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출신 감독이 신나게 만든 포스트 아포칼립스 액션로드무비 (1)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의료계의 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시기지만, 이마저도 쓰지 않는다면 제 스스로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또 하나의 글을 올려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에 대한 첫 번째 글입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 “저런 영화 속 세상에 들어가보고 싶다!”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무 재밌기는 한데, 절대 저 영화 속 같은 세상에는 가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습니다.
후자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자, 어쨌든 영화관에서 감상할 가치가 넘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매드맥스] 시리즈 입니다.
[매드맥스]는 우리가 살던 세상이 핵전쟁(3차 대전?)으로 추측되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멸망해버려, 황폐해진 대지 위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광활한 사막의 풍경, 그 위를 질주하는 바이크와 대형 트럭들(을 비롯한 다양한 개조 차량), 데스메탈 밴드 멤버들을 연상시킬 만큼 강렬한 스타일의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화끈하면서도 잔혹한 액션들이 조화를 이루어, 영화를 보는 사람을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합니다.
특히 기존 시리즈인 매드맥스 1~3편 이후 30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년)]와 이번에 개봉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2024)]는 액션과 스토리 모두 이전 작품 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사가(SAGA-북유럽의 중세 장편 소설 형식의 문학)’라는 제목 답게 비장한 영웅 신화적인 면모가 강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감독인 ‘조지 밀러’가 정형외과 의사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조지 밀러는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살려 ‘로렌조 오일(아들이 걸린 부신 대뇌백질 위축증이라는 희귀 질환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이야기)’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매드맥스’를 통해서는 액션 영화 감독으로서도 거장의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매드맥스]라는 작품의 특성 상, 조지 밀러 감독이 지닌 의사로서의 특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영화를 감상하는 제가 의사여서인지는 몰라도 매드맥스라는 작품 속에서도 ‘의사가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묻어나는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2015년과 2024년 작품들을 중심으로, 의사 출신 감독이 만들었기에 나타날 수 있는 특성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1. 매드맥스사가의 마스코트(?)인 워보이(warboy)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저에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주인공인 맥스나 퓨리오사보다는 ‘기억해줘(영어 대사로는 Witness me)!’를 외치는 워보이 출신의 ‘녹스’가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녹스는 다른 워보이들처럼 전신을 하얗게 칠하고 입에는 크롬 스프레이를 뿌려 가며, 임모탄을 위해서 싸우다 명예롭게 죽는 것에 집착하는 광신도에서, 자유의지에 따라 친구들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인간으로 진화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게다가 의사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싶은 ‘질환’을 지닌 환자이기도 합니다.
매드맥스의 배경이 핵전쟁 이후에 문명이 무너지고 환경이 오염된 세계인만큼, 망가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그닥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 영화 내내 묘사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여 영양 상태가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부터, 방사능 피폭이 의심되는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질병과 부상으로 신체가 망가진 사람들까지… 주조연부터 엑스트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인물들이 다양한 종류의 건강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예외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등장인물이라고는 주인공인 맥스, 어린 시절의 퓨리오사, 그리고 임모탄의 하렘에 살고 있는 ‘신부’들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은 ‘Full-life(온전한 생명)’, 질병이 있는 사람들은 ‘Half-life(절반의 생명)’이라는 식으로 구분해서 불리며, ‘Full-life’들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을 기준으로는, 건강한 여성이라면 임모탄의 자식을 낳아줄 신부로서, 그리고 건강한 남성이라면 ‘Half-life’이자 병사인 워보이들을 위한 ‘피주머니’로서 활용됩니다. 그리고 디멘투스가 지배하는 무리에서는 건강한 사람의 피를 이용해 ‘소시지’를 만들어 먹기도 하죠(단백질과 철분, 비타민의 공급원…).
<분노의 도로>의 극초반, 시타델에 잡혀간 맥스는 ‘생체기술자’라는 의사 비슷한 인물에게 이런 저런 검사를 받더니 ‘Full-life’로 분류되고, 빈혈 증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워보이들에게 혈액을 공급해줄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이 때 깨알 같이 맥스의 혈액형이 ‘Rh- O형’이라고 언급되는데, 이 혈액의 경우 A, B, Rh 항원이 모두 존재하지 않기에 어떠한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수혈이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아주 귀한 ‘혈액 공급원’이 되는 것이죠.
