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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속 의사

고대 중국의 명의, 화타 - 무엇이든 고쳐드립니다!

by Iatros

이 인물은 편작과 함께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과, 외과, 부인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약재의 정밀한 사용과 침술, 수술 등으로 환자들을 치료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후한 말에 활동한 이 인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 같은 문제가 퀴즈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생각해 봅시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해당 문제에 답은 쉽게 맞출 수 있을 듯합니다. 삼국지 완독 여부와 무관하게, 화타라는 이름은 이미 널리지 알려져 있으니까요.


이름 뿐만이 아닙니다. <연의>에 나온 화타의 일화는 이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마취도 없이 관우의 어깨뼈에서 독을 긁어냈다는 이야기나,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머리를 도끼로 쪼개자고 했다가 의심을 사 죽은 이야기가 그렇지요.


화타와 도끼.png

그림. 연의 덕분에 도끼를 든 의사로 묘사되곤 하는 화타(출처: 좋은아침병원 <31. 수술법은 왜 그리 많은지요?> http://gmhosp.co.kr/bbs/board.php?bo_table=bible&page=2)



둘 다 <연의>의 창작이기는 합니다. 관우가 마취 없이 수술 받은 것은 <정사>에도 기록된 사실이지만, 집도의는 화타가 아니었습니다. 조조의 머리를 쪼개려 했다는 것은 <정사> 및 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나관중이 지어낸 이야기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타가 대단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사> 및 사서에 적힌 화타의 의술은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정사 속에 등장하는 화타의 신묘한 활약상을 하나씩 살펴보고, 현대 의학적으로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약 처방에도 정통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끓일 경우에는 불과 몇 종류의 약재를 합쳐 끓였으며, 마음속으로 약품의 분량을 가늠하고 다시 저울로 재지 않았다. 끓여서 익으면 환자에게 먹이고 약을 복용할 때의 주의 사항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여 약을 먹으면 병이 완쾌되었다.

만일 뜸질을 해야 할 경우라면, 7, 8회만 해도 병세가 사라졌다.

만일 침을 놓아야만 될 경우라면 한두 곳 만을 선택하여 침을 놓으면서 환자에게 말했다. "침은 어떤 장소에까지 찔러야만 합니다. 만일 그곳까지 찔러졌다면 말씀하십시오."

환자가 '벌써 찔러졌습니다'라고 말하면 즉시 침을 뺐으며, 환자의 병세 또한 차도가 있었다.


-> 이 일화를 보면 화타는 약학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뛰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많은 약재의 약효와 부작용을 알아야 환자에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고, 또한 각 약재의 필요량을 알고 적당한 유효성분 추출 방법을 알아야 하며, 유효 성분 간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환자에게 효과적이면서도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약을 조제할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 살며, 적절한 도구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약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신기(神技)’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습니다만… 이미 임상시험을 거쳐 만들어진 약품을 처방하는 것에도 여러모로 고민할 일이 많아지는 현대 의사 입장에서는 ‘정말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화타는 약학뿐만 아니라 뜸과 침술 같은 기술도 환자 치료에 적절하게 활용한 것 같은데, 이 중에서 화타의 침술은 어찌 보면 위험천만해 보이기도 합니다. 인체의 깊은 곳까지 침을 넣어야 한다면, 장기나 혈관을 피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화타가 해부학적인 지식이 뛰어났다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는 있지만… 고대 중국의 의사들이 해부학에 정통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고대의 유물 중에서 침을 놓기 위한 경혈에 대한 지식이 담긴 서적이 발견되기도 하고, 사형수를 능지처참하는 과정에서 해부학적 지식을 얻기도 했다는 내용들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중국의 유교 문화에서는 사람의 몸을 해부하는 것이 불경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고대 중국의 의사들의 해부학적 지식은 시체 해부를 기반으로 하진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1).


물론 현대 의사들이 사용하는 '통증유발점 주사(Trigger point injection)’와 같이, 근육의 수축과 긴장의 원인이 되는 유발점을 찾아서 찌르는 방식으로 침술을 사용한 것이라면 비교적 안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이런 방식이라면 환자가 바늘이 근육에 들어온 것을 느꼈을 수도 있죠).

화타의 침술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어떠한 효과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현대를 살아가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궁금하긴 합니다.



