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 오늘 올린 글은 어제 올린 해설의 후속편입니다. 즉, 11~20번 문제의 해설입니다. 한 문제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오늘 해설 말미에 한 문제 추가로 더 내고 그에 대한 해설도 쓰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11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현재 그리스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 세계의 중심지였다.
2. (가)-상업 발달로 외국인 비율이 (나)에 비해 높았다.
3. (가)-마라톤 전투, 플라타이아 전투, 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활약했다.
4. (가)-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장이자 민주정의 발달로 아고라 광장에서의 토론 문화와 대표적인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로 인해 상대주의가 발달했다.
5. (나)-(가)에 비해 육군보다 해군이 더 강력했다.
해설: (가)=아테네, (나)= 스파르타
1. 아테네는 현대 그리스의 수도이자 고대 그리스 세계의 중심지였음.
2. 아테네는 상업 발달로 외국인 거주민(메토이코이)가 실제로 존재함.
3. 아테네의 주도로 마라톤 전투(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일부), 살라미스 해전(테미스토클레스 주도/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일부), 플라타이아 전투(3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중 일부) 전부에 아테네가 개입함.
4.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장이었고, 민주정의 발달로 아고라 광장에서의 토론 문화로 인해 소피스트가 발달했고 그 결과 대표적인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로 인해 상대주의가 발달했다.
5. 아테네는 해군 강국(해상업의 발달로 조선 기술 발달), 스파르타는 육군 강국(전통적인 농업국가이자 내륙 도시, 특유의 상무적인 분위기로 육군 훈련 발달, 대표적 예시로 아고게 훈련, 여성의 신체 운동 장려 등)이었다.
정답: 5번
12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는 아프리카에서 횡단 계획을 실시하며 서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했다.
2. (가)는 1•2차 모로코 사건 때 독일과 충돌했다.
3. (가)는 2차 아편 전쟁 때 (나)와 함께 참전했다.
4. (나)는 빅토리아 여왕 통치 시기에 전세계 1/3을 석권했다.
5. (나)의 아시아•태평양 식민지로는 싱가포르, 파푸아 뉴기니,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통가, 인도차아나 등이 있다.
해설: (가)=프랑스, (나)=영국
1.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횡단 계획을 실시하며 서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함(대표적 예시: 모리타니, 말리, 니제르, 알제리, 차드 등)
2. 프랑스는 모로코를 두고 1•2차 모로코 사건 때 독일과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감.
3. 프랑스는 영국과 같이 2차 아편 전쟁 때 함께 참전함.
4. 빅토리아 여왕 시기 대영제국의 최고 전성기였고 전세계 1/3을 석권함.(대표적 예시: 1877년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통치개선법을 선포하며 영국의 영왕이자 영국령 인도 제국의 황제를 겸임함.)
5. 영국의 아시아•태평양 식민지로는 싱가포르, 파푸아 뉴기니, 말레이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통가 등이 있으며 인도차이나는 프랑스 식민지였음.(참고로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이었기에 식민지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견해가 있지만 어찌됐든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로 인해 영국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이며 대영제국의 일부였기에 이 문제에서는 식민 지배로 간주함.)
정답: 5번
13번. (가)~(마)에 관해 옳지 않은 것은?
1. (가)-제2차 국공내전 이후 장제스가 이주했다.
2. (가)-외성인과 내성인이 친중•반중 노선을 두고 대립한다.
3. (나)-19세기에 파푸아 뉴기니를 영국, 독일과 함께 분할 지배한 적이 있다.
4. (다)-정화의 원정을 지원해 조공 질서를 확대하며 위엄을 과시했다.
5. (라)와 (마)-의화단 운동 때 8개국 연합군에 가담했다.
해설: (가)=대만(타이완), (나)=네덜란드, (다)=명나라
(라)=청나라, (마)=일본
1. 대만에는 제2차 국공 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 중심의 국민당이 이주한 곳임.
