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없이 수술 받은 관우, 성격장애가 만들어낸 전설일까?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래간만에 삼국지 이야기를 또 하나 들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삼국지 속 최고 스타(?)인 관우에 대한 내용입니다.
*** 삼국지 관련 이야기는 정미현 작가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연의] 관우가 술을 몇 잔 마시고 나더니, 다시 마량과 바둑을 두며, 팔을 뻗어 화타에게 그곳을 절개하게 했다. 화타는 뾰족한 칼을 손에 든 채, 병졸에게 큰 주발을 받들고 팔 아래에서 피를 받게 했다.화타가 말하기를, “제가 곧 손을 쓸 테니 군후께서 놀라지 마십시오.” 하니, 관우가 말하기를, “그대에게 치료를 맡겼으니 어찌 세간의 속인들처럼 아픔을 두려워하겠소?” 했다.
화타가 이에 칼로 살갗과 살을 절개해 뼈에 이르자, 뼈 위가 이미 시퍼렇게 되었다. 화타가 칼로 뼈를 긁으니, 슥슥 소리가 났다. 장중의 상하 모든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낯빛을 잃었다. 그러나 관우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바둑을 두니, 그 와중에도 전혀 고통이 없는 기색이었다. 잠깐 사이에 피가 흘러 주발을 채웠다. 화타는 화살 독을 모조리 긁어내고 약을 바른 후 실로 꿰매었다.
[연의]에 나오는 관우의 일화입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고통을 유독 잘 참았던 에피소드가 올라올 때마다 전생에 관우였냐는 댓글이 달리곤 합니다. 그만큼 유명하다는 방증이겠지요.
이문열은 본인의 [평역 삼국지]에서, “꾸며 넣은 얘기는 아닌지”라며 의문을 표합니다. [정사]의 <화타전>이나 <관우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면서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해당 내용을 [연의]의 창작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다 떠나서, 허풍이 너무 심해 보이긴 합니다.
반은 맞습니다. 분명 <화타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관우가 팔을 다쳤을 때 화타는 이미 죽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반은 틀렸습니다. 관우가 팔을 다쳐 치료받았다는 내용은 <관우전>에 분명히 실려 있거든요.
[정사] 일찍이 관우는 화살에 맞아 왼팔을 관통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뒤 비록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늘 뼈가 아팠다. 의원이 말하길, “화살촉에 독이 있어 이 독이 뼈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팔을 갈라 상처를 내고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한 연후에나 이 통증이 없어질 것입니다.”
관우는 팔을 뻗어 의원에게 자신의 팔을 가르게 했다. 때마침 관우는 제장들을 청하여 음식을 함께 먹고 있었는데, 팔에서 피가 흘러 대야에 가득 찼으나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잔을 끌어당겨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했다. <관우전>
화타가 집도하지 않았을 뿐, 내용은 비슷합니다. 의원이 살을 갈라 뼈에서 독을 긁어내는 와중에도 태연자약하게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는 것입니다. 선천성 무통각증(선천성 무통각증 및 무한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실존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 아니라면 엄청난 정신력이겠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애초에 “비 오는 날 늘 뼈가 아팠”을 리가 없겠지만요.
관우의 부상을 현대 의학적으로 풀이자면 화살에 의해 발생한 ‘관통상(penetrating wound)’이며, 사서의 묘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화살이 뼈까지 건드릴 정도로 깊게 박혔던 것 같습니다.
