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전의 기억을 찿아 나서다

추억

by 자봉

​1. 삶이라는 빈 잔

오전에 약속된 스케일링을 위해 병원으로 갔다

치과 의자에 누워 기계적인 소음을 견뎌내면서

잇몸 치료와 스켈링을 했더니 시원하다

이렇게 입안의 묵은 때를 벗겨내듯 우리네 삶도 그렇게 개운하게 씻어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ᆢ


진료실을 나서는 길에 확인한 휴대전화 속 '부고장' 한 통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발송인은 옛 직장 선배였다.

우리보다 불과 여섯 해 먼저 퇴직했던 분이,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문득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어본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안부를 주고받으며 은퇴 후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동료들도 이미 여러명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70대,

누군가는 인생의 황혼이라 부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별이 일상이 되는 시기다.

은퇴 후에 또다시 일터로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찜질방과 여행지를 유람하며 남은 시간을 즐겨야 하는지,

인생이라는 시험지에는 여전히 정답이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오늘처럼 누군가의 빈자리를 마주할 때면, '

지금 이 순간'의 무게가 더욱 절실히 다가올 뿐이다.

​2. 오후의 여정: 한강 버스에 몸을 싣고

점심을 먹고 나니 5년 먼저 퇴직한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새로 생긴 '한강 버스'를 타보자는 제안이었다.

슬픔에 잠겨 있기보다 강물이라도 보며 마음을 씻어내고 싶어 여의나루 선착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평일 오후라 그런지 선착장은 한산했다.

​교통카드를 찍으니 3,000원이 빠져나간다. 배 안으로 들어가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펼쳐진 한강은 유람선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속도감으로 다가왔다. 반포를 지나고 옥수를 거쳐 뚝섬을 지나는 동안, 배는 물결을 가르며 나아갔다. 그 물길은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흐름과도 닮아 있었다. 거칠게 출렁이다가도 어느새 잔잔해지는 강물을 보며, 인생의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이 물결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3. 47년 전의 소환: 신천역과 종합운동장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잠실나루역. 배에서 내려 큰 도로로 나오니 셔틀버스가 우리를 반겼다. 47년 전, 20대 초반의 혈기 왕성했던 내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첫 발령을 받았던 곳이 바로 여기, 당시엔 '신천역'이라 불리던 곳 근처였다. 새마을시장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던 낮은 건물들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잠실 종합운동장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밤낮없이 뛰던 그 시절. 경기장을 둘러보는 동안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함께 땀 흘리며 고생했던 동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아니면 오늘 오전의 선배처럼 먼저 떠났을까.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 앞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뜨거웠던 청춘이 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4. 저녁의 감사

9호선 급행 열차에 몸을 실으니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오전의 치과 방문부터 부고의 슬픔, 한강 버스의 낭만과 47년 전 추억 여행까지.

오늘 하루 참으로 많은 인생의 결을 만졌다.

​은퇴 후에도 다시 일자리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을 본다. 그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동료들과 웃고, 파크 골프장의 잔디를 밟으며, 영화관과 도서관을 누비는 이 일상이 소중하다. 주머니 속의 쌈짓돈을 조금 낭비하더라도, 내 마음이 즐겁고 내 영혼이 풍요롭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다짐해 본다. 내일도 오늘처럼 자주 움직이고, 자주 웃으며, 나에게 주어진 이 '인생 후반기'라는 선물 같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노라고. 정답 없는 인생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답은, 바로 오늘처럼 즐겁게 사는 것뿐이다.


작가의 이전글소중한 추억들과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