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

덕후 아닌 덕후 같은 덕후 아닌 나(?)

by 성주영

*들어가기 전: 복귀 후 첫 글이라 그냥 가벼운 주제를 선택했으니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세계사 좋아하는 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번 2026학년도 세계사를 30분 안에 풀어봤다. 난이도는 2026학년도 6월보다는 조금 쉬웠는데 그렇다고 매우 쉬운 건 아니었다. 중~상 정도의 난이도였다. 50점 만점에 48점(2점짜리 하나 틀림.)이었는데… 등급컷을 보니… 이런 변태같은 놈들을 봤나… 이걸 다 맞춰서 50점 만점을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이 1등급, 난 2등급이다.(ㅅㅂㅅㅂㅅㅂ….)


사설이나 EBS에 따르면 이 문제가 오답률 1위로 가장 어려웠다는데… 나한테는 가장 쉬웠다….(참고로 정답은 4번)


나한테는 이 문제가 어려웠다. 이 문제는 앞서 제시한 14번 문제 다음으로 즉 두번째로 어려웠던 문제였다. 이 문제 하나 풀려고 부와이 왕조,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 당나라, 셀주크 튀르크 등 온갖 나라들은 다 떠올렸는데 결국 (가)=사산 왕조 페르시아, (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었다.(참고로 정답은 4번이었다)


그래서… 2점짜리인 6번을 틀려 48점으로 2등급을 받았다. 슬프다…ㅠㅠㅠ…


이 모멸감을 만회하기 위해 내가 직접 모의고사와 수능 형식을 빌려 문제를 별도로 만들어봤다. 모멸감이고 나발이고 사실 그냥 재미삼아 만들어 봤다. 독자 분들께서도 시간 날 때 한 번 재미삼아 풀어보시길… 풀기 싫다면 그냥 참고 삼아 한 번 읽어나 보시길… 지식 확장에도 도움이 많이 될 테니… (참고로 해설은 내일 올릴 예정이다.) 그럼 다들 화이팅!^^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가)는 우마이야 왕조 이후 건국되어 연금술, 문예 등을 꽃피운 (나)의 수도 (다)를 격파•점령했다. (다)는 원형의 도시라는 의미가 있는데다 당시 세계 무역의 중심지이자 세계 시장이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가)는 동쪽 국경에서 발흥한 신흥 튀르크 계열 제국인 (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리고 (라)는 (나)의 수도였던 (다)를 (가) 이후로 다시 함락시킨 후 (나)로부터 술탄 칭호를 하사받는다. 이후 (라)는 동방 정교회의 상징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도로 삼은 제국인 (마)와 대립하며 아나톨리아 반도 대부분을 석권했다. 한편, (나)는 결국 훌라구에 의해 멸망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번. (가)~(마)에 대해 가장 적절한 것은?


1. (마)는 1차 십자군 원정 때 십자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2. (라)는 페르시아계 유목민이 세운 제국이다.

3. (나)는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했다.

4. (다)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도시였다.

5. (가)는 (나)와는 서쪽으로, (라)와는 동쪽으로 국경을 맞닿았다.



(가)와 (나)는 19세기 말 남만주의 이권을 두고 충돌했다. 이곳에서의 철도 부설권을 누가 가지고 가느냐에 따라 이 지역의 패권국이 결정될 터였다. (다)는 19세기 중반 태평양 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무력시위를 통해 (나)를 개항시켰다. 이 직후 (나)는 근대화에 착수, 성공하면서 본토 주변의 태평양 제도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가며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한 동아시아의 조공질서를 주도했으나 1884년부터 1885년까지 (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마)와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싸워 승리했다. 하지만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나)와 북태평양 제도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 지은 (가)가 알제리를 점령하고 있던 (라),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을 지배했던 (바)와 협력해서 (나)를 압박해 (나)로부터 요동 반도를 빼앗았다. 결국 (나)는 (마)와 전쟁을 한지 10년만에 다시 한반도의 이권을 두고 (가)와 전쟁을 벌인다. 이때 1867년 (가)로부터 구매한 알래스카 때문에 북태평양에서의 (가)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의 종단 계획을 수립하고 3C 정책을 추진한 (사)가 (나)를 지원했다.