사서의 언급에 따르면 관우가 맞았던 것은 단순한 화살이 아니라 화살촉에 독이 발라져 있던-독화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 중국에서 화살촉에 바르는 용도로 쓰는 독으로는, 투구꽃(Aconitum)에서 추출할 수 있는 아코니틴(Aconitine, 과거에는 ‘초오’라고 부름) 성분이나 우파스 나무(Upas tree, Antiaris toxicaria)에서 얻을 수 있는 안티아린(Antiarin)이라는 성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1). 물론 이러한 독을 구할 수 없을 때는 병사들의 분변을 사용하기도 했고요(X독?!?). 어쨌든 단순히 관통상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중독에 의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준비한 화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현대를 사는 의사의 관점에서, 관우는 독화살(독의 성분은 불명이지만)에 의한 관통상을 입고도 ‘독극물에 의한 급성 중독 증상 발현’, ‘관통상 부위의 감염(여러 가지 세균 감염… 파상풍이라든지)’, 그리고 ‘혈관 손상에 의한 과다출혈 발생’ 이라는 위험 상황을 다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대단하긴 합니다. 관우가 워낙 촉 진영에서 고위직이기 때문에 관통상을 입자마자 숙련된 군의에게 빨리 치료를 잘 받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대의 치료만으로 ‘흐리고 비오는 날에 통증을 느끼는’ 정도의 후유증 외에 별다른 문제없이 회복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흐리고 비오는 날에 통증을 느끼는’이라는 묘사를 기반으로 추측해보면, 관우의 증상은 감각 신경 손상에 의한 신경통(Neuropathic pain)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경성 통증은 기압 종종 기상 시스템의 변화와 관련된 기압의 급격한 변동에 영향을 받는데, 이러한 날씨 변화는 기압 변동을 초래하여 신경 염증을 유발하고 신경병증이 있는 환자에게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정말로 관우에게 이 정도 후유증상만 남았다면, 현대에는 신경통을 완화시키는 약제 처방 혹은 말초신경 차단(Peripheral nerve block) 등으로 증상을 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부상 후 신경통만 남은 것이 맞을까요?
관통상이 잘 회복되었고 신경통만 남았다면, 뼈를 긁어낼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의사가 관우의 증상을 듣고 ‘뼈를 긁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사실 상 관우의 상처가 만성 골수염(Chronic Osteomyelitis)으로 진행한 상태였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화살을 맞았을 때 화살촉이 팔의 뼈를 손상시킬 정도였으며, 독이 발라져 있었다면 상처 치료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군의(軍醫)가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를 했더라도 상처가 아주 말끔히 치료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상태로 지내다 보면 ‘만성 골수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죠.
사서의 기술에 따르면 ‘일찍이’ 다쳤으나 이후 치료받을 때까지 며칠이나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의 뉘앙스로는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성 골수염의 경우 뼈의 통증이나 전신적인 위약감, 발열, 발한 등의 증상이 있을 수도 있고, 보통 상처 부위에서 고름이 흐르고 뼈가 들여다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상의 묘사가 사서에 등장하진 않지만, 워낙 강골이고 군사 지도자의 역할을 맡고 있던 관우이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버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제대로 상처를 치료할만한 의사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그 사이의 상황 기술이 사서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요.
만약에 관우의 관통상이 만성골수염까지 진행했다면, 외과적 수술을 통해 ‘죽은 조직 제거술(debridement)’을 시행 받아야 상처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골수염의 증상이 심각하고 조직의 손상 범위가 크다면, 뼈와 근육, 피부 이식술까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술을 시행할 때는 보통 전신 마취(general anesthesia)가 필요하며, 상처의 범위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부위 마취(regional anesthesia)만으로 진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현대의 의사들은 마취 없이 환자에게 수술을 시행하지는 않습니다.
마취가 없다면 환자가 통증에 의해 움직일 수도 있고, 통증 자체로 인한 쇼크에 빠지거나, 수술 상황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수술을 하는 의사에게도 큰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어 수술 결과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웅 중의 영웅인 관우는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정사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수술을 마취 없이 진행했던 것이 맞을까요?
정사에서 관우를 치료한 의사는 ‘화타’가 아닙니다. 그래도 상당히 실력이 좋은 의사였는지 수술 후 관우의 팔에 문제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화타처럼 외과적 치료를 잘 하는 의사였을 수도 있고, 시기 상으로 보자면 화타의 제자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화타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의사였다면 ‘화타’가 사용했던 마취 및 수술 기술을 비슷하게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기에 화타가 사용한 마비산(麻沸散, 아편을 포함한 약제일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처방전이 전해지지 않음)과 같은 마취제 라든가 침술을 이용한 국소 마취법을 활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인(게다가 나름 큰 군벌 세력의 고위 장수인) 관우가 자신은 마취 없이 하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면, 의사의 입장에서 억지로 전신마취를 시키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현대 기준으로는 유래 없는 진상 환자…). 정말로 관우가 놀라운 정신력으로 수술의 통증을 이겨낸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관우가 마시는 술에 약간의 진통/진정 성분을 섞거나, 현대의학으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침술을 활용한 마취(혹은 통증 완화?) 하에 ‘죽은 조직 제거술’을 시행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술 중에 관우는 술과 음식을 먹었다고도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경악스러운 부분이긴 합니다. 제가 관우를 만난 의사였다면 ‘수술하는데 술 마시지마!!!’라고 외치고 목이 베이는 것은 아니었을까란 상상도 하게 됩니다.