2. 외성인은 제2차 국공내전 때 이주한 장제스와 그의 측근들과 중국인들을 의미하고, 내성인은 대만 토착 원주민 세력과 정성공 일족이 대만에 넘어와 정씨 왕국을 건국할 때 넘어온 한족들 그리고 청나라 때 특히 건륭제 시절 문자의 옥으로 청나라 비판을 금지하자 대만으로 넘어온 한족 지식인과 한족들 등의 후손들을 의미함 즉, 제2차 국공내전 전에 넘어온 한족과 그 전부터 살아왔던 토착 원주민 세력들을 내성인, 제2차 국공 내전 때 장제스와 함께 넘어온 한족들을 외성인이라고 부름
외성인은 친중, 내성인 친미 성향이 강함.
3. 네덜란드는 19세기 때 파푸아 뉴기니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령 뉴기니를 지배한 적 있음.(19세기 파푸아 뉴기니는 독일령, 영국령, 네덜란드령으로 쪼개져 있었고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패전후 비스마르크 제도 즉 지금의 마셜 제도를 비롯한 독일령 뉴기니를 상실함.)
4. 명나라 시절 총 7차례에 걸친 정화의 원정을 통해 동아프리카(지금의 소말리아)까지 진출해 조공 질서를 확대했고, 명나라의 위엄을 과시했음.
5. 의화단 운동(1899-1901) 시기 8개국 연합군에 참여한 국가는 일본이었음. 청나라는 여기에 가담한 적 없음.
정답: 5번
14번. (가)~(라)에 대해 틀린 것은?
1. (가)-제1차 세계대전 중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근거해 동부전선에서 이탈했다.
2. (나)-인도, 미얀마, 이집트 등을 지배했으며 세 차례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정복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3. (다)-건국 초기 고립주의 노선이었으며 이에 근거해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의회의 반대로 국제 연맹에 불참했다.
4. (라)-1971년에 중국이 가입했다.
5. (라)-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의사 결정권이 있는 상임 이사국들은 모두 4개국이다.
해설: (가)=러시아, (나)=영국 (다)=미국, (라)=UN
1. 3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하나 새로이 들어선 임시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을 지속하자 레닌을 중심으로 11월 혁명이 발생해 임시 정부를 타도하고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이 정권이 독일제국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단독 강화를 맺고 동부전선에서 이탈함. 협상국, 특히나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중에 이탈한 러시아를 탐탁지 않아 했음.
2. 영국은 영국령 인도와 영국령 미얀마(당시에는 버마라고 불림)를 합해 영국령 인도 제국을 수립했고, 영국령 이집트 등을 식민 지배했다.(이집트는 1922년 즉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립을 시켜주나 수에즈 운하는 영국이 소유함. 이는 나중에 1956년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영국 기업의 자본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를 국유화하면서 되찾음.) 또한 세 차례의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함.(1차: 1839-1842, 2차: 1878-1880, 3차: 1919)
3. 미국은 건국 초기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 의해 고립주의 노선이 채탁되며 이를 후대에도 유지함.(특히 미국 독립 혁명으로 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국은 유럽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도 간섭받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할 경우 다시 영국의 간섭을 받거나 유럽의 다른 열강의 분쟁에 끼어들게 되면 그 영향력이 미국으로까지 뻗칠까 우려했기 때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에 대해 독일이 배상하고 사과하며 유보트 대서양 작전 금지 약속을 했는데 이를 재차 어긴데다 미국을 견제허기 위해 멕시코를 동맹국 측에 끌어들이려고 일으킨 치머만 전보 사건(독일 외무부 장관 치머만이 멕시코에게 미국을 견제해주는 대가로 미국-멕시코 전쟁 때 미국에 의해 잃은 텍사스와 같은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내용이 담긴 전보를 보낸 사건, 이 전보를 멕시코가 미국에게 공개해 이에 불만을 품은 미국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 승리 후 미국 주도로 국제 연맹 즉 League of Nations를 수립하나 미국 상원의 반대로 미국은 불참함. 이때 다시 힌 번 고립주의 노선이 작영한 것임.)
5. UN에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의 의사 결정권을 지닌 상임 이사국들은 5개국(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영국, 미국)이 존재함.