2. 만일 신체 내부에 병이 있는데 침과 약으로는 환부에 미칠 수 없어 절개를 해야만 할 경우에는 환자에게 마취약을 먹여 잠시 취한 듯 죽은 듯 지각하는 바가 없게 하고 환부를 잘라 꺼냈다. 만일 창자 속에 질병이 있다면 창자를 잘라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봉합하여 고약을 붙인다. 4, 5일 후면 차도가 있어 통증이 없고, 환자 또한 스스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한 달 만에 완쾌되었다.


-> 이 기록에 따르면, 화타는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수술적 치료도 시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취를 통한 통증 관리와 환부의 제거 및 적절한 봉합과 상처 부위 염증 관리 등에 대한 개념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삼국지연의나 야사 속에서 관우의 어깨를 치료한 의사가 화타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에 외과적 수술의 선구적인 역할을 화타가 담당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생각보다는 고대 중국의 외과적 시술이 꽤 발달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화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외상에 대한 수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 장기에 대한 수술도 시행했다는 부분입니다. 현대에도 내부 장기에 대한 수술을 시행하려면 전신 마취를 위한 준비와 무균적인 수술 환경, 숙달된 외과 전문의 및 보조인력 등이 필요합니다. 이차 감염 예방 및 환자의 회복을 위한 수술 후 관리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고대에 마취 약제만을 가지고(인공 호흡기나 생체징후 관찰을 위한 모니터링 장비도 없이), 혼자서 환자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시행하고 봉밥하고 감염 관리까지 모두 시행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속 천재 외상외과 의사도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일 것입니다.



3. 옛날에 감릉의 상으로 있던 사람의 부인이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는데 복통으로 편안하지 못했다. 화타는 그녀의 맥을 짚어보고 말했다. "태아는 벌써 죽었습니다."

사람을 시켜 손으로 더듬어 태아의 위치를 살피게 하고, 왼쪽에 있으면 사내아이이고, 오른쪽에 있으면 여자아이라고 했다.

위치를 살핀 사람이 말했다. "왼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탕약을 배합하여 태아를 씻겨내리니, 과연 내려온 것은 사내아이의 모습이었고, 즉시 통증이 사라졌다.


-> 화타는 산부인과 지식도 갖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히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화타는 임신 중 태아 사망에 의해 발생한 복통을 진단했을 뿐만 아니라 약물로 유도분만을 시도하여 사망한 태아가 배출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맥으로 태아의 사망을 진단하고 태아 위치로 아이의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현대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현대에는 초음파로 태아의 움직임이나 심박동을 관찰하여 진단하죠), 적절한 진단을 통해 산모의 건강을 지킨 것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현대에도 임신 초기의 유산 치료에는 소파술 등의 수술적 방법을 이용하지만 후기가 될수록 유도분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화타의 치료 방법이 상당히 과학적으로 보입니다.



4. 현의 관리 윤세는 사지에 열이 나고 입안이 마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소변도 순조롭지 못하였다. 화타가 말했다. "시험 삼아 뜨거운 음식을 먹어보아 땀이 나면 쾌차하고, 땀이 나지 않으면 사흘이 지난 후에 죽을 것입니다."

즉시 뜨거운 음식을 만들어 먹었지만 땀이 나지 않았다. 화타가 말했다. "장기가 이미 체내에서 끊어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만 기를 이을 수 있습니다."

과연 화타의 말과 같았다.


-> 이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윤세라는 관리가 앓고 있는 질환이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이 난 이후 입안이 마르고 소변이 나오지 않을 정도라면 전신감염과 발열로 인해 발생한 탈수(dehydration)로 인한 급성 신부전증(Acute Renal Failure)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급성 신부전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 수분 제한, 전해질 균형, 산-염기 균형, 충분한 칼로리 공급이 필요하고,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합병증 예방 및 치료가 병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화타가 사는 시대에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검사 방법이나 치료를 위한 의료 기구(하다 못해 링거라든지…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때를 위한 혈액투석기구 라든지)도 전무했으므로 정확한 환자 상태의 파악이나 치료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환자가 스스로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뜨거운 음식을 먹고 땀이 배출될 정도라면 자율신경계(…를 고대 중국의 의사가 알지는 못했겠지만)를 포함한 어느 정도 신체의 기능이 유지된다고 판단하여 회복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환자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기에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5. 부의 관리 아심과 이연이 함께 화타에게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두통과 전신에 열이 있었으며, 느끼는 고통이 똑같았다.