워보이들은 얼핏 보면 나름 건장한 청년들처럼 보이지만, 빈혈이 있다는 묘사나 피부에도 종양 덩어리나 여러가지 병변이 관찰되는 것을 볼 때 확실히 기저 질환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워낙 방사능에 오염된 황폐한 세계이기에 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순히 부모세대의 피폭에 의한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보기엔 다들 상태가 비슷해서 조금 다른 원인으로 인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임모탄을 위한 병사로서 시타델 안으로 끌려와(혹은 좀 더 잘 먹고 살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들이 들여보낸 것일 수도 있고요), 계속 임모탄을 위해 거대한 전투용 트럭이나 차량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에 동원되다 보니 그 때 사용하게 되는 폐유나 폐윤활유 등과 같은 발암 물질과 많이 접촉해서 백혈병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황폐해진 세계에서는 양질의 석유나 윤활유를 얻기 힘들 것이고 결국 한 번 사용했던 기름을 재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폐유에 들어있는 발암 물질인 벤젠 화합물과 계속 접촉을 하다 보면 골수에 이상이 생겨 백혈병의 발병 위험성이 높아지게 됩니다(1). 백혈병의 증상 중 하나는 당연히 ‘빈혈’이기에 워보이들은 창백해보일 것이고, 그 창백함을 감추고 신비하고 강한 전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 희게 온 몸을 칠하고 지내게 만든 것으로 생각됩니다.
워보이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임모탄과 V8 엔진을 위해 계속 더러운 기름을 이용한 차량 정비 작업을 계속하다가 백혈병에 걸리게 되고, 그 상태로도 전투력을 유지하게 위해 인간 피피주머니부터 수혈을 받아가며 견디다가 임모탄을 위해 전투에서 산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유럽 신화 속에 ‘발할라’로 간 전사들이 오딘이 베푸는 식사와 술을 먹고 마시며 그들끼리 전투놀이를 하다가 라그나로크가 되면 오딘의 적들과 싸우다가 사라지듯이 말이죠.
녹스는 저러한 세뇌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일행과의 모험 속에서 스스로 께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찾고 독재자 임모탄이 아닌, 진정한 동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됩니다. 워보이들이 믿는 발할라가 실재한다면, 아마도 녹스만이 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녹스를 비롯한 워보이들이 입주위에 뿌려대는 크롬 스프레이 역시 폐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인 크롬을 함유하고 있습니다(도금에 사용되는 6가크롬이 발암물질로 잘 알려져 있어서 요즘에는 3가크롬 사용을 권장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워보이들의 건강 상태는 더 나빠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2. 임모탄 조의 기형아 출산 문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최종 보스이자 시타델의 지배자인 임모탄은 비록 흉흉한 외모를 하고 등장하지만, 단순한 폭군이라기보다는 지적이며 종교적인 광신을 이용하여 독재 체제를 유지시키는 영리함을 지닌 인물입니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과 물을 공급하여 의존성을 키우는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구시대적인 지식들을 바탕으로 V8 엔진을 숭배하고 용맹하게 싸우다 죽으면 발할라(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전사들의 낙원)라는 영광스러운 사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이비 종교스러운 시스템을 정착시켜 놓습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워보이들이 임모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그를 위해 서슴 없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사가>에 등장하는 메인 빌런 디멘투스가 파괴에 취한 폭군이라면 임모탄은 영리한 독재자인 셈이죠.
임모탄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독재왕국(이라기엔 규모는 매우 작지만)을 유지시키고 싶어하고 자신의 후계자에게 계승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로마 제국처럼 탄탄하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체제로 만들고 싶은 욕망은, 그가 로마 황제들처럼 자신을 신성화하기 위해 쏟는 노력들과 그가 부하들에게 붙이는 과대망상적인 직책명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퓨리오사에겐 임페라토르(로마 공화정 시기에는 최고 사령관을 이르는 표현이었으나 제국 시대에는 ‘황제’를 이르는 표현이 됨)라는 직위를 내렸고, 잭이라는 등장 인물(퓨리오사의 스승 겸 전우로 등장하는)에게는 로마 황제 근위대를 의미하는 프라이토리아니(Praetoriani)에서 유래한 영단어인 ‘프레토리언’이라는 직위를 맡김으로서 자신을 로마 황제와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을 신성한 황제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임모탄의 자식 역시 완벽하게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그의 왕국을 이어받아 계속 번창시킬 수 있는, 몸과 정신이 모두 멀쩡한 아들을 얻고 싶어했죠. 그러나 그의 아이들은 다들 지적 능력, 성격, 신체 등의 면에서 꼭 하나씩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태어났으며, 태어나자 마자 죽어버리거나 심각한 기형으로 외부에 보일 수도 없는 아이들도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나마 외부에 내보이고 있는 그의 아들은 세 명으로, 각자의 라틴어 이름(영어 의학 용어의 기원이 되는 라틴어로 지었기에 각자의 이름은 병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에서 그들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인 ‘코르푸스 콜로서스(Corpus Colossus, 거대한 몸)’ 이름이 반어법처럼 사용되어 몸은 거의 자라지 않았으나 지적 능력은 비교적 정상적인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둘째인 ‘스카브로스 스크로투스(Scabrous Scrotus)’는 ‘상처투성이 고환(…)’이라는 의미이며 그의 외모와 포악한 성격, 그리고 성적인 기능 이상을 반영한 이름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막내이며 가장 건장한 외모를 가진 ‘릭투스 에렉투스(Rictus Erectus)’는 ‘웃음 + 꼿꼿이 서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 실없이 웃는 멍청함을 지닌 동시에 성욕이 있으며, 신체가 건장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세 아들 모두 모자란 면이 있고, 영화 <퓨리오사> 속에서 갓 출산된 아이도 ‘샴쌍동이’ 같은 상태로 묘사되고 결국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한 산모이자 임모탄의 부인 중 한 명은 그 하렘에서 쫓겨납니다.
