하루 종일 누나가 손수 싸준 도시락
두 개를 먹어가면서 독서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누나의 은덕인지, 두 달 만에 김포국제공항공단과 경찰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물론, 두 곳에 필기시험에는 합격하였으나 면접시험에 낙방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별별 고생을 하면서 국가직과 지방 행정직공무원에 합격하여 공직생활 33년을 마치고 행정사무관으로 퇴직을 했지만 사랑하는 나의 누나는 그토록 고생해서 논도 많이 사서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열심히 공부해 우등생이었던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백혈병에 걸려 서울 아산병원에서 1년 동안 치료하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결국에, 누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딸 간병을 했던 후유증인지 사랑스러운 딸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
몇 년 계시다가 불치병인 암이 찾아와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그곳인 딸 곁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내 누나는 한 많은 세월을 사시다가 5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떠난 지가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으나, 남자들은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웃는다 는 진담 아닌
농담이 있는데, 매형은 누나 떠난 지 1년이 되자마자 사돈 어르신과 가족들의 권유로 홀로 된 여자와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다.
보고 싶고 불쌍했던 내 누님은 그토록 한 많은 세월을 살다 저 멀리 떠나버린 탓인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터진다.
누나가 낳은 아들은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엄마가 없으니, 혼자서 방황해 전화를 해도 연락도 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아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누나는 그토록 고생만 하다가 딸과 함께 하늘나라러 떠났지만 아들이고 나에게는 조카인 남광이 가 성격이
변해서 외 삼촌인 나와 친, 인척들도 모두 외면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깝다.
혹시나 해 조카인 남광인에게 전화를 수없이 해보지만 연락도 없어 답답하지만 누나의 홀로 된 혈육이니
계속해서 찾아보고 돌봐 줘야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이 흘러가고 세월이 흘러 70 평생을 살아 우면서 두 눈을 감고 잠이 들기 전에도
누나가 그립고, 누님 소리만 들어도 정겹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