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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속의 두통

천의 얼굴을 지닌 남자, 조조의 두통

by Iatros


오늘도 정미현 작가님과 함께 '삼국지 속 의학' 이야기를 다뤄보았습니다.


<역적. 간신. 능신. 영웅. 간웅.>


위 다섯 개의 단어를 보고 떠올리는 인물을 말해봅니다. 아마 대부분 같은 인물을 떠올렸겠지요. 오늘 에피소드의 주인공, 조조입니다.


우리는 모두 조조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만큼 조조는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인물이거든요.


처음부터 이런 입체성이 부각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정통성을 지닌 위의 초대 군주였기 때문에, 당대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 같은 고평가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적국 촉의 재상이었던 제갈량조차 후출사표에서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 그 용병술은 손자와 오자를 닮았다”, “선제께서는 조조를 항상 뛰어난 인물이라고 칭찬하셨다”라 말했을 정도였으니, 그 능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겠지요. 현대로 치면 이른바 육각형 능력자라고나 할까요? 고르게 뛰어나지만 조금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스타일의 엄친아인 셈이죠.


안타깝게도 조조의 경우에는 능력과 인기가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조 중심의 삼국지 창작물 [창천항로]에서, 손책은 조조가 “백만 인간이 백세에 이를 만큼의 원한을 안주 삼아 천하라는 술잔을 들이키려 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백만 인간이 백세에 이를 만큼의 원한”이라니, 무시무시한 표현이지요. 그런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조조는 오랜 세월 동안 미움을 받아 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는 더욱 심해져, 능력은 배제된 채 원한만이 강조되었습니다.


[삼국지평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만담가의 화본으로, [연의]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담 형태의 설화다 보니, 아무래도 청중인 민중의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삼국지평화]에서, 조조는 비열하고 잔혹한 소인배로 등장합니다. 그저 단순한 악인이었지요. 오죽하면 경극에서 조조 역할을 했던 배우가 분노한 군중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있었겠어요.


삼국지평화.png

그림.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삼국지평화 판본(원나라 지치(至治, 1321~1323) 연간-고려는 충숙왕의 재위 기간에 해당-의 복건성 건안 간행본)인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본문. 출처: 나무위키



그렇게 평면적인 악당이었던 조조에게 입체성을,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연의]의 저자, 나관중입니다.


더없이 냉정한가 싶으면 감정적이기도 하고, 너무나 잔혹한가 싶으면 관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능력과 날카로운 카리스마만큼은 한결같으니, 전기의 최종 보스 역할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합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


문맹률이 낮아져 복잡한 서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계급간 이동이 자유로워진 현대에 이르러서야 각광 받은 유형입니다. 조조의 인기도 실제로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치솟았습니다. 냉철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인간적인 만능형 리더라면서요.


그러나 2010년대, 나아가 2020년대 들어선 후에는 서주대효도 운동(서주대학살에 대한 인터넷 상의 밈입니다... 가장 잔혹한 형태의 효도였죠--;) 등 조조의 악행과 성격적 결함이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냉철한 지도자는 오히려 원소 쪽이었고, 조조는 감정적이며 다혈질적으로 군 적도 많다고요.


이런 점에서조차 여전히 입체적입니다. 음흉하기까지 할 정도로 조심성 있던, 동시에 관대하면서도 권모술수에 능했던 전략가인데, 가끔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소탈하고 충동적이며 잔혹하게 구니까요. 입체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조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정치가였으면서도, 동시에 ‘정치를 배제하고 봐도 충분히 위인’이라는 평가를 들은 예술가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주가 예술에 흥미를 보이면 그 결과가 영 좋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송의 휘종은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그 때문에 몰락했습니다.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 역시 예술과 건축에 푹 빠져 정치를 등한시했다가 강제로 퇴위 되었습니다(예술을 포기(?)하고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보다는 나은 걸까요?).


휘종의 그림들.png

그림. 휘종이 그린 도구도(桃鳩圖-복숭아 꽃과 녹색비둘기를 그린 그림) (좌)와 루트비히 2세가 건설한 노이반슈타인성(디즈니 영화 오프닝 로고에 항상 등장하는 성의 원형이기도 합니다)의 모습(우).