2번. (가)~(사)에 관해 가장 적절한 것은?


1. (바)는 인도차이나 연방을 수립했다.

2. (가)는 (나)와의 전쟁 중에 국내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다.

3. (바)는 홍콩을, (사)는 칭다오를 지배했다.

4. (마)는 조선만 조공국으로 삼았고, (라)는 리비아를 지배했다.

5. (다)는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보유한 적이 없다.



(가)가 에티오피아를 병합하기 5년 전, (나)는 한반도 이북에 위치해 있으며 (다)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장쉐량과 같은 군벌들이 난무하는 중국 본토 침공의 전초기지 격인 (라)를 점령한다. (라)에는 석유, 석탄, 철광석 등 전쟁 수행 물자가 풍부한 곳이기에 (나)에게 있어 필수적이었다. 이후 1년 뒤 (나)는 외국 공사관이 밀집해 있는 (다)의 핵심적인 항구 도시이자 1842년 난징 조약으로 개항된 5곳의 항구들 중 하나인 이곳에서 고의적으로 첫번째 사변을 일으켜 (라)에 괴뢰국을 수립하고 수장으로서 푸이를 앉힌다. 1년 뒤 (라)에 세워진 괴뢰국을 기준으로 남서쪽에 위치한 (다)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열하(러허)성을 합병하는 열하사변을 일으킨다. 이로부터 4년 뒤 다시 말해 (가)가 에티오피아를 합병한지 1년 뒤 (나)는 (다)와 전쟁을 한다. 그로부터 4년 뒤 (나)는 (마)의 태평양 함대를 공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와 (마)가 4년간 격돌한다. 이 전쟁 초기, (마)는 이미 (나)와 4년간 전쟁 중이었던 (다), 인도네시아를 점령 중이었던 (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점령하고 있었던 (사)와 연합해 (나)에 대한 경제 포위망을 형성했다. 한편, (나)와 (다)가 전쟁을 한지 2년 뒤 유럽 역시 포화에 휘말린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했던 (아)와 에티오피아를 합병했던 (가)가 연합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아)는 파죽지세로 폴란드, 덴마크를 함락시키고 베저위붕 작전으로 노르웨이를 함락시킨 후, 룩셈부르크, (바), 벨기에까지 무너뜨렸고, 같은 해 프랑스 파리마저 함락시킨다. 한편, 프랑스가 (아)에 의해 함락된 소식을 들은 (나)는 이듬해 프랑스가 지배하던 (자)가 무주공산이 되자 전략 자원 확보를 위해 이곳을 점령한다.


3번. (가)~(자)에 대해 가장 적절한 것은?


1. (가)는 리비아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았다.

2. (아)는 (마)에 의해 원자 폭탄 투하를 경험했다.

3. (바)는 남아메리카에 식민지가 없었다.

4. (사)와 (마)는 (아)와 (나)랑 전쟁을 하지 않았다.

5. (다), (라), (자)는 (나)에게 있어 요충지가 아니었다.





“(가)가 우리의 태평양 함대를 공습한 이래로 우리는 (가)와 3년째 ’전쟁‘ 중에 있습니다. 친애하는 미국 시민 여러분! 저는 우리의 정의로운 ’전쟁‘ 수행을 위해 제가 (가)의 공습 직후 실행한 석유 배급제에 대해 여러분들의 불만이 있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편은 우리 선조들 즉,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이 자유로운 민주 연방국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잃었을 때 느낄 불편함과 비교하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민 여러분! 2년 전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승리 후 (가)는 패전에 몰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미국인들에게 주신 권능과 힘으로 (가)의 적대 행위를 멈출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


4번. (가)에 대해 가장 적절한 것은?


