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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Dec 09. 2023

그리스 신화 속 아름다운 노부부인 바우키스와 필레몬

우리의 노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리스 신화 속에는 주신인 제우스의 바람기와 더불어 막장 부부 사연이나 불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 최고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트로이 전쟁기(일리아스)’도 그 시작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의 불륜이니까요. 물론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이, 불륜이나 부부 간의 불화와는 거리가 먼, 서로를 매우 사랑하고 아끼는 부부들도 있긴 합니다.


그림.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인 [파리스와 헬레네]의 일부. 헬레네의 경우는 본인도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레다 왕비(원래 남편은 틴다레오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습니다.



오늘은 사이 좋은 부부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올림포스의 왕좌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다스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선량한지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들이 과연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에게도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해진 제우스는, 자신의 전령인 헤르메스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인간계로 내려갑니다.


프리기아(Φρυγία, Phrygia; 현재의 튀르키예 지역) 땅에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난 저녁 시간이었기에, 그들은 피곤에 지친 여행자의 모습으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하룻밤을 머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방문한 어떠한 집에서도 남루한 행색의 이방인을 환영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쫓아내기만 하였습니다. 


그림. 고대의 프리기아 지방을 표시한 지도(기원전 700년 경).



수많은 문전박대를 당하던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받아들여준 것은 동네 끝자락에 있던 작은 오막살이 집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허름하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그 집 안에는 누구보다 경건한 노파 바우키스와 그녀만큼 신실한 남편인 필레몬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비록 자식도 없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끼며 안분지족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큰 욕심도 없었기에 매우 온화하고 밝은 낯빛을 유지하고 있었고, 없는 살림에도 멀리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즐거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집안으로 안내하고, 낡았지만 귀한 손님이 올 때만 쓰는 해초를 넣어 만든 쿠션을 꺼내어 의자에 올린 후 자리에 앉도록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우키스가 부엌의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 잔불씨를 다시 키우고, 필레몬이 마른 장작을 잘라와서 넣었습니다.


부엌에 불이 들어오자 그들은 야채 스튜를 끓이고 집에 있던 베이컨, 달걀 등을 꺼내어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나무 그릇에 나그네들이 세수할 물을 준비해주었습니다.

바우키스는 약간은 느리고 떨리는 손으로 식탁을 꺼내 왔는데, 상다리 한 쪽이 짧아서 나무 조각으로 괴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향기 나는 풀로 식탁 위를 닦고 올리브 열매와 식초에 절인 딸기를 전채로 내놓았으며, 이후에는 소박하지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음식들을 차례대로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온 손님들을 위해 포도주도 꺼내어 대접하였습니다. 후식으로는 사과와 꿀이 나와 만찬의 마지막을 장식하였습니다.


이 정겨운 식탁의 모습도 좋았지만, 식사가 준비되는 내내 부부가 보여준 따뜻한 미소와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태도가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이 즐거운 저녁 식사 중에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는데, 그것은 바로 손님들이 아무리 술을 따라도 다시 술병이 차오르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노부부는 그들의 손님이 단순한 나그네가 아니라 천상에서 온 존재들인 것을 깨닫고 크게 놀라 절을 하며, 그들의 부족한 접대에 대해 사죄를 올리고 집에서 키우던 거위를 잡아서 요리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위는 날쌔게 움직이더니 제우스의 다리 사이로 가서 숨어버렸습니다.


그림.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폴 루벤스가 그려낸 신화 속 순간인 [필레몬과 바우키스(1630-1632)].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정체를 눈치 챈 바우키스가 집안의 거의 유일한 재산이자 파수꾼이라 할 수 있는, 한 마리 뿐인 거위를 잡아서 대접하려는 모습.