화타가 말했다. "아심은 설사를 해야만 되고, 이연은 땀을 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병은 같은데 치료 방법이 다른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화타가 말했다. "아심은 체질이 겉으로 튼실하고, 이연은 속이 튼튼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합니다."

즉시 각자에게 약을 주었는데, 다음 날 아침 두 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어 일어났다.


->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비슷해도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음을 판단하는 것 역시 의사가 갖춰야 할 소양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것을 현대 의학에서는 감별진단(differential diagnosis)라고 부릅니다. 위의 두 환자도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두통과 발열이었지만, 화타는 좀 더 자세히 문진과 진찰을 해보고 나서 이 증상들의 원인이 전혀 다른 것임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아심의 경우엔 장염에 의해 발생한 발열과 이에 따라 나타난 두통이었기에 우선은 원인이 되는 장염 증상이 완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며, 설사 증상 등이 지나가고 나면 좋아질 것이라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반해 이연의 발열과 두통은 그냥 바이러스성 감염에 따른 감기 몸살 증상이었을 수도 있고요. 이런 경우에는 결국 고열이 나다가 발한이 있고 나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땀을 내야한다’고 설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두 환자 모두 건강을 회복했으니 해피엔딩이죠.



6. 염독의 엄흔이 몇 사람과 함께 화타를 찾아왔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화타가 엄흔에게 말했다. "당신의 몸은 좋습니까?"

엄흔은 말했다. "평상시와 같습니다."

화타가 말했다. "당신에게 화급을 다투는 병이 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는군요. 술을 많이 마시지 마십시오."

엄흔 등은 담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몇 리를 가다가 엄흔이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며 수레 위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를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튿날 밤에 죽었다.


-> 이 글만 보면 화타가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 같지만, 염흔이 평소에 술을 즐겨마시는 중년 남성이라고 추정한다면 화타가 봤을 때 이미 뇌졸중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인은 느끼지 못했지만 입 주위 근육이 처지는 양상의 중추성 안면마비 증상이 화타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 아닐까요? 화급을 다투는 질환인 뇌졸중의 증상이 보이니 술을 마시지 말고 안정을 취할 것을 권유했으나 염흔은 화타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져 사망한 것을 볼 때 뇌간(brainstem) 부위에 뇌졸중이 발생했고 밤사이에 병변이 커져서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대라면 염흔이 뇌졸중의 골든 타임 안에 치료를 받아서 살아남았을(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7. 이전에 독우를 지낸 돈자헌이 병에 걸렸다가 쾌차하여, 화타에게 진맥을 짚어보게 했다.

화타가 말했다. "몸은 아직 허약하며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았으니, 성관계를 하지 마십시오. 하면 곧 죽게 될 것입니다. 만일 죽게 된다면 혀를 몇 촌 내놓을 것입니다.”

돈자헌의 아내는 돈자헌의 병이 좋아졌다는 것을 듣고 백여 리 밖에서 와서 그를 살펴보고는 밤에 그의 집에 머물며 교접을 해, 3일 만에 도로 발병하였다.


-> 염흔에 이어 의사 말을 듣지 않는 환자입니다.


돈자헌의 병증에 대해서는 정확한 묘사가 없기에, 과연 그가 어떠한 질병에 걸렸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직 몸이 허약하여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았다는 표현이나 성관계를 당분간 삼가라는 표현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염흔처럼 일종의 뇌혈관질환을 앓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성관계 자체가 뇌혈관질환 환자에게서 절대 금기인 것은 아니며, 뇌혈관질환의 재발 위험도를 높인다는 증거는 없으나 성관계에 의한 심박동과 혈압의 증가 및 성적 흥분감으로 인한 자극이 혈관의 분절성 수축을 일으켜 두통이나 뇌출혈 등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2).

또한, 심장에 ‘난원공 개존증(Patent Foramen Ovale: 심방 중격 사이에 구멍이 남아 있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성관계 중 뇌졸중 발생한 경우도 드물지만 보고되고 있습니다(3).


돈자헌이란 사람도 위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어 성관계에 의해 유발된 뇌졸중 증상이 있었다면 화타로서는 원인이 될 수 있는 성관계를 피하라고 당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열정적인 부부는 결국 재발의 고통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8. 독우 서의가 병이 들었으므로 화타가 가서 그를 진찰해 보았다. 서의가 화타에게 말했다. "어제 의조리 유조를 시켜 위에 침을 놓게 한 후에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와서 누워서 편안히 잘 수가 없었소."