알코올 섭취는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면역 기능을 저하시켜 상처 회복을 더디게 만들기 때문에(2),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 전후 금주는 필수 사항입니다.
마취도 거부하고, 술도 마시는 관우… 외과 의사에게는 정말 재앙과 같은 환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편으로는 수술 부위의 통증 조절 여부를 떠나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뼈를 긁어내는 수술 과정을 인지하고 견디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관우가 살았던 시대는 외과 수술이 흔하던 시기도 아니었으니까요. 대체 이만한 정신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저 강한 정신력인 것인지(순교자나 독립운동가들처럼), 통각이 저하된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치료하던 의사가 몰래 마취 기능이 있는 약제를 사용한 것인지는 현재로는 정확하게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서 속의 관우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다 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상상을 이끌어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관우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말이죠.
성격장애(혹은 인격장애, Personality Disorder)는 사회적으로 수용이 어려운 행동과 인식, 내적 상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 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질환입니다. 성격장애가 나타나는 것에는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소인이 모두 영향을 줄 것이라 추측되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이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성격장애는 그 특성에 따라 크게 3가지 타입(A군/B군/C군)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B군에 속합니다.
B군에 속하는 성격장애는 대체적으로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으로 과잉 반응하며,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향성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며, 자기애성 외에 경계성(Borderline), 히스테리성(Histrionic), 그리고 반사회성(antisocial) 성격장애가 있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거창한 감각을 갖고 있지만 비판에는 극도로 민감합니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 거의 없을 수 있으며, 자신의 내면보다 외모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오만함, 과대망상, 존경에 대한 욕구, 타인을 착취하려는 경향이 이 성격장애의 특징입니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과도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타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미국 데이터 기준으로, 유병률은 0~6.2% 정도로 추정되며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진단 받은 케이스의 50~75%가 남성이라고 합니다(3,4).
관우에 대한 사서 속 묘사를 살펴보기 전,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진단기준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 DSM-5>
지나치게 과장된 자신감, 칭찬에 대한 욕구, 그리고 공감능력의 결여와 같은 광범위한 양상이 초기 성인기에 시작되어 다양한 상황에서 다음 중 5개 이상의 항목으로 나타난다.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자신감이 있음 (예: 자신의 성취나 재능을 과장함, 뒷받침될 만한 성취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뛰어남을 인정받고자 함)
2. 끝없는 성공, 권력, 탁월성,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공상에 빠진다.
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해서 다른 특별하거나 상류층인 사람 또는 기관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거나, 그런 사람들과만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다.
4. 과도한 찬사를 요구한다.
5. 특권의식 즉, 대우를 받을 것에 대한 불합리한 기대감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특별한 대우나 복종을 바라는 불합리한 기대감을 가진다.
6. 대인관계가 착취적이다. 즉,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한다.
7.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즉 타인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정하거나 자신의 감정 또는 욕구와 같은 선상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8. 종종 타인들을 시기하거나 타인들이 자신을 시기하고 있다고 믿는다.
9.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다.
이와 같은 진단 기준을 참고로 하여 사서 속에서 엿보이는 관우의 성격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사] 평한다. 관우, 장비는 모두 일만 명을 상대할 만하며, 그 시대의 용맹한 신하이다. […] 그러나 관우는 굳세고 교만했으며, 장비는 포학하고 은혜롭지 않아 결국 자신의 단점으로써 패망하게 되었으니 이치상 당연한 것이로다. <관장마황조전>
진수는 관우가 굳세고 교만했다고 평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단순히 교만이라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키워드로서는 적합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특성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일화를 보겠습니다.
