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생활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이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반면 어떤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움직이기를 좋아하며 생활의 리듬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나는 점점 더 하게 된다.
내가 아는 은퇴자들 가운데는 바둑만 두며 사는 분도 있다.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바둑은 돈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바둑판 앞에 앉아 있다.
그분에게 바둑은 취미이자 생활 그 자체다.
그 삶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는다.
나는 이것저것 하며 지내는 편이다.
당구를 치고, 스크린 골프를 치고, 오목도 두고 탁구도 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가끔은 영화도 본다. 박람회나 전시회가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 보기도 한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야 하루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필요하면 일을 하러 나가기도 한다.
은퇴를 했다고 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돈이 없어 징그럽게 일을 했다.
신문 배달을 하며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예순일곱 살까지 일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오래도 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며 하루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생활은 혼자만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은퇴 후 아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서 8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간의 생활 리듬이다.
아내는 아침 여섯 시면 일어나 불을 켠다.
나는 보통 11시에 잠자리에 드는데, 아내가 와서 불을 켜 그 불빛에 잠을 설칠 때가 많다. 아내는 대중교통 이용도 힘들어해서 지하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은퇴 이후 내 일상이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은퇴를 했으면 서울을 조금 벗어나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꼭 내 집이 아니어도 괜찮다. 한 달 쯤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지내보고 싶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한다
결국 우리는 서울에서 하루하루를 이어 가고 있다.
어제는 극장에 갔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 예순다섯 살 이상은 할인 혜택이 있어 부담도 적었다. 이렇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노년에도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은 많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이 그런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지인 가운데는 큰 자산 200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늘 걱정이 많다.
탄원서와 민원서를 작성해 달라고 자주 연락이 오고
이런저런 문제를 상담해 오면 내가 아는 지식 범위 이내에서 성실하게 알려주고 무료로 도움을 주니
나이는 동년배이지만 친구처럼 나를 신뢰한다
그는 각종 문제와 분쟁 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그에게 제발 재산을 늘리기보다 신경 쓰지 말고 줄이며 살라고 이야기해 주지만 몸에 배어버린 탓인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경노우대 영화관람권)
그를 바라보면 돈이 많아도 항상 근심 걱정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아 내 인생 신조와는 서로
상반되지만 그냥 돈을 받지 않고 도와주고 있다
우리 집에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여기저기에서 책이 우편으로 많이 배달된다
하지만 집이 좁다 보니 아내는 책을 버리자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허전해진다.
나는 언젠가 고향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책을 모아 두고 싶다.
나무를 심고, 커피를 끓이고, 음악을 틀어 놓고 글을 쓰는 생활. 자녀나 친척들이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삶. 그것이 내가 그리는 은퇴 이후의 생활이다.
사람이 여든을 넘기기 쉽지 않다고 한다.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더 조급해질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앞으로도 차를 마시러 다니고, 여행을 하고, 영화를 보며 지내고 싶다.
지루하지 않게, 무리하지 않게, 내 생활의 리듬을 지키며 살고 싶다.
은퇴 이후의 삶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나는 나에게 맞는 생활 방식을 선택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