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하면 호텔이다
화면 속에서 마주한 낯선 미국인의 시선은 무례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까지 했다는 미국의 한 유튜버가 고시원의 좁은 복도를 비추며 그것이 마치 한국의 전부인 양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수백만 명의 구독자가 그 자극적인 영상에 호응하는 것을 보며,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과연 그 비좁은 방 한 칸에 담긴 우리네 삶의 궤적을 단 한 뼘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눈에는 고시원이 그저 비참하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보였겠지만, 우리 세대에게 그곳은 오히려 ‘호텔’에 가깝다.
불과 40~50년 전, 우리는 잠잘 곳이 없어 차디찬 공장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야 했다.
난로 하나 없는 방에서 카시미르 이불 한 장에 의지해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추위를 이겨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한 달 월급 4만 원을 받으면 우리는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한 푼 두 푼 아껴 은행에 저축하고, 시골에서 흙먼지 마시며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보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반지하 단칸방을 얻고, 다시 다락방으로, 그리고 변두리의 작은 빌라로 한 단계씩 삶을 넓혀왔다. 13평에서 18평으로, 다시 25평에서 33평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의 그 벅찬 보람을 그 유튜버가 알 리 만무하다.
우리에게 집이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성실함이 빚어낸 노력의
결과이다
그것은 삶의 질을 높여가는 희망의 사다리였다.
고시원은 그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갈 곳 없는 청춘들이 매달 30~40만 원을 내고 깨끗한 물과 따뜻한 밥, 그리고 혼자만의 안식처를 얻어 내일을 꿈꾸는 곳이다. 과거 우리가 겪었던 그 혹독한 냉방(冷房)에 비하면, 고시원은 얼마나 고마운 발판인가.
우리 국민은 부지런했다.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중동의 뜨거운 사막으로, 베트남의 포화 속으로 뛰어들며 번 돈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방인은 우리의 눈부신 발전상과 찬란한 서울의 모습은 외면한 채, 왜 하필 가장 낮은 곳의 단면만을 도려내어 왜곡하는가.
그의 시선이 얄밉고 원망스러운 것은 단순히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불쌍한 구경거리’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한국을 안다면, 그 좁은 방에서 시작해 거대한 아파트를 일궈낸 우리네 근면성과 저축의 미덕을 먼저 보았어야 했다.
나는 그 유튜버가 이제라도 카메라의 각도를 돌려 보기를 바란다. 좁은 고시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과, 그 불빛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바친 인내의 세월을 말이다.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고통을 보람으로 바꿔온 우리 국민의 저력이야말로 진짜 방송에 담아야 할 한국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