화타가 말했다. "침을 위에 찌르지 않고 잘못하여 간을 찔렀습니다. 먹는 것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닷새가 지나면 구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되었다.


-> 사실 침으로 위를 찔러도 안 되긴 하지만… 현대 의학적으로는 간이든 위든 침으로 찌르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위천공(위암으로 위궤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은 심각한 통증과 복막염을 초래하고, 간에 천공이 발생(보통은 간생검이나 담낭염 증상 등에 의해 발생)할 경우에는 중등도 이상이 통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실제 위나 간의 천공이 발생한 경우엔 응급수술이 필요합니다.


이 일화 속의 위와 간이란 한의학적인 맥락으로 오장 중 위장과 간장에 연결된 경혈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갑자기 사망에 이를 정도면 실제로 장기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의가 의인성 간 천공에 의한 사망한 것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현대라면 수술적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장기에 대한 수술도 가능하다고 전해지는 화타가 왜 이 환자에게서는 수술을 시행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9. 동양현 진숙의 작은아들이 두 살 때 하리병(下利病:이질 등의 설사병)에 걸려 항상 먼저 울었으며,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화타에게 묻자 화타가 말했다. "이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태아를 자라게 하는 데 양기가 집중되었으므로 모유를 먹는 아이는 어머니의 차가운 성분을 섭취하였기 때문에 나을 수 없습니다."

화타는 네 가지 물건을 합쳐 만든 여완환을 주었는데, 열흘 후에 병세가 사라졌다.


-> 화타는 유아기에 설사가 반복되는 증상을 지닌 환아를 사물여완환(四物女宛丸)이라는 약으로 치료했다고 하는데(소아청소년년과도 정복 중이신 화타님), 위의 기술만으로는 환아가 정확히 어떠한 병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나서 모유를 먹으며 자라는 아이는 많고, 그 아이들이 전부 다 배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모유 수유에 대한 언급이 들어간 것을 볼 때, 진숙의 아들은 통상적인 경우보다 좀 더 길게 모유 수유를 유지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유 수유를 길게 하다가 이유식으로 전환하면서, 식이 변화에 따라 변비나 설사가 발생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타는 일종의 천연 정장제를 만들어 처방하고 호전을 기다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0. 팽성의 부인이 밤에 변소에 갔다가 전갈에 손을 쏘여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했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화타는 사람을 시켜 탕약을 뜨겁게 하여 그 속에 손을 씻어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니 즉시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여러 번 탕약을 바꾸어 탕약의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하였다.

날이 새자 쾌차했다.


-> 이제는 응급의학과 영역에 진출 중인 화타입니다. 현대의 응급실에도 다양한 동물에 물린 이후에 방문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으니까요.


전갈에 물린 경우에는 보통 그 부위에 국소 통증이나 열감, 부종, 따끔거림이 나타날 수 있으며, 전갈의 독이 강할 경우에는 신경독 성분에 의해 호흡 곤란

발한, 혈압 상승, 빈맥, 근육 경련 등의 전신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갈 물린 부위에 냉찜질을 해주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데(동상이 발생할 만큼 너무 과도하게 하지는 말고…), 전갈의 사진을 찍어서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정확한 치료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에 주로 서식하는 전갈인 ‘극동전갈(Chinese golden scorpion)’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전갈들에 비하면 그 독성이 약한 편이라 쏘여도 크게 위험하진 않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어린이나 노인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고 필요 시 항독소 치료 등을 받아야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 속 팽성의 부인의 경우에는 오히려 따뜻한 온도의 탕약에 손을 담갔다고 나오는데, 탕약에 무언가 항염증이나 진통 작용을 낼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던 것 같습니다. 현대의 응급실에서 하는 처치와는 많이 다르지만, 전갈에 물린 상처까지 치료 가능한, 만능 의사다운 활약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1. 군대의 관리인 매평이 병에 걸려 업무를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광릉현에 있었는데, 2백 리를 남겨두고 친척 집에서 머물렀다. 오래지 않아 화타가 우연히 주인집에 오게 되었고, 주인은 화타에게 매평을 보도록 했다.

화타가 매평에게 말했다. "당신이 일찍 나를 만났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질병이 이미 다했으니, 빨리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만나십시오. 닷새 후면 죽습니다."