(참고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여기에 일본을 가담시키려는 계획 구상이 있었고 일본이 이를 환영했던 적도 있었음. 이와 관련해 커피 클럽이 있는데 이는 상임이사국 확대 반대국들이 모인 비상설 협의체임. 여기에 대한민국이 소속되어 있었고, 당시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상임 이사국 확대 계획에 불만이 있었음./당연히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데 같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일본은 상임 이사국에 한국은 비상임 이사국에 그치면 한국 입장에서는 국가적 체면과 위상이 떨어지는데다 그만큼 지정학적 중요성이 하락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정답: 5번
15번. (가)~(라)에 대해 옳지 않은 것은?
1. (가)-카르타고라는 식민 도시를 세웠고, 알파벳이라는 표음 문자를 사용했다.
2. (나)-로물루스가 건국했다는 설화가 있다.
3. (나)-마케도니아 전쟁과 셀레우코스 전쟁에서 이기며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었다.
4. (나)-1•2차 삼두 정치를 겪은 뒤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제정을 시작함과 동시에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3세기부터 군인 황제 시대에 접어들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대립하며 내우외환에 빠진다.
5. (다)-몽염 장군에 의해 정벌되지 않고 오히려 오르도스 아래로 남하해 중원을 위협했으며,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북의 효문제를 배출했다.
해설: (가)=페니키아, (나)=로마, (다)=흉노
1. 페니키아는 지금의 튀니지 지역에 카르타고라는 식민 도시를 건설해 지중해 무역을 주도하며 전성기를 이룩함.(현재도 카르타고는 튀니지의 도시 중 하나이며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의 근방에 위치함.)
2. 로마 건국 설화의 내용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있었는데 두 형제가 언덕에 독수리가 더 많이 몰리는 곳에 나라를 건국하자고 했는데 형인 레무스가 동생 로물루스 몰래 자신이 지정한 언덕에 고기를 가져다 놓고 독수리를 유인함. 그래서 그곳에 나라를 세울 뻔 했지만 형의 간계를 간파한 동생 로물루스가 비겁하다며 형인 레무스에 결투를 신청함. 결국 레무스를 죽인 로물루스가 자신이 지정한 언덕에 도시를 세움. 그게 도시 국가로 시작한 로마의 시작점이었음.
3. 셀레우코스 전쟁(셀레우코스 왕조 쇠퇴), 마케도니아 전쟁(안티고노스 왕조 몰락)을 통해 지중해를 둘로싼 제국의 판도를 형성함. 이후 3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의 승리로 사실상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가 완성됨.
4. 1차 삼두 정치에서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가 다툼.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대립하던 찰나 카이사르가 둘 사이를 중재하며 자신에게 집정관(콘솔/군사권을 쥘 수 있는 고위직)을 내주면 둘을 위해 종사하겠다고 하자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이에 동의해 직위를 넘겨줌. 하지만 군사권을 쥔 카이사르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를 정복하는데 성공함. 한편 업적이라곤 노예 반란인 스파르타쿠스의 난(로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예 반란)을 진압한 게 전부였던 크라수스는 카이사르의 정복 활동에 정치적 위기감을 느끼고 자극받아 파르티아를 정복하러 가지만 정복 도중에 사망하고 이후 민중파였던 카이사르와 원로원파였던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 내전에서 맞붙지만(“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로 유명한 사건, 사실은 “주사위를 던져라.”라는 표현이 더 정확함. 이게 카이사르가 당시에 진짜로 한 말이었음.)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에서 옛 동료에 의해 사망하자 결국 카이사르가 최종 승자가 됨. 이후 종신 집정관이 되려고 했던 그는 공화정의 전통을 해친다며 원로원의 반발을 샀고, 그 결과 원로원에 의해 암살당함. 이때 암살하려던 사람들 중 자신이 믿고 의지한 브루투스가 섞여있자 암살 직전 그 모습을 본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외치고 죽음.(하지만 진짜로 저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없음. 여부가 불투명함. 다만 매우 유명한 일화라서 적음.) 이후 2차 삼두 정치에서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손 잡은 안토니우스(당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사랑에 빠졌음.)를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격파하며 승리한 뒤 정치적 주도권을 쥠. 이후 그는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를 하사받지만 그는 스스로를 프린켑스(제1 시민)라고 낮춰 부름. 하지만 결국 그는 원로원의 동의로 로마의 황제 자리에 즉위하고 로마 공화정은 막을 내리며 기원후 1-2세기 동안 로마 제국이 시작됨. 이후 기원후 3세기쯤 막시미누스 트락스(직업 군인 출신)라는 황제가 처음으로 군인 황제 시대를 개막함. 그 결과 로마는 50년 동안 황제만 26명이 비뀌는 등 끝없는 내분에 휩싸임. 이 와중에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도 경쟁하면서 에데사 전투에서 사산 왕조의 샤푸르에 의해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포로로 잡혀 샤푸르가 말 위에 올라 탈 때 등을 내어주는 등의 치욕을 당하기도 함.