1. (가)는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다.

2. (가)는 ‘전쟁’에서 독일과 적대 관계였다.

3. (가)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4. (가)는 ’전쟁‘ 기간 동안 한 번도 공습당한 적이 없다.

5. (가)는 ’전쟁‘ 막바지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경험했고, 소련에 의해 만주를 빼앗겼다.



아나톨리아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의 해안선 일대를 비롯해 이집트, 리비아의 트리폴리, 튀니지 등의 북아프리카와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발칸반도까지 점령한 (가)는 메소포타미아의 지배권을 두고 동쪽으로 국경을 접한 (나)와 경쟁했다. 한편 이스마일 1세가 시아파를 규합해 시아파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페르시아 지역에 (나)를 건국했다. (가)의 셀림 1세는 찰디란 전투에서 (나)의 이스마일 1세와 격돌했다. 이로 인해 (나)는 바그다드를 비롯한 영토 일부를 상실하고 (가)가 수도 타브리즈까지 진격하도록 허용했다. 한편, 티무르의 후손 바부르는 북인도 지역에 (다)를 건국했다. 바부르의 손자였던 아크바르 시절 지즈야 폐지를 통한 종교적 관용책과 상공업 진흥책, 광산과 연료 원산지 개발, 목화 산업 육성, 관료제 정비를 통한 내치 안정화, 전쟁을 통한 인도 중북부 정복 등으로 (다)는 최고 전성기를 이룩하고 있었다. 이러한 (다)는 (가)에 의해 위태로운 (나)를 보고 자국과 (가) 사이의 완충 지대이자 서쪽으로 국경을 맞닿는 (나)가 위태로워지면 자국에 외교적•군사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다)는 (나)에게 화승총을 활용한 전법과 코끼리 부대 육성법 등을 전수해 군사적 지원을 해주었다. 이에 힘입어 (나)의 아바스 1세 시기 때 (가)에게 빼앗겼던 바그다드를 (나)가 되찾았고 그 결과 동서무역의 교통로를 장악해 비단과 양탄자 중심의 중계 무역으로 (나)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같은 시기 수도 역시 타브리즈에서 이스파한으로 천도하고 그 곳에 이맘 광장을 건설해 ’세계의 절반‘이라는 수도의 명칭에 걸맞는 위엄을 과시했다.


5번. (가)~(다)에 관해 가장 알맞은 것은?


1. (가)는 앙카라 전투에서 승리해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켰다.

2. (나)는 아라비아 왕조 중 하나다.

3. (나)는 동쪽으로는 (가)와 서쪽으로는 (다)와 국경을 접했다.

4. (다)는 힌두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제국이었다.

5. (다)는 7년 전쟁의 주요 무대가 아니었기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현재 (가)와 (나)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있다. (나)는 (가)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가)는 태평양으로 진출하고자 한다. 이러한 갈등은 현재만 그런 것이 아닌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지금으로부터 84년 전 (나)는 현재 (가)가 들어선 대륙을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침공한 (다)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격돌했다. 이후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다)는 패망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185년 전에는 (라)가 조공 질서를 중시하던 (마)를 침공하며 2년 간의 전쟁을 벌였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의 호랑이가 최초로 맞붙은 사건으로 아시아-태평양을 두고 서양과 동양이 충돌한 사건들 중 하나다. 이 전쟁의 결과로 (라)와 (마) 사이에서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이 체결되었고, 상하이를 비롯한 5개의 항구가 개항되었다. 또한 (마)의 패배로 (라)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태평양을 식민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후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라)는 알제리를 지배하는 (바)와 함께 (마)를 재침공해 주룽반도를 확보하고 난징 역시 개항시킨다. 이 사건을 계기로 (라), (바)와 같은 서구 열강들의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식민 지배는 가속화된다.


6번. (가)~(바)에 대해 가장 옳은 것은?


1. (가)와 (나)는 베트남 전쟁에서 대립했다.

2. (마)는 1차, 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했다.