물론 예술이 적성에 맞지 않아 ‘적절히’ 흥미를 보이는 데서 그치면 괜찮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나 정조 등, 예술에 후원은 하되, 본인이 예술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는 않는 식으로요.


그런 점에서 조조는 색다릅니다.


통일을 이룩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난세를 바로잡고 중앙정부의 권력과 권한을 되찾았습니다. 어쨌든 조조가 세운 위는 진으로 이어져 삼국을 통일했고요. 물론 여러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실책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군주로서의 자질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한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자질도 뛰어나, 그쪽 방면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선 문학이 그렇습니다. 조조와 조비, 조식 삼부자는 ‘건안 문학(조비 편을 참고해주세요!)’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주도하며 중국 문학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기존의 시는 장황하고 과장된 표현을 이용해 국가 중심의 위엄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조조는 직설적이고 간결한 표현을 이용해 개인적인 감정과 현실의 고통을 전달했습니다. 아무래도 난세의 백성에게는 그런 내용이 훨씬 더 잘 와닿았기 때문에, 문학의 대중화를 이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셈이지요. 조조의 대표작으로는 <호리행>, <보출하문행>, <귀수수>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필력은 군사학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조조는 손자병법에서 거추장스러운 문장을 쳐내고, 주석을 달아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라 알려진 <손자약해(孫子略解)>를 저술했는데요. 간결하면서도 예리한 데다 문장력이 빼어나 손자병법 중에서는 오로지 <위무주손자>만이 남겨지게 되었답니다. 다른 판본은 쓰이지 않게 되었거든요.


다른 의미에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글자 말입니다. 특히 예서의 강직한 필법과 해서의 간결한 필법을 융합했는데요, 개성 있으면서도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는지 서예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위, 서진의 학자인 장화가 지은 백과사전 <박물지(博物志)>에는 조조가 음악과 바둑에도 뛰어났다 전합니다. 더욱 자세히 말하자면, 동시대 뛰어나다고 알려진 인물들에게 버금간다고 적혀 있습니다. 아마 후대에 이름을 남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당대로만 보자면 ‘고수’쯤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갈관(葛冠) 대신 백갑(白帢)이라는 모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갈포라는 식물로 만들어져 복잡하고 뻣뻣한 갈관은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무거웠는데요, 백갑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가벼웠습니다. 수수하고 단순한 옷과 신발을 선호했다는 조조이니만큼, 갈관이 거치적거렸을 수도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진 백갑은 편의성 때문인지 위진 시대에 널리 쓰였습니다. 패션에서도 유행을 선도한 셈입니다.


백갑관.png

그림. 백갑관을 쓴 황제. 출처: 위키피디아(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mperors_wearing_Qia.jpg)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을 보여준 조조지만, 한 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극한의 효율성’입니다. 시도, 서예도, 패션도, 전부 간결함을 추구하는 형식이지 않나요?


이러한 간결함은 조조의 타고난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조조는 검소하고 소박해, 장식품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한 위치가 되면 어느 정도 보여지는 것에도 신경을 쓸 텐데, 천성이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손수건이나 작은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린 허리띠를 차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대 사대부가 추구하던 진중한 위엄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했다는 뜻이니까요.


조조는 이러한 방식으로, 각종 예술 활동을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병행할 수 있었겠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취미를 ‘간결한 방식’으로 즐긴 원인에는, 어쩌면 조조를 평생 괴롭힌 두풍(頭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후한서> “조조가 소문을 듣고 화타를 불러 좌우에 있게 하였다. 조조는 두풍현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화타가 침을 놓으면 즉시 차도가 있었다.” [화타열전]

<정사> “태조가 소문을 듣고 화타를 불러 화타는 항상 조조 곁에 있었다. 조조는 두통으로 고생하였는데, 매번 재발할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고 눈이 몽롱했다. 화타는 침으로 횡격막을 찔렀으며, 손이 따라가는 대로 병세가 사라졌다.” [화타전]


조조와 화타 사이 악연의 시발점이 되는 두풍이 바로 여기서 등장합니다.