(1) 마초가 투항해 왔을 때입니다. 관우가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마초의 인품과 재능이 누구와 비교할 만한지 물었답니다.
4. 과도한 찬사를 요구한다.
5. 특권의식 즉, 대우를 받을 것에 대한 불합리한 기대감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특별한 대우나 복종을 바라는 불합리한 기대감을 가진다.
제갈량은 “우위를 지키려는 관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마초는 장비랑 선두를 다툴 만큼 뛰어난 사람인데, 미염(美髥)공 당신만큼은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관우의 턱수염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미염공이라 부른 것이죠.
물론 질문 자체는 “마초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우월감이 수동적으로 드러나 있었죠. 이를 알아챈 제갈량은 곧바로 관우 달래기에 들어갔습니다. 외모마저 추켜세워요.
제갈량은 유비 진영의 명실상부 2인자였습니다. 유비가 정벌을 떠날 때마다 본진에 남아 유비의 일을 대신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지요. 그런 제갈량마저 관우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원하는 답을 들은 관우는 무척이나 흡족해 합니다. 관우는 편지를 받고는 매우 기뻐하며 주위의 빈객들에게 보여주었답니다.
è 물론 이런 일화에 대해 ‘찬사와 특별 대우를 받은 것뿐’이지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관우의 성격에 대해 익히 알았을 제갈량이 관우를 추켜세우는 방법을 선택한 것을 보아, 평소에도 관우는 자신을 우대해주는 것을 기대하거나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여기저기 자랑할 정도로 좋아했고요.
(2) 이렇게 우쭈쭈 당하던 삶에 익숙해져서였는지, 황충과 비슷한 급으로 묶이자 난리를 칩니다.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자신감이 있음 (예: 자신의 성취나 재능을 과장함, 뒷받침될 만한 성취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뛰어남을 인정받고자 함)
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해서 다른 특별하거나 상류층인 사람 또는 기관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거나, 그런 사람들과만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다.
9.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인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무렵입니다. 유비가 관우를 전장군으로, 황충을 후장군으로 임명하자, 제갈량이 우려를 표합니다. 마초와 장비는 황충의 공로를 직접 보았으니 괜찮겠지만, 멀리 있던 관우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면 서요. 왜? 전장군 관우와 같은 반열이니까.
전장군과 후장군은 모두 사방장군의 일부입니다. 사방장군은 전장군, 좌장군, 우장군, 후장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형식적으로는 동등한 직위라지만 일반적으로는 전장군이나 좌장군이 후장군보다 더 높았습니다. 후한 말에는 전장군이 좌장군보다도 높았고요. 후장군은 언제나 가장 낮은 지위였습니다.
그러니 같은 사방장군이라고는 해도, 전장군인 관우는 그 중에서 가장 높았고, 후장군인 황충은 그 중에서 가장 낮았어요.
그런데도 제갈량이 예측한 대로, 관우는 분노합니다. “대장부는 평생 노병(老兵)과 같은 대열에 있지 않는다!” 라면서, 관직조차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에 사자였던 비시가 관우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다행스레 관우도 비시의 설득에 넘어가 전장군직을 수행하기로 하죠. [정사] <비시전>의 주 내용이 바로 여기서 관우를 설득한 데 있습니다. 그 정도로 어려운 임무였나 봅니다.
놀랍지 않나요? 유비와 관우의 사이가 아무리 돈독하다고는 하나, 주군의 임용에 딴지를 걸 수 있다니요. 황충을 우습게 여겼다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주군인 유비조차 자신의 감정에 신경을 써주리라 믿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우가 비록 뛰어난 장수이자 한중왕의 의형제라 하더라도, 이 정도의 우대를 요구하는 것은 과한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어쨌든 명목 상의 상사인 유비와 제갈량에게까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사실 유비에게 딴지를 건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7.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즉 타인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정하거나 자신의 감정 또는 욕구와 같은 선상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유표 사후, 조조가 형주를 평정했을 때의 일입니다. 유비와 관우, 장비는 조조의 예기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죠. [촉기]에 따르면, 관우가 이때 유비에게 화를 냈답니다. “지난날 사냥 중에 제 말을 따랐으면 오늘날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면서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유비가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을 당시 함께 사냥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관우가 이때 유비에게 조조를 몰래 죽이자고 했는데, 유비가 이를 거절했어요. 사실 당장 조조를 죽인다면 조조의 부하들이 유비를 가만히 두었을까요?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우가 이 이야기를 무려 9년이 지난 후, 도망치면서 꺼냅니다. 그것도 자신의 주군에게 화를 내면서요.