3. (마)에서 태평천국 운동과 의화단 운동이 발생했다.

4. (라)는 인도차이나 연방을 (바)는 주룽반도를 지배했다.

5. (나)가 (다)의 태평양 함대를 공습했다.




1866년에 있었던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1867년 제국의 보존을 위해 실행한 대타협을 통해 수립된 (가)는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이스탄불)를 지배하던 (나)를 몰아내고 흑해 방면으로 진출한 (다)를 배후에 둔 (라)를 침공한다. 이때는 영러협상으로 삼국협상이 완성된지 7년 뒤인 시점이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 카메룬과 토고를 지배하던 (마)는 슐리펜 계획으로 콩고를 지배하던 벨기에를 침공한다.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를 식민지로 보유한 (바)는 삼국동맹에 근거해 처음에는 (마)의 편에 서지만 전쟁 발발 1년 뒤 영국과 프랑스의 회유로 협상국 측에 가담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을 (나)가 채운다. (나)는 1912년부터 1913년까지 있었던 1차 발칸 전쟁에서 (라)와 (사) 그리고 그리스를 상대로 패배해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 이스탄불)를 제외한 발칸반도의 모든 영토를 상실했다. 그래서 협상국에 가담한 (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의 편에 가담했다. 한편 1913년에 있었던 2차 발칸 전쟁의 결과로 (라)에 의해 영토를 빼앗긴 (사)는 복수를 위해 (마)의 편에 선다.


7번. (가)~(사)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1. (라)는 (가)의 방해로 영토 확장에 실패했고, 그 결과 알바니아가 탄생했다.

2. 그리스는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열강들의 지원에 힘입어 (나)와 싸워 독립한다.

3. (바)는 1911년 (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나)로부터 리비아를 빼앗는다.

4. (마)와 (다)는 삼국간섭의 핵심국들이었다.

5. (사)는 1•2차 발칸 전쟁 때 전부 (라)와 적대관계였다.




기원후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후 로마 제국은 (가)와 (나)로 분열된다. 이후 훈족의 서진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자 상무적인 게르만족들은 (가)에서 용병으로 활약한다. 이후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476년 (가)를 무너뜨리고 게르만족 왕국인 프랑크 왕국을 건국한다. 한편 (나)의 경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등장해 전성기를 이끌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 즉 동방 정교회의 보호자가 된다. 이는 명장이자 그의 충성스런 부하인 벨리사리우스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동고트 왕국과 반달 왕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옛 로마 제국의 일정 부분을 수복하는데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그렇다 할 황제와 명장이 나오지 못 했고, (나)는 군관구제와 둔전병제,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덕에 그나마 수세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페르시아 지역에 이란 계통이 세운 (다)가 들어서며 (나)의 동쪽 국경을 침범했고 (나)는 동서 무역로의 지배권을 두고 (다)와 대립했다. 한편, (다)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인정했으나 조로아스터교가 왕실과 결탁해 세속화되자 이에 대항해 마니교가 창시되며 조로아스터교를 비판했고, 그로 인해 왕실에서는 마니교를 탄압하는 등 내분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는 강력한 기마병으로 페르시아만, 메소포타미아 지역,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아나톨리아 반도 부근에까지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특히나 로마 제국이 (가)와 (나)로 분리되기 전 군인 황제 시기였을 때 에데사 전투에서 (다)의 샤한샤 샤푸르가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생포하기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수세를 유지하다가 부와이 왕조와 아바스 왕조를 꺾고, 아나톨리아까지 밀고 들어오는 (라)에 의해 위기감을 느껴 서유럽 세계에 구원을 요청해 십자군 전쟁을 치르지만 결국 서유럽이 패배하자 영향력이 더욱 위축되었다. (라) 역시 끝없는 정치적 내분과 왕위 다툼, 장기전이었던 십자군 전쟁 그로 인한 재정 악화로 쇠퇴하고 이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는 (마)가 건국되지만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 제국으로부터 멸망당할 뻔 하다가 가까스로 생존한다. 그러고 (마)의 메흐메트 2세가 잔존한 (나)의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며 1453년 (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8번. (가)~(마)에 관해 옳지 않은 것은?