두풍이란, 길게 지속되는 심한 두통(혹은 두통이 났다가 멎었다 하면서 오래도록 낫지 않는 것)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등도 이상의 두통일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에 부합하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원인들을 뽑아보자면 우선 다음의 세 가지 진단명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만성 편두통(Chronic migraine)

삼차신경통(Trigeminal neuralgia)

군발두통(Cluster Headaches)


이 중에서 ‘조조의 두통 원인’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편두통’일 것입니다.


의무기록이 아닌 사서에 ‘두통으로 고생했다’는 언급이 나올 정도면 가벼운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중등도 이상의 심한 두통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재발을 하였지 특별히 심각한 신경학적 장애(의식 저하나 마비와 같은)가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볼 때 원인이 뇌출혈이나 뇌경색일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오히려 중등도에서 심한 두통이 발생할 수 있는 ‘편두통’일 가능성이 더 높죠. 편두통은 꼭 한쪽의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며, 박동성의 통증을 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자에 따라 재발 전에 전조 증상(aura)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눈앞이 번쩍거리거나 암점이 생기기도 하고 얼굴이나 손이 저린다는 느낌을 호소하는 등의 다양한 증상이 두통 전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매번 재발할 때마다 마음이 산란하고 눈이 몽롱했다’는 내용이 조조가 겪었을지도 모를 전조 증상을 묘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조조의 병이 편두통이었다면, 현대의학적으로는 나름 우아하게 치료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트립탄(Triptan) 계열의 약제로 증상을 조절하거나(가벼운 통증은 다양한 진통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 보툴리눔 독소(보톡스라는 상품명이 더 잘 알려진) 주사 치료도 편두통 증상 조절에 큰 도움이 되며, 최근에는 칼시토닌유전자관련펩타이드 항체(Calcitonin gene-related peptide (CGRP) monoclonal antibody)라는 걸출한 약제가 개발되어 수많은 난치성 편두통 환자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도끼로 머리를 열 필요도 없고, 아슬아슬하게 횡격막도 찌를 필요가 없는…).



삼차신경통은 이름 그대로 ‘삼차 신경-얼굴의 감각 및 일부 근육의 운동을 담당하는 뇌신경)’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으로, 보통 편측의 안면부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전기 오르는 듯한 양상(벼락 치는 듯하다, 칼로 베는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의 심한 통증을 특징으로 합니다. 삼차신경통은 얼굴의 감각 저하를 동반하기도 하고, 증상이 발생할 때 얼굴을 움찔거리는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말하거나 음식을 씹는 동작에 의해서도 유발되기도 하며, 면도를 하거나 얼굴을 건드리는 동작에 의해서도 증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증상 치료에는 항경련제로 잘 알려진 카바마제핀이나 옥스카바제핀 등을 사용해 볼 수 있으며(이 외에도 다양한 항경련제 계통 약제가 도움이 됩니다), 근이완제의 병용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약으로 증상 조절이 잘 안 될 경우에는, 보툴리눔 독소 주사 치료도 해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삼차신경에 대한 미세뇌혈관 감압술이나 감마나이프 수술 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도끼 드립이 여기에서???).


삼차 신경통도 그 강도와 불편감에 있어서는 조조의 두풍 원인 일 수 있으나, 보통의 삼차 신경통이 50대 이후의 여성에서 호발한다는 점에서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혹은 사서에는 기록이 없긴 하지만, 조조가 젊어서 대상포진을 앓은 적이 있다거나 두개골 기저부에 손상을 일으키는 외상을 경험한 적(전쟁터 많이 다녔으면 혹시라도?)이 있었다면 그로 인해 삼차신경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삼차신경통 자체가 워낙 통증 빈도가 짦아서, 화타가 침을 놓자마자 바로 좋아졌다는 표현에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횡격막(…)과 같은 부위에 침을 놔서 오히려 얼굴근육에 신경을 쓰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통증을 완화시킨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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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삼차 신경이 지배하는 영역(출처-Mayo clinic).