5. 흉노는 몽염 장군에 의해 토벌되어 오르도스 이북으로 밀려났고 이후 진시황의 명령으로 만리장성을 쌓아 이들의 남하를 견제함. 그리고 흉노는 4-6세기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자극한 훈족과 유전적으로는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또한 위진남북조 시기 북위 효문제를 배출한 부족은 북쪽의 5호 16국 중 5호에 해당하는 선비족임.
정답: 5번
16번. 밑줄 친 혁명에 대해 옳은 것은?
1. 샤를 10세가 추방되었다.
2.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3. 그리스 독립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4. 벨기에 독립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5.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발생했다.
해설: 밑줄 친 혁명=2월 혁명(1848)
1. 샤를 10세가 추방된 건 7월 혁명(1830)이었음.
2. 2월 혁명에 의해 ‘시민의 왕’으로 추대된 루이 필리프가 퇴위하고 루이 나폴레옹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선출됨.
3. 그리스 독립 전쟁(1821-1829)은 7월 혁명(1830), 2월 혁명(1848)과 무관함.
4. 7월 혁명(1830)이 벨기에 독립 혁명의 계기가 되었고,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함.(빈조약으로 빈체제가 들어서자 당시 네덜란드는 벨기에를 합병하는데 이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등이 프랑스 내에서 혁명이 터지면 4개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네덜란드가 앞장서서 혁명을 진압하고 있어야 하며 그럴려면 국토와 인구 즉 국가의 체급을 키워줘야 한다고 판단해 벨기에를 네덜란드에게 넘겨줌)
5. 나폴레옹 전쟁은 1815년에 끝남. 이로부터 15년 뒤에야 7월 혁명(1830)이 발발했고, 33년 뒤에야 2월 혁명(1848)이 발생함.
정답: 2번
17번. 밑줄 친 시류에 대해 알맞지 않은 것은?
1.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가 몰락했다.
2. 헝가리에서 다당제가 도입됐다.
3. 벨벳 혁명과 벨벳 분리를 통해 체코-슬로바키아가 민주화•분리되었다.
4. 몽골, 발트 3국, 벨라루스,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이 민주화되었다.
5. 그로지야 침공과 크림 반도 강제 합병이 발생했다.
해설: 밑줄 친 시류=동유럽 공산 체제 붕괴와 소련 위성국들의 독립
1. 1989년 유혈 사태로 차우셰스쿠는 반정부 무장 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총살당함.
2. 헝가리에서는 공산당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다당제가 도입되며 민주화가 이룩됨.
3.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생제르맹 조약으로 해체된 이후 체코-슬로바키아가 탄생함.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게 점령당했다가 연합군의 승리 직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함. 소련의 압제에 맞서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19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이 일어나지만 소련의 붉은 군대가 이를 진압하며 실패함. 이후 소련이 위태로워지고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불간섭 선언을 고수하자 이때를 틈타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는 벨벳 혁명으로(유혈 사태없이 평화롭게 진행되어 부드러운 옷감인 벨벳에 빗대어 묘사함) 민주화를 이룩하고 1992년 벨벳 분리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됨.(무혈 사태가 없이 부드럽게 평화적으로 분리됐다고 해서 부드로운 옷감인 벨벳에 빗대어 표현함)
4. 발트 3국은 1990년에 소련 탈퇴해 독립,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에 독립, 몽골은 1989년부터 시작된 민주화 운동으로 1990년 몽골이 민주화를 이룩해 1992년에 몽골 헌법에 채택•발효됨.
5. 그로지야 침공은 2008년, 크림 빈도 강제 합병은 2014년에 일어났으며 전부 다 푸틴 시기에 일어난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전형적인 수정주의적 행보였음.