1. (가)는 나중에 베르됭•메르센 조약으로 현재의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의 기원이 되는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로 쪼개진다.

2. (나)는 4차 십자군 원정 때 셀주크 튀르크에 의해 약탈당한다.

3. (다)는 정통 칼리프 세력에 의해 멸망당한다.

4. (라)를 건국한 세력은 당나라에 복속당한 적이 있다.

5. (마)는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발칸 반도, 중부 유럽, 크림 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가)는 ‘돌 요새’ 또는 ’바위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도시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 다음으로 규모가 큰 제2도시다. 이곳은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기계 공업, 화학, 면화, 비단, 피혁 등의 산업을 담당한다. 실크로드의 핵심 도시였기에 이슬람 연구의 핵심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기도 했다. 이 도시는 제라프샨강 하류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51만명이다. 한편 티무르 제국과 경쟁 관계였던 명나라는 태조 홍무제 때만 하더라도 수도가 남경이었으나 영락제 때 (나)에 자금성을 건설해 천도했다. 이후로도 (나)는 청나라 때의 수도였으나 장제스의 중화민국 시절 수도를 다시 (나)에서 남경으로 옮겼고 국공 내전 이후 장제스가 패배해 타이완 섬으로 옮기면서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 본토에 들어서자 다시 수도가 남경에서 (나)로 이전된다.


9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 (가)-아미르 티무르의 동상이 있다.

3. (나)-중일전쟁 초기 일본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4. (나)-베이징 조약과 신축 조약에 의해 외국 공사관과 외교관 그리고 외국 군대가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5. (가)와 (나)-둘 다 열강에 의해 직접 지배당한 적이 있다.




이소스 전투에서 이긴 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상대로 승리해 (가)를 멸망시킨 그는 (나)를 세운 후 얼마 안 가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그의 사후 (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 (다) 등 여러 국가로 분열한다. 특히나 (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안티고노스 왕조와 경쟁하다가 약화된다. 이 틈을 타 기원전 256년에 (다)로부터 박트리아가 독립하고, (라)가 발흥해 (다)를 멸망시킨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안티고노스 왕조까지 함락시키며 (라)는 현재의 이란 지역에 대제국을 수립한다. 이러한 (라)는 당나라에 의해 ‘안식국‘이라고 불렸으며 동시대의 후한-쿠샨 왕조-로마 공화국과 중계 무역을 전개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10번. (가)~(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이오니아 반란을 계기로 그리스 세계와 3차례 격돌한다.

2. (나)-동•서 문화의 융합을 시도했다.

3. (다)-셀레우코스 1세가 개창했다.

4. (라)-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한다.

5. (다)와 (라)-두 국가 모두 서로 경쟁 관계였다.



3차례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후 (가)가 델로스 금고를 만들어 동맹 기금을 남용하는 것에 불만을 품자 일부 폴리스들은 (가)에 반기를 든다. 하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해군력이 강화된 (가)는 이들을 무력으로 짓밟아 버리며 사실상 강압적인 패권국의 모습을 보인다. 이에 불만을 품은 여러 폴리스들은 펠로폰네소스에 위치한 군사•왕정 도시 국가인 (나)에 붙었다. (나)는 노예 계층인 헤일로타이가 인구의 과반이었으며 페르시아와의 세 차례의 전쟁 중 왕까지 전사시켜가며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진격을 막아섰다. 하지만 결국 내부 배신자가 협곡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을 페르시아 대군에게 알려주며 결국 페르시아에 의해 후방을 급습당한다. 한편 이 내부 배신자가 신체적 장애 즉 곱추였다는 설이 있다. (나)는 군사 국가 였기에 남녀 불문하고 건장해야 했으며 여자는 신체적 단련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보유, 건장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전쟁터에서 전사하게끔 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영예라고 믿었다. 태어난 직후 아이들 중 장애가 있으면 버려졌고, 건강한 아이들은 아고게에서 7살부터 합숙을 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11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현재 그리스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 세계의 중심지였다.