임모탄은 정상적인 아들을 얻고 싶은 욕망을 포기할 수 없으나, 아이들이 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그의 ‘신성함’에 문제가 생기기에, 아이들의 기형을 모두 자신의 부인이 되는 여성들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세 번 이상 기형아를 출산한 여성은 그의 하렘에서 내쫓아 모유만을 생산하는 가축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모습은 아들을 얻겠다고 수차례의 이혼 및 왕비 처형을 일으켰던 영국의 왕 헨리 8세와 비슷합니다.
영화에서는 이 계속적인 기형아 탄생의 원인에 대해 명확하게 묘사하진 않지만, 어쨌든 부인들이 모두 건강한 여성들이란 표현이 계속 강조되기에 결국은 임모탄이 아이들이 가진 선천 기형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임모탄이나 여성들이 핵전쟁 이후에 피폭이 되었다고 해서 아이들이 계속 기형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임모탄의 아이들이 핵전쟁 당시에 태어난 것이라고 해도, 산모가 100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선을 직접 받은 게 아닌 이상 기형아로 태어날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영화의 설정 상, 첫째인 코르푸스 콜로서스 외에는 핵전쟁 이후에 임신한 부인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하는데, 1945년에 일어났던 히로시마 원폭의 경우에도 그 당시 피폭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에게 기형, 사산, 저체중 등의 영향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볼 때 핵전쟁의 여파로 계속 기형아들이 태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2).
히로시마 원폭으로부터 30년 정도 후에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의 경우에도 사고 발생 후 수주 이내에 피폭으로 사망한 30명을 제외하고는 저농도의 피폭을 당한 사람들의 피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습니다. 2021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원전 사고 당시 청소 작업자 등으로 근무하며 방사능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아이들 중, 1987~2002년의 기간 동안 태어난 130명의 아이들의 유전자 검사(Whole genome sequencing)를 시행했으나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3).
물론 히로시마 원폭 및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경우, 두 사건 모두 국한된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특히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경우에는 발전소 주변 수십 킬로미터 지역을 완전히 비워놓을 수 있었다는 점도 있어, 전세계적인 멸망을 일으킨 핵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매드맥스 세계의 모습을 완벽히 설명할 순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샴쌍동이의 탄생 역시 자궁 내 수정란 분열 시의 문제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피폭에 의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계속되는 선천 기형 아이들의 탄생은,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의해 전세계가 오염되는 극한 상황에 대한 상상일 수도 있습니다(핵전쟁에 대한 일종의 경고). 또한, 임모탄이 얼마나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며(그가 바라는 신성함과 거리가 먼), 헛된 욕망으로 가득 찬 악당인지 보여주기 위해 등장하는 영화적 장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문헌>
1. Luca Falzone, et al., Occupational exposure to carcinogens: Benzene, pesticides and fibers. Mol Med Rep. 2016 Nov; 14(5): 4467–4474.
2. J. V. NEEL, et al., The Effect of Exposure to the Atomic Bombs on Pregnancy Termination in Hiroshima and Nagasaki: Preliminary Report. SCIENCE 6 Nov 1953. Vol 118, Issue 3071. pp. 537-541
3. Meredith Yeager et al., Lack of transgenerational effects of ionizing radiation exposure from the Chernobyl accident. Science. 2021 May 14;372(6543):725-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