정답: 5번
18번. (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 (가)-1922년에 수립됐으며,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몰도바 등 수 많은 구성국들을 보유했다.
2. (가)-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과 협력했다.
3. (나)-21세기에 들어서며 러시아와 패권 경쟁 중이다.
4. (나)-천안문 사태와 장유 사건 이후 민주화에 성공했다.
5. (가)와 (나)-한국 전쟁 때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해 북한과 맞섰다.
해설: (가)=소련, (나)=중국
1. 적백내전(1917-1922/러시아에서 레닌의 소비에트를 중심으로 하는 적색군과 왕정 복고를 옹호하는 자본가, 지주 등으로 구성된 백색군이 충돌한 러시아 내전)에서 적색군이 이긴 후 소련이 건국됨. 이때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캅카스 지방(현재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로지야), 중앙아시아(현재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구성국으로 둠.
2. 소련과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대립했지 중국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적도 거기서 미국과 협력한 적도 없음. 오히려 박정희 정권 치하 한국이 베트남 전쟁(월남전) 때 미국에 협력했고 그 대가로 브라운 각서를 체결해 국군 근현대화를 이룩했음.
3. 중국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패권 전쟁 중이지 러시아와 패권 전쟁 중이 아님. 오히려 둘은 협력하며 메국에 대항하는 수정주의 세력 또는 격변의 축을 구성하는 국가들임.
4. 천안문 사태(1898), 장유 사건(2025년 7월) 모두 반정부•반공산당 시위로 격화되었으나 전자는 군대에 의해 후자는 중국 공안과 무장 경찰에 의해 진압당해 실패했고 민주화를 이룩하지 못 함.
5. 중국과 소련은 한국 전쟁 때 북한을 원조했고, 연합군의 일원이 아니었음.
정답: 1번
19번. 밑줄 친 전쟁에 대해 옳은 것은?
1. 벨기에가 독립했다.
2.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3.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루터파 개신교와 더불어 칼뱅파 개신교 역시 인정받았고,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4.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화의가 체결되어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루터파 개신교가 허용되었다.
5. 17세기의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릴 만큼의 국제전이 아닌 내전이었다.
해설: 밑줄 친 전쟁=30년 전쟁
1. 벨기에가 독립한 건 1830년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7월 혁명이 계기였음.
2.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오선 건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자코뱅파에 의해 루이 16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이 선포되면서였음. 즉 프랑스 대혁명(1789-1799) 때문이었고, 이후 2월 혁명(1848)의 여파로 루이 필리프를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정이 무너지고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다시 공화정이 도입됨.
3. 30년 전쟁의 결과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며 스페인으로부터는 네덜란드가 독립했고,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는 스위스가 독립함.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1555년)의 결과로 인정된 루터파 개신교를 재확인하고, 칼뱅파 개신교를 새로이 인정함.
4. 슈말칼텐 전쟁(1546-1547/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로마 카톨릭 강요를 시행하며 이에 반발해 신성로마제국 내 루터파 개신교 세력들이 맞서 싸운 종교 전쟁이었음.)의 결과로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1555)가 체결되어 신성로마제국 내 루터파 개신교가 용인됨.
5. 30년 전쟁은 17세기의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릴만큼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확산됨(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 네덜란드, 스웨덴 제국, 에스파냐 왕국, 프랑스 왕국, 신성로마제국이 전부 당사국들임)
정답: 3번
(가)는 전통적으로 아시아의 조공 질서를 확립하며 19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고대부터 근세까지 통틀어 명실상부 패권을 확립해 자국 중심의 질서를 주도했으며 이를 중화 중심주의(중화주의)라고 부른다. (나)의 경우 19세기 영국과의 그레이트 게임으로 경쟁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왕정이 붕괴되었고 그 결과 1922년 소비에트 정권 중심으로 소련이 들어섰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냉전 시기 (다)와 경쟁했다. 하지만 1979-1989년까지 지속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재정난에 이르자 연장의 감당이 힘들어진 (나)는 결국 냉전 시기 동안 (다)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캅카스 지방 전부를 포기했다. (다)의 경우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이래 1823년 먼로 대통령의 먼로 선언으로 이어진 고립주의 노선을 유지하다가 제1•2차 세계대전으로 개입주의를 하지만 닉슨 대통령 시절 베트남 전쟁에서 발 빼며 핵 전쟁이 아닌 이상 아시아 국가들의 안보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뉘앙스의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면서 고립주의가 강화되는 듯 했으나 레이건이 당선되면서 레이거니즘(개입주의 노선)이 강화되었다. 이는 오바마 때까지 유지되다가 결국 2016-2020년 트럼프 1기 때 주춤했고, 2020-2024년까지는 바이든이 들어서며 회복되는 듯 했으나 2024-2028년 트럼프 2기가 들어서며 다시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20번.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 (가)-한나라 시절 때 자국 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2. (가)-(다)와 태평양에서 패권 전쟁 중이며 일대일로&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를 통한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 기술굴기 등을 시도하고 있다.