2. (가)-상업 발달로 외국인 비율이 (나)에 비해 높았다.

3. (가)-마라톤 전투, 플라타이아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활약했다.

4. (가)-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장이자 민주정의 발달로 아고라 광장에서의 토론 문화와 대표적인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로 인해 상대주의가 발달했다.

5. (나)-(가)에 비해 육군보다 해군이 더 강력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 프로이센과 오스트라아가 격돌했다. 이때 (가)가 프로이센을 (나)가 오스트라아를 지원했으나 오스트리아가 참패했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왕위를 인정받는 대신 당시 오스트리아 세수의 1/3을 담당하던 슐레지엔 지역을 상실했다. 이 사건 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자신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의 왕가에 시집 보냈고 그 결과 동맹의 역전이 일어나 (가)는 오스트라아를 지원하고, (나)는 프로이센을 지원하게 된다. 그 상태에서 슐레지엔을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유럽 본토에서 7년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와 달리 (가)는 패배했고, (나)가 승리한다. 한편, 7년 전쟁의 여파는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가)와 (나)가 격돌했다. 퀘벡을 점령했던 (가)와 13개주를 지배했던 (나)는 서로 전쟁을 한 것이다. 이를 프렌치-인디언 전쟁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는 (나)에 의해 패배했고 퀘벡 주는 (나)의 아메리카 13개 주 식민지로 편입된다. 무굴 제국에서도 플라시 전투를 통해 (나)가 뱅골 태수를 지원한 (가)를 상대로 승리해 뱅골에 대한 지배권을 들고왔다.


12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는 아프리카에서 횡단 계획을 실시하며 서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했다.

2. (가)는 1•2차 모로코 사건 때 독일과 충돌했다.

3. (가)는 2차 아편 전쟁 때 (나)와 함께 참전했다.

4. (나)는 빅토리아 여왕 통치 시기에 전세계 1/3을 석권했다.

5. (나)의 아시아•태평양 식민지로는 싱가포르, 파푸아 뉴기니,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통가, 인도차아나 등이 있다.




(가)에는 원래 원주민들이 안착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갈 것 같았던 (가)의 원주민들에게 큰일이 닥친다. 17세기 당시 전세계 선박의 3/4를 소유했던 (나)에 의해 무역 거점으로서 활용되었다. 한편 (가)의 옆에 있는 대륙에는 만주족의 황제 순치제가 오삼계의 도움으로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을 함락시키며 자금성에 입성해 한족 중심의 (다)를 몰아내었다. 그 결과 만주족 중심의 국가인 (라)가 중원을 차지한다. 한편, (다)의 후손들 중 정성공 일족은 (다)의 재건을 내세우며 (나)를 몰아내고, (가)에 자리잡아 왕국을 세운다. 하지만 (라)의 강희제는 자신에게 대항하며 (가)에 자리잡은 정씨 일족을 토벌해 (라)의 영토로 편입시킨다. 이후 1894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26년 전에 근대화에 성공한 (마)는 (라)와 전쟁을 벌인다. 1년 뒤 (마)와 (라) 사이에서 불평등 조약이 체결되어 (가)에 대한 지배권은 (마)가 가지게 된다.


13번. (가)~(마)에 관해 옳지 않은 것은?


1. (가)-제2차 국공내전 이후 장제스가 이주했다.

2. (가)-외성인과 내성인이 친중•반중 노선을 두고 대립한다.

3. (나)-19세기에 파푸아 뉴기니를 영국, 독일과 함께 분할 지배한 적이 있다.

4. (다)-정화의 원정을 지원해 조공 질서를 확대하며 위엄을 과시했다.