매평은 즉시 돌아갔고, 죽은 날은 화타가 예측한 것과 같았다.


-> 화타의 신통함을 강조하기 위한 일화로 보입니다. 닷새라는 단기간의 기대 여명을 예측하는 것은 몇 개월이나 몇 년 단위 예측보다 더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물론 매평의 병색이 너무나도 완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화타는 놀라운 예측 능력을 또 다시 보여줍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에 대해서는 본인의 한계를 바로 인정하고 환자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해 의사를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사의 판단을 신뢰하는 매평과 완화의료적인 관점에서 환자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화타의 모습이 현대를 사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12. 화타는 길을 가다가 목구멍이 막히는 병에 걸린 사람이 음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먹지 못하자, 집 식구들이 수레에 태워 의사에게 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화타는 그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고 수레를 멈추게 하고 가서 살펴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방금 지나온 길에 있는 빵 파는 집에서 마늘을 부수어서 시게 만든 것이 있으니 세 되를 사서 그에게 먹이면 병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입니다."

화타의 말처럼 했더니 환자는 즉시 뱀 한 마리를 토해냈다. 토해낸 뱀을 수레 옆에 걸고 화타를 방문하니, 화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어린아이가 문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맞이하여 보고 말했다. "우리 아저씨를 만난 것 같군요. 수레 옆에 뱀을 매단 것을 보니.”

환자는 화타의 집의 북쪽 벽에 이런 뱀이 수십 마리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 약간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뱀을 식재료로 사용한 요리가 있었다고 하나(일종의 탕이나 스프 같은 형태) 이런 식으로 통으로 삼키는 방식은 실제하는 식사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혹시라도 산낙지를 먹기 같은 걸까요?). 어쨌든 이 이야기 속에서는 화타가 사는 지역(현대 중국의 안후이성)에서 ‘뱀을 통으로 먹기 대회’라도 열린 것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뱀을 먹고 식도까지 막히는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원인을 파악하고 ‘뱀 유발성 식도 폐쇄증’을 해결한 화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화타는 이러한 자신이 꽤 자랑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집의 북쪽 벽에 트로피처럼 뱀들을 전시해 놓을 정도로요.



13. 어떤 군의 태수가 병이 들었다. 화타는 그 사람이 크게 화를 내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많은 돈을 받고 치료를 하지 않았으며 오래지 않아 환자를 내버려두고 떠나면서, 태수를 욕하는 편지를 남겼다. 태수는 과연 매우 화를 크게 냈으며, 사람들을 시켜 화타를 추격하여 잡아 죽이도록 했다. 군수의 아들은 화타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수하 관리들에게 쫓지 말도록 했다. 태수는 무척 분노하더니 검은 피를 토하자 병이 낫게 되었다.


-> 이 역시 약간은 전래동화나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로 보입니다만… 화타가 태수를 보고 ‘화를 내야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부분에서 일종의 정신건강의학과 적인 접근을 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신체화장애’가 발생한 태수에게 분노를 표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의 심리 치료를 시행한 것이죠. 검은 피를 실제 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를 내는 것만으로 태수의 병이 좋아졌다면 정신적인 문제였을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14. 또 한 사대부가 있었는데, 몸이 불편하였다. 화타가 말했다. "그대의 병은 깊습니다. 배를 잘라 절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수명 또한 1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니, 질병이 그대를 죽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10년간 질병을 참아낼 수만 있다면 수명과 함께 질병이 다할 것이므로 특별히 절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대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반드시 절제하려고 했다. 화타는 마침내 수술을 했고, 환부는 빨리 좋아졌는데, 10년이 지나 결국 죽게 되었다.


-> 이 이야기 속에서도 화타는 장기를 절제하는 외과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복강 내 특정 장기에 문제가 생겨 환자는 불편감을 호소하고 있고 이를 치료하기 원하지만, 환자의 기대 여명이 10년이므로 수술을 꼭 시행할 필요 없다고 설명하는 화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야기 속의 정보만으로는 복강 내 장기에 있는 질병으로 수명이 10년 남았다는 것인지, 혹은 다른 질환으로 인해 기대여명이 길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그냥 나이가 제법 많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현대에도 특정 질환으로 인한 환자의 기대여명을 정확히 추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말기암 환자에서도 통계적인 여명을 제시할 뿐이지 의사의 예측이 반드시 맞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화타는 비교적 명확한 ‘10년’이라는 기한을 제시했고 환자가 불편감을 호소하게 하는 질환이 불편할지 언정 치명적이지 않은 것임을 진단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고대 중국의 의료 환경에서 수술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환자에게 질병에 대해 설명하고 치료 방향을 선택할 기회(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를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10년 예측’의 신묘함을 제외하고 본다면 굉장히 현대적인 의사-환자 간의 의사결정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15. 이장군의 부인이 병세가 심각하였으므로 화타를 불러 맥을 짚어보도록 했다.