아마 자신이 도망치고 있다는, 그야말로 자존심 상하는 상황을 부정하고자 한 말이 아닐까요? 내 말대로 했으면 난 이런 꼴이 되지 않았을 텐데, 하고요.
이미 형주를 잃고 도망치는 상황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유비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모습은 관우의 공감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보이는 예시라고 생각됩니다.
(4) 주군뿐만이 아닙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기 두 해 전입니다. 오의 군주 손권이 사자를 보내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키자 제안하죠.
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해서 다른 특별하거나 상류층인 사람 또는 기관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거나, 그런 사람들과만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다.
7.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즉 타인의 감정이나 욕구를 인정하거나 자신의 감정 또는 욕구와 같은 선상에서 보려 하지 않는다.
[연의]에서 관우는 “범의 딸을 어찌 개자식(...)과 혼인시키겠느냐”라며 사자후를 내뿜습니다. 물론 이는 [연의]의 대사로, [정사]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자를 모욕하며 혼인을 허락치 않으니 손권이 대노했다”는 구절만은 [정사]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기준으로 생각해도 혼사를 제안하는 상대에게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엄청난 실례입니다. 그런데 지금보다도 지위고하가 분명했던 과거, 상대 측 군주의 자녀를 그 부하의 앞에서 저렇게 모독하는 것은 경솔하기 그지 없을 뿐더러(공감 능력 결여),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고 있기에(자신과 자신의 자식은 손권 정도와 얽히기엔 너무 잘났다!!!) 나온 태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얼핏 들으면 호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외교 관계를 엉망으로 만드는 결과를 일으켰으니 관우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유비와 손권의 사이가 나쁜 상태긴 했습니다. 익양 대치와 손부인 등의 일이 겹쳐 있었거든요. 그래도 “주군께 여쭤보아야 한다” 식으로 거절할 수도 있었겠지요? 어떻게 되었든 한 세력의 수장인데요. 그런데도 관우는 사자를 모욕합니다.
[전략]에 의하면 손권 무시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관우가 번성을 포위했을 때, 오와 촉은 속마음은 어땠든 간에 겉으로는 동맹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이에 따라 손권은 관우를 도와 위를 함께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죠.
손권은 망설였습니다. 촉이 번성을 함락하고 나면 오는 촉과 대적하기 어려워질 텐데, 이래도 좋을까? 싶었겠지요. 물론 관우에 대한 개인적인 불호도 한몫 했을테고요.
동시에 바로 그 관우를 상대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었겠습니다. 어쨌든 당시의 관우는, 웹툰 [삼국전투기]의 저자 최훈의 말대로 “전국구 스타”였으니까요.
그래서 손권은 군을 지체 시킵니다.
관우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았을 거예요. 어쨌든 관우는 이미 구원군으로 온 우금을 붙잡은 상태였거든요. 번성은 상태가 엉망이었고요. 오가 가만히 있어만 준다면, 관우는 홀로 번성을 공략하면 되었지요.
그런데 관우는 오의 사자에게 욕을 내뱉습니다. “오소리 새끼가 감히 이렇게 나오는구나. 번성이 함락되고 나면 내가 네놈들을 멸하지 못하겠느냐!”(급발진?!?)
오소리 새끼는 손권을 칭하는 말이었죠. 이런 모욕을 듣고 참을 사내가 몇이나 되겠어요. 그것도 한 세력의 수장인데요. 손권은 이를 듣고 관우가 자신을 업신여기는구나 해서, 거짓으로 관우를 안심시킵니다.