5. (라)와 (마)-의화단 운동 때 8개국 연합군에 가담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캅카스를 지배한 (가)와 3C 정책을 추진한 (나) 사이의 그레이트 게임이 1907년에 맺어진 협정으로 종식된다. 그로부터 7년 뒤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21년 간격으로 연이어 터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의 랜드리스 법을 통해 원조를 받은 (나)는 그 대가로 넓은 대양에 위치한 자국의 해군기지를 (다)에게 양도하면서 패권을 상실한다. 1941년 8월, (다)가 이러한 (나)와 대서양 회담을 통해 대서양 헌장을 채택하며 (다) 중심의 (라) 기구가 들어섰다. (라) 기구는 진주만 공습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다)가 전후 국제 질서를 이끌어 간다는 것을 상징했다. 그리고 이는 이때부터 지금까지 80년간 전후 국제 질서의 핵심이 되었다.


14번. (가)~(라)에 대해 틀린 것은?


1. (가)-제1차 세계대전 중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근거해 동부전선에서 이탈했다.

2. (나)-인도, 미얀마, 이집트 등을 지배했으며 세 차례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정복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3. (다)-건국 초기 고립주의 노선이었으며 이에 근거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의회의 반대로 국제 연맹에 불참했다.

4. (라)-1971년에 중국이 가입했다.

5. (라)-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상임 이사국들은 모두 4개국이다.



기원전 202년 북아프리카 연안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며 상업을 통해 전성기를 누리던 (가)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나)는 자마 전투에서 격돌한다. (가)의 한니발은 (나) 스키피오에 의해 패배하며 (가)는 결국 지중해 패권을 (나)에게 넘겨준다. 한편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멸망한 뒤 하해 전투에서 초나라와 한나라가 충돌했고 한고조(유방)이 이기며 진한 교체기가 막을 내린다. 이후 한무제 시기 남월과 고조선을 정복하고 장건을 서역(대월지)에 파견해 실크로드를 발견하고 여기에 대한 지리를 알게 되며 진나라 때부터 중원을 위협한 (다)를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다)는 4-6세기 전반에 걸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유발했던 훈족의 전신 중 일부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위진남북조 시기 5호 16국 중 5호의 하나에 해당되는 오랑캐이기도 했다. (다)의 명칭 자체가 ’흉폭한 오랑캐‘의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15번. (가)~(라)에 대해 옳지 않은 것은?


1. (가)-카르타고라는 식민 도시를 세웠고, 알파벳이라는 표음 문자를 사용했다.

2. (나)-로물루스가 건국했다는 설화가 있다.

3. (나)-마케도니아 전쟁과 셀레우코스 전쟁에서 이기며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었다.

4. (나)-1•2차 삼두 정치를 겪은 뒤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제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3세기부터 군인 황제 시대에 접어들고, 시간 왕조 페르시아와 대립하며 내우외환에 빠진다.

5. (다)-몽염 장군에 의해 정벌되지 않고 오히려 오르도스 아래로 남하해 중원을 위협했으며,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북의 효문제를 배출했다.



“오늘 빵을 사러 나간 사이 호외를 보았다. 그 신문에 또 다른 혁명이 발생했다고 나와 있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처음에는 입한군주정이었고, 그 다음에는 공화정이었고 그 시기 혁명 전쟁까지 치루었다. 이후에는 5명의 총재가 정부를 이끌었고 다음에는 제정이었다. 이후 왕정이 부활했고, 다음이 입헌군주정이었다. 끝인 줄 알았던 격변이 다시 태동했다. 신문을 보아하니 다시 한 번 공화정이 들어선 것 같다. 이 혁명으로 옆 나라에서는 재상이 추방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은 또 누가 될까?“


16번. 밑줄 친 혁명에 대해 옳은 것은?


1. 샤를 10세가 추방되었다.

2.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3. 그리스 독립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4. 벨기에 독립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5.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발생했다.