화타가 말했다. "유산이 되었습니다만, 태아가 모체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장군이 말했다. "유산이 확실하다면 태아는 이미 떨어진 것이라고 들었소."

화타가 말했다. "진맥에 의하면, 태아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장군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화타는 진료를 멈추고 떠났다. 부인의 병세는 점점 호전되었다. 백여 일 후에 병이 재발하였으므로, 다시 화타를 불렀다. 화타가 말했다.


"이 맥의 관례에 따라 판단하면, 태아는 아직 있습니다. 이전에 두 아이가 생겼는데, 한 아이는 먼저 나왔는데 출혈이 매우 많았고, 뒤의 아이는 아직 출생하지 못했습니다. 산모는 자각하지 못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깨닫지 못했으므로 이어서 낳지 않았기 때문에 출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아는 죽었고, 어머니의 혈맥은 다시 태아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태아가 말라서 어머니의 등골뼈에 붙어있기 때문에 등골뼈의 통증이 많았던 것입니다. 지금 탕약을 주고, 아울러 한 곳에 침을 놓으면, 죽은 이 태아는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탕약과 침을 모두 사용하자, 부인의 격렬한 통증이 아이를 낳을 때와 같았다.

화타가 말했다. "이 죽은 태아는 너무 오래 말라 있었으므로 스스로 나올 수 없습니다. 응당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과연 죽은 한 사내아이를 꺼냈는데, 손과 발이 모두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안색은 검었으며, 몸은 1척쯤 되었다.


-> 이번에도 산과 진료를 수행하는 화타입니다. 이장군의 부인은 쌍태임신 중 한쪽은 사산을 하였고(이를 유산이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 태아는 태내에서 사망한 채로 출산 되지 못하고 부인의 자궁 내에 남아 있던 상태였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산전 검진이란 개념이 있을 수 없을 테니 쌍태임신인 것을 정확히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아이가 출산된 이후 사망한 태아가 부인의 자궁 속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결국 뒤늦게 태내에 남아 있는 사산아의 존재를 알아낸 화타의 신묘한 능력으로 유도분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었고, 이장군의 부인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두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16. 군대의 관리 이성은 고통스러운 기침으로 밤에도 낮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항상 피고름을 토하였으므로 화타에게 물었다.

화타가 말했다. "그대의 병은 장에 종기가 난 것입니다. 기침할 때 토하는 피고름은 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에게 두 전의 가루약을 주겠습니다. 두 승쯤 되는 피고름을 토하고 마음이 유쾌해지고, 기를 갖고 자애롭게 한다면 1년이면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18년이 지나면 한 차례 작은 발작이 있을 것인데, 이 가루약을 복용하면 또한 병세는 회복될 것입니다. 만일 이 약을 얻지 못한다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전의 가루약을 주었다. 이성이 약을 얻은 후, 5, 6년이 지났을 무렵 친척 중에 이성과 또 같은 병에 걸린 자가 있었는데, 이성에게 말했다.


"그대는 지금 건강하고, 나는 죽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병이 없으면서 약을 수장하고 장차 올 병에 대비하며 견디십니까? 먼저 나에게 주면 나는 병이 치료될 것이고, 다시 당신을 위해 화타에게서 구해오겠습니다."


이성은 약을 그에게 주었다. 병이 완치되어 초현으로 갔지만, 마침 화타가 붙들려 갔으므로 화타에게서 약을 구하지 못했다. 18년 후, 이성은 병이 재발했지만, 약을 복용할 수 없어 죽게 되었다. <화타전>


-> 이 이야기 속 이성이란 관리는 위장관 내에 ‘종기(농양)’가 생겨서 그로 인한 피고름이 위식도역류 증상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위식도역류 증상이 심하면 인두가 자극 받아서 마른 기침이 나올 수 있는데 이 때 피고름까지 같이 토한다면 일반적으로는 폐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 경험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화타는, 토혈(위장관 출혈)과 객혈(폐의 출혈)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이성의 질환이 위장관에 있음을 진단했을 것입니다.