그러면서도 손권은 미방과 사인에게 손을 뻗습니다. [정사]에 따르면, 미방과 사인은 관우가 자신을 업신여기는 데 원한을 품었다고 하지요. 여기에 미방과 사인이 군수 물자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자, 관우가 “돌아가면 응당 죄를 다스릴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고 해요.
미방에게도 사정은 있었습니다. 남군에 불이 나 군수 물자를 많이 잃었거든요. 더군다나 관우가 우금과 그 3만 병사를 생포하면서, 책임져야 하는 입이 두 배로 늘어나 있었죠.
하지만 주군이나 동맹 세력의 수장에게도 화를 내던 관우였으니, 미방과 사인쯤 에게 참았을 리가 없습니다.
미방은 촉의 개국공신 중 하나였습니다. 조조의 예우에도 유비를 따라나설 정도의 충신이기도 했고요. 미축과 미방 형제는 유비 최대의 후원자기도 했습니다. 미방의 누이는 유비의 부인이었고요. 그러니 유비의 근거지였던 남군을 맡게 되었고요.
그랬던 미방을 손권이 꼬드깁니다. 평소라면 말도 안 되었겠죠. 관우의 업신여김과 분노로 인한 나쁜 관계를, (동맹의 탈을 쓴) 적조차 이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미방을 낮게 보고, 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관우의 성격적인 문제가 화를 불러들인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사서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진단기준 중 6가지 정도의 항목이 관우의 성격과 어느 정도 맞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서양 문명권에서 휴브리스(Hubris, 그리스어 Hybris에서 유래, 무례함을 의인화한 여신) 즉 오만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아라크네는 신과 경쟁을 벌였다가 (무승부 혹은 승리를 거뒀음에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요, 가족과 혈통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졌던 니오베는 레토를 모욕했다가 도합 열네 명의 자녀를 모두 잃고 말지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교에서 겸손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유학의 창시자 공자가 가장 사랑하던 제자 안연에게 배움의 목표를 물었을 때입니다. 안연은 “무벌선무시로(無伐善無施勞)”, 즉 “능력 있음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 있음을 뽐내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답니다. 공자는 훗날 안연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알았다고 했으니, 이 ‘무벌선무시로’야 말로 유학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관우의 오만은 죽음의 복선이나 다름없었겠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요. 미방과 사인의 배신으로 갈 데 없이 쫓기고 쫓기던 관우는 결국 손권에게 사로잡혀 죽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중국인은 관우를 숭배했습니다. 처음에는 형주의 지역신 혹은 불교의 보살 정도였는데요, 추후에는 재물신으로까지 추앙받습니다. 송에서는 아예 국가의 수호신이 되지요. 원에서는 군신(軍神)이 되고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판본인 [가정본]에서 관우는 손권에게 죽는 대신, 싸우다 말고 하늘로 승천합니다. 그러니까, 소설에서부터 이미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오만한 사람을 왜 그리도 좋아했을까요? 이문열은 본인의 [평역 삼국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 (...) 관공의 끝 모르는 자부심도 관공의 삶과 인격에 민중적인 매력을 더해주었음에 분명하다. 벌거숭이 힘의 지배를 받는 난세일수록 자부심 같은 고급한 정신의 사치는 지켜내기 어렵다. 그때그때 강자를 만날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민중들에게는 관공의 그 터무니없는 자부심이 차라리 시원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니, 조조와 손권 같은 인물들에게까지 “쥐새끼 같은 무리들!”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 관공의 그 끝 모를 자부심은 그대로 아름다움이요 신비이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사서의 내용들만 가지고 관우를 [성격장애]로 진단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격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정보 및 관우와 정신의학과 전문의 간의 상담이 필요하겠지만, 더 자세한 관우의 일상 모습을 알아내거나 전문의와 만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그러므로 성격장애 진단에 대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재밌는 가설의 하나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에 관우가 진정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면, 자신이 사후에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1. N G Bisset, Arrow poisons in China. Part I, J Ethnopharmacol. 1979 Dec;1(4):325-84.
2. M. Katherine Jung, et al., Alcohol Exposure and Mechanisms of Tissue Injury and Repair. Alcohol Clin Exp Res. Author manuscript; available in PMC 2012 Mar 1.
3.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rlington, VA.
4.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rlington,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