군발두통은 결막충혈, 눈물, 코막힘, 콧물, 땀 등의 자율신경증상을 동반하는 심한 두통이 집단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삼차자율신경두통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합니다)입니다. 이 두통은 특이하게도 다른 두통이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과 달리 90%의 환자가 남성이라고 합니다. 주로 청년기와 장년기에 자주 나타나며, 20대 후반에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두통이 발생하면 수주일 또는 수개월의 군발 기간(발작 기간) 동안, 한 번에 15분에서 1시간씩 하루에 여러 차례 발생하는 형태로 지속되고, 증상이 소실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매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두통이 발생하며, 주로는 밤에 잠이 든 후 1~2시간 지난 시점에 두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통증이 소실되는 시기가 있으나 약 10%의 환자에서는 소실 기간 없이 만성적으로 발작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환자들 중 23% 정도에서는 두통 발생 수일 전부터 무기력, 흥분, 과민함 또는 두통을 예상할 수 있는 느낌이나 묵직함 등의 전조증상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Headache. 2018 Jun 22;58(8):1203–1210. Aura in Cluster Headache: A Cross‐Sectional Study. Ilse F de Coo, Leopoldine A Wilbrink, Gaby D Ie, Joost Haan, Michel D Ferrari.).


‘남성’인 조조가 ‘젊어서부터’ 두통에 반복적으로 시달렸으며, ‘두통의 강도가 상당히 심하고’ 전조 증상 혹은 자율신경계 증상으로 의심되는 것들도 있다는 점(눈이 몽롱했다는 것은 결막충혈이나 눈물이 나는 증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요)에서 군발 두통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응급실에서 만나뵈었던 군발두통 환자분들의 고통을 떠올려보면, 조조의 화타 의존성이 이해가 되는 바입니다.


군발두통의 증상 치료로는 100% 산소 공급 치료나, 트립탄 약제, 스테로이드 등을 사용해 볼 수 있고, 칼시토닌유전자관련펩타이드 항체의 하나인 ‘Galcanezumab’이 예방치료로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도끼… 횡격막 침… 없어도 된다…).


이 외에도 ‘만성 긴장형 두통(Chronic tension-type headache)’이나 ‘신생 일상성 지속성 두통(New daily persistent headache)’ 등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이 두통들은 상대적으로 두통의 강도가 약한 편이라 조조의 두풍 원인으로서의 가능성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두통으로 고통받긴 했지만, 조조는 사실 건강 관리에 진심인 남자였습니다. 두통 때문에 더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오히려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에 두통이 더 심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박물지> “조조는 양성법을 좋아하고 방약을 알아 방술지사들을 초빙하니, 여강의 좌자, 초군의 화타, 감릉의 감시, 양성의 극검을 모았다. 또한 1척(후한 말 기준 약 24cm)에 이르는 들의 칡을 먹었고, 적게 먹었으며 짐주를 많이 마셨다.”


한나라 시대의 교양인 답게… 조조는 도교에 심취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방술(方術)에 큰 흥미를 가졌던 모양입니다.


방술은 의술, 주술과 점술, 도교적 수련법 등 여러 가지 신비한 기술을 뜻합니다. 양성법, 즉 도교적 건강 관리법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불로장생까지는 아니어도, 건강과 장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양성법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식이요법과 호흡법, 운동과 명상 등을 사용한 훈련이니까요. 나름 도움은 되었는지, 조조는 60대의 나이에 늦둥이를 본 바 있습니다. 사냥을 나가 하루에 꿩을 63마리나 잡았을 정도로 건강하기도 했고요.