제우스는 노부부에게 거위를 해치지 말라고 하며, 당신 부부를 제외한 야박한 마을 주민들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바우키스와 필레몬에게 자신들을 따라나와 마을의 뒷산을 올라가자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노구를 이끌고 두 신들을 따라 산을 오른 후에 마을을 내려다보자 자신들이 살던 마을은 물에 잠겨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웃 주민들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자신들의 집이 있던 자리에 금빛으로 번쩍이는 웅장한 신전이 세워진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노부부에게 제우스는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며, 그들이 바라는 은총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그들이 사제가 되어 남은 생 동안 신전을 지키며 살다가 한날 한시에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제우스는 흔쾌히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었습니다. 두 부부는 남은 생을 신전을 관리하며 오래오래 사이 좋게 살다가 어느 날 몸에서 나뭇가지가 돋아나는 것을 느끼고 그들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두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사랑과 감사를 속삭이고 이별의 말을 나누었는데, 그 순간 나무껍질이 그들의 입을 덮었고, 결국 그들은 커다란 한 쌍의 나무가 되어 신전 옆을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림 – Arthur Rackham, 1922).



이 짧지만 포근한(물론 중간에 신벌로 인한 마을 주민 몰살이라는 무서운 부분도 있으나) 전설은 바우키스와 필레몬이라는 다정한 노부부에 대한 묘사 때문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분명히 신화를 바탕으로 한 교훈들(손님을 환대하자, 신을 공경하자 등등)이 들어간 고전적인 이야기지만, 신경과 의사인 저의 눈에는 노년을 건강히 보낼 방법과 노인들에게 필요한 생활 환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행동이 느리고 손이 떨리는 묘사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고령의 부부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매우 아끼고 사랑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든 식사 준비나 집안 관리를 스스로 하고 있고, 자신의 집에 방문한 여행자와 같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두려움보다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항상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로 낯선, 그리고 자신들보다 젊은(사실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인 신들이었지만, 겉모습만은 그들보다는 젊은 나그네들이었으니까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상대방까지 즐겁게 만드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노부부의 정신과 육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부부와 신들이 함께 한 식사 메뉴도 요즘에 각광을 받고 있는 지중해식 식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정갈하면서도 영양소가 풍부하고 균형 잡힌 식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지중해식 식사 준비를 위한 재료들. 야채, 과일, 곡물, 콩류와 견과류, 그리고 올리브유를 활용해서 만드는 요리들이 지중해식 식이와 비슷하겠습니다. 식사 준비 과정 중에 들어가는 운동(움직임)과 가족 혹은 이웃들과 즐기는 흥겨운 식사 분위기도 건강 유지에 한 몫을 한다고 여겨집니다. 출처-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제우스 신이 노부부에게 베푼 은총 역시, 판타지스럽기 보다는 굉장히 현실적인 노후 보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부부가 자신들에게 부귀영화나 불로불사를 원했더라도 제우스는 들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속으로는 역시 인간의 탐욕이란… 하면서 혀를 찼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생명체의 숙명인 노화와 죽음을 거스르기 보다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마지막까지 존엄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축복을 원했습니다. 이것은 진정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고, 노화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바우키스와 필레몬은 신의 축복이 담긴 아름다운 신전에서 사제라는 존경 받는 직책을 수행하며 여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들이 사라졌다는 점(그들이 다정한 이웃이었을 지는 의문이자만 말입니다)은 그들에게 조금 잔인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환경이 모두 갖춰진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깨끗하고 편안한 주거 환경, 사제라는 고대에는 가장 존경받는 직책을 수행하기에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존중 받으며, 게다가 주신의 신전에 바쳐지는 공물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반려’와 함께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지내다가 한날한시에 고통 없는 죽음(나무로 변신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죽음일 수 있기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화를 완전하게 억제하거나 죽음을 회피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탄생과 소년기 만큼이나 죽음과 노년기도 중요하기에, 좀 더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전설처럼 ‘요람에서 신전까지’의 축복이 모두에게 함께할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 봅니다.





<이야기 출처>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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