3. (나)-2008년 그로지야를 침공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라는 친러분리주의 세력을 독립시키고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신냉전을 초래했다.
4. (나)-2014년에는 크림 반도 강제 합병과 돈바스 전쟁에 개입했고, 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와그너 그룹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며 미국과 충돌을 빚었고, 북극항로를 두고도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5. (다)-오바마의 주도로 JCPOA가 무효화되었다.
해설: (가)=중국, (나)=러시아, (다)=미국
1. 한나라 시기 이전의 전서 형태에서 벗어나 예서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해서와 같은 현대적인 한자 형태의 기반이 되는 서체들이 등장했음. 애초에 한나라의 ‘한’자가 중국 민족을 의미하는 한족의 ‘한‘과 똑같은 한자며, 한자의 ’한’ 역시 마찬가지임. 한자에는 한나라 한 이라는 한자도 있음.(참고로 대한민국의 ‘한‘은 한자로 나라이름 한이다.) 또한 유학자 동중서의 건의로 유교가 국가 통치 체제의 이념으로써 자리잡음.
2. 중국은 기술 굴기를 통해 4차 산업에 필수적인 반도체 자체 생산과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AI 개발과 항공우주산업에도 몰두하며 미국을 추월하려는 기술굴기를 시도 중임. 또한 일대일로 사업과 AIIB를 통한 개발도상국 지원 사업을 통해 미국을 상대로 소프트파워적인 측면에 있어 도덕적 우위와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 중임.
3. 러시아는 2008년 그로지야를 침공해 조지아 내 치러분리주의 세력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분리 독립 시키며 미국이 수립한 UN 중심의 전후 국제 질서(주권 존중, 외교와 UN 산하 기구를 통한 평화적 해법 강구, 자유주의 무역 등)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신냉전을 초래했음.(냉전: 미국 VS 소련 -> 신냉전: 미국 VS 러시아)
4. 우크러이나 내에서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정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축출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2014년에 크림 반도 강제 합병, 돈바스 지역(루한스크+도네츠크) 내 친러분리주의 세력의 독립 획책을 하며 돈바스 전쟁에 개입했음. 2011년 시리아에서 시리아 내전(2011-2024)이 시작된 이래로 시리아 내전에서 알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원했고, 아프리카에서는 와그너 그룹을 통해 군부 세력과 결탁해 쿠데타를 도와주고 그 대가로 자원 채굴권 등을 독점하여 막대한 이윤을 누렸으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그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는 북극 항로를 두고 북태평양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음.
5. 오바마의 주도로 이란 핵합의(JCPOA)가 성사되었음. 이란이 이를 잘 준수하다가 트럼프 1기 때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 선언하면서 오바마 시절 핵 개발 지연과 IAEA 사찰에 응하는 조건으로 완화해줬던 경제 제재를 복구시켜버리면서 합의를 위반함. 이후 이란도 핵 개발에 속도를 올림.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서 이를 다시 복원하려 했으나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며 난항을 겪었음. 이후에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2기가 들어섰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공습,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하에 실행된 ‘한밤중의 망치 작전(Operation Midnight’s Hammer)’로 미국이 이란 내 핵 시설 등을 타격하면서 합의 복원은 물 건너 간듯 했으나 끈질긴 협상 끝에 결국 이란이 IAEA의 사찰 활동 재개에 합의함. 세부적인 조건은 더 논의되어야 하는 상황임.
정답: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