1척에 이르는 칡 역시, 그 양이 어마어마해 보이기는 하지만, 증상을 완화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한약재로서의 칡은 나름 두통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뿌리인 갈근은 감기로 인한 열, 두통, 뒷목이 뻣뻣한 증상을 치료하며 갈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 조조가 시달릴 때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케이스 보고(Case report) 형식이긴 하지만, 2009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Headache. 2009 Jan;49(1):98-105. Response of cluster headache to kudzu. R Andrew Sewell.), 군발두통(cluster headache) 환자들 중 칡을 복용한 16명이 두통의 호전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짐주 역시 그렇습니다. 짐주는 짐새라는 전설 속의 새의 깃털을 사용해 만든 독주입니다. 짐새가 실존할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독성이 있기는 했겠습니다.


짐새는 현대에 발견되지 않으므로 짐새가 지닌 독이 과연 무슨 성분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짐새처럼 독이 있는 조류를 찾아보면 뉴기니에 서식하는 ‘두건피토휘(Hooded pitohui, Pitohui dichrous)’라는 새가 독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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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두건피토휘의 사진. 출처: https://ebird.org/species/hoopit1


이 새는 개구리나 딱정벌레 등을 잡아먹는데, 그 먹이가 되는 생물들에 독이 있기에 자신에게도 독이 축적(주로 깃털과 피부에… 짐새와 흡사?!?)된다고 합니다. 이 새에서 발견되는 독은 ‘호모바트라코톡신(Homobatrachotoxin)이라고 하는데, 이는 독화살개구리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계열의 독이라고 합니다(Science. 1992 Oct 30;258(5083):799-801. Homobatrachotoxin in the genus Pitohui: chemical defense in birds? J P Dumbacher, B M Beehler, T F Spande, H M Garraffo, J W Daly.). 이 성분은 일종의 신경독으로, 이 독에 노출되면 감각 저하, 손발 저림, 근육의 강직과 같은 증상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독성을 나타낼 수 있는 용량에 노출이 된다면 심장 근육에도 영향을 끼쳐 부정맥이나 심장마비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짐주의 성분이 저런 것이었다면 두통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해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조조 독살 성공?!?).


현대의학에서는 편두통 치료에 보툴리눔 독소를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피토휘의 깃털에서 나오는 성분과는 다르며,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근육에 주사를 하는 방식이니 짐주를 마시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의학적 시각에 따르면 모든 약에는 독이 있고, 또 모든 독은 약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너무 과하게 복용했다면 부작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지요.


반드시 칡이나 짐주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도교, 그리고 방술에 심취해 있었다면, 다른 부작용이 많은(하지만 당시에는 몸에 좋다고 알려진) 식재료를 섭취했을 가능성도 높으니까요.


먹다보면.png



어떤 이유에서든 두통에 자주 시달렸다면, 정상적인 몸 상태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겠습니다. 그러니 정치도, 평소 생활도,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활동해야만 했겠지요. 심지어 사이사이 여자도 만나며(주로 돌싱녀?) 25남 6녀를 봤으니까요.


반대로 두통이 없는 날에는 그만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겠지요. 그럴 때 노력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아도 되는, 간단히 즐길 만한 활동. 그것이 조조에게는 예술 활동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예술 활동이 ‘간결’한 이유도 설명됩니다.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으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반대로, 두풍 때문에 예술적 영감이 샘솟았을 수도 있지요. 고통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격언처럼, 조조도 자신의 고통을 창작의 한 요소로 승화시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혼(보다는 신체)의 고통을 겪으면서, 이 세상(난세)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이라고 해도 그럴듯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픈 와중이니 오랫동안 공을 들이기는 어려울 테고, 그렇게 간결함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가설도 만들어봅니다.


어떻게 되었든, 조조는 두통 속에서도 정치, 예술, 군사 모든 분야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습니다.


현대의학으로 조조의 두통이 잘 조절되었다면, 높아진 삶의 질 덕분에 지금 전해지는 역사 속 모습보다는 좀 더 인자하고 온화한 군주로서의 통치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삼국지연의는 조금은 더 시시하고 재미없는 내용이었거나, 유비 대신 조조가 최고 인기 군주 캐릭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대신 조조의 예술 작품은 조금 더 지루하고 장황하게 끝났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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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상상 속의 자애로운 조조의 모습(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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