“저는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으로서 알려드립니다. 지금부터 주권주의적 원칙을 지키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류에 대해 일체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통해 굶주리는 인민들의 경제와 삶의 여건을 개선할 것입니다.“


17번. 밑줄 친 시류에 대해 알맞지 않은 것은?


1.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가 몰락했다.

2. 헝가리에서 다당제가 도입됐다.

3. 벨벳 혁명과 벨벳 분리를 통해 체코-슬로바키아가 민주화•분리되었다.

4. 몽골, 발트 3국, 벨라루스,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이 민주화되었다.

5. 그로지야 침공과 크림 반도 강제 합병이 발생했다.



(가)와 (나)는 잦은 국경 분쟁과 흐루쇼프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마찰을 빚었고 이윽고 (가)는 (나)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다. 한편, (가)는 베트남에서 미국과 충돌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반면 (나)의 마오쩌둥은 제2차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며 국민당의 장제스를 몰아냈으나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실권한 후 문화 대혁명을 통해 복귀하는데 성공했지만 정적 숙청과 문화 쇠퇴의 주범이기도 했다. 한편, 미국은 (가)와 (나)의 관계가 악화된 틈을 타 키신저를 특사로 파견해 (나)와 핑퐁 외교를 구사하며 (가)를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또한 미국은 (가)와 전략무기제한협정 1•2(SALT 1•2)를 체결하기도 했다.


18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가)-1922년에 수립됐으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몰도바 등 수 많은 구성국들을 보유했다.

2. (가)-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과 협력했다.

3. (나)-21세기에 들어서며 러시아와 패권 경쟁 중이다.

4. (나)-천안문 사태와 장유 사건 이후 민주화에 성공했다.

5. (가)와 (나)-한국 전쟁 때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 북한과 맞섰다.




페르디난트 2세는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수립하고 싶었다. 따라서 신성로마제국 내 종교는 로마 카톨릭만 허용했고, 루터파•칼뱅파 개신교는 탄압했다. 이러한 내부의 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한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이다. 당시 페르디난트 2세는 개신교 집회를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했으나 보헤미아(현재 체코 지역)의 개신교 세력들이 몰래 이를 어겼고, 이를 왕의 대리인들이 꾸짖으며 해산시키자 개신교 세력이 반발하며 페르디난트 2세의 대리인들을 창문 밖으로 던져 이들의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 결국 페르디난트 2세는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과 전쟁을 한다. 이 전쟁에서 개신교 세력을 지원하던 개신교 국가인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왕국을 상대로 초기 승리를 거두었으나 북방의 사자라고 불리우는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참전하며 전세가 역전되었으나 그 역시 전쟁이 한창일 때 전투 도중 사망하며 다시 한 번 페르디난트 2세가 이끄는 로마 카톨릭 세력이 승기를 잡았다. 스페인은 로마 카톨릭 세력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 2세를 도와줬고 스페인에 맞서 이미 80년 전쟁 즉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하던 네덜란드는 개신교 세력과 함께 했다. 또한 당시 동유럽의 최강자였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루스 차르국, 오스만 제국과 잦은 국경 분쟁을 하느라 재정 악화를 빌미로 귀족 의회인 세임이 반대하며 참전하지 못 했다. 한편, 프랑스의 참전으로 전세가 바뀌기 시작한다.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던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에 의해 둘러싸인 프랑스는 자국 옆에 강력한 통일 국가 들어설 경우 외교적 고립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당시 재상이었던 리슐리외의는 프랑스가 카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세력을 원조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스웨덴에 군자금 조달과 군사 지원을 해주고 첩보전•심리전을 벌이며 개신교 세력을 도와주며 전쟁을 마무리 한다.


19번. 밑줄 친 전쟁에 대해 옳은 것은?


1. 벨기에가 독립했다.

2.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3.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루터파 개신교와 더불어 칼뱅파 개신교 역시 인정받았고,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4.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화의가 체결되어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루터파 개신교가 허용되었다.

5. 17세기의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릴 만큼의 국제전이 아닌 내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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