사실 염증 치료로 인한 완치까지가 현실적인 진료 기록이었을 것 같으며, 18년 이후 상황에 대한 예측과 화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화타가 지닌 의술의 신묘함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신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뜻에서 덧붙여졌을 가능성도 있을 듯 합니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말씀 드렸듯이 정확한 병의 경과나 기대 여명 예측은 아무리 뛰어난 의학 지식과 다양한 임상 경험을 지니고 있는 의사에게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위장관계의 질환을 치료 받은 환자의 18년 후의 발작(이건 신경계 질환…)을 예측하고 그 때 먹을 약재를 미리 준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라 보기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약재가 그렇게 긴 기간동안 변성되지 않는다는 점도 넌센스이긴 합니다.




위의 이야기들이 명명백백한 사실의 기술이든 혹은 약간의 도시전설이 포함된 것이든 간에 화타라는 고대 중국의 의사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어선 의학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의사로서의 자기 나름의 철학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으며, 특별히 자신의 지식과 기술에 대해 자만하거나 뽐내는 모습도 없었으며 과도한 치료비를 요구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질병 경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현대에 뚝 떨어져서 다시 의사가 되었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의사 생활에 적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의사 화타는, 사실 스스로의 능력을 부끄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정사>에서는 “본래 선비였으므로 의술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 간주되자 마음속으로 항상 부끄러워했다.”고 기술합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지식과 도덕적 인격 등의 가치를 중요시하며, 문인을 존중합니다. 후한 말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신체를 다루는 의원은 그보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여겨졌지요.

가장 가까운 과거인 조선 시대에도 의원은 중인에 해당했습니다. 의원으로서 관직을 얻으려면 기술직을 위한 과거 시험인 잡과(雜科)에 응시해야 했으며, 이 잡과 응시과목에는 의학 뿐만 아니라 이학(吏學), 역학(譯學), 음양풍수학(陰陽風水學), 자학(字學), 율학(律學), 산학(算學), 악학(樂學), 서학(書學), 천문학, 화학(畵學), 도학(道學), 지리학, 그리고 복학(卜學) 등이 속해 있었습니다.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되면 어의라 불리고 ‘양반’으로 대우 받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처럼 수많은 학생들의 목표라거나 최고의 직업 중 하나로 대우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타 본인도 사실 여러 경전에 달통한, 글깨나 읽은 문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낮은 의원 취급은 마땅치 않았을 것입니다. 화타에게 있어서 의원이라는 정체성은,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부캐’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화타의 초상화.png

<그림> 화타의 초상화, 출처-위키피디아(퍼블릭 도메인).



조조에게 사직서를 던진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화타의 소견에 따르면 조조의 두풍은 장기간 치료가 필요했는데요,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의원으로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애초에 <정사>에 “다른 사람을 모셔 녹을 먹는 것을 싫어했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꾸준히 천거를 거부했기도 했고요.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던 화타는, 부인의 병을 핑계로 귀환을 미뤘습니다. 어쩌면 사직서로 보아도 좋겠습니다.



한국의 헌법 제15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민주국가라면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자유기도 합니다. 그러니 현대 사회였다면, 사직서를 던졌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당시는 3세기 초입니다. 백제와 신라가 막 자리를 잡아 가던, 딱 그만큼 오래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3세기 초의 지도자는 일반 백성의 직업선택의 자유 정도는 박탈할 수 있었지요(사실 21세기에도 여전히…).


조조는 사람을 보내 화타의 부인이 정말 병에 걸렸는지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팥 열 섬을 내리고 휴가 기한을 더 늘려주되, 거짓이라면 체포해 압송하도록 시키면서요. 거짓이라면 기군망상(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농락함) 죄에 해당했거든요.


화타는 결국 감옥에 갇혔으며, 심문을 받고 죄를 시인했습니다.


순욱이 화타의 실력을 아까이 여겨 구명해주려 했으나, 조조는 단호했습니다. “천하에는 이런 쥐새끼 같은 자가 없어야만 한다”며 끝내는 화타를 죽게 했지요.


조조의 이런 결정은 훗날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장 총애하던 아들 조충이 질병으로 죽게 되었거든요. 화타가 있었다면 아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조충은 결국 열둘의 나이에 요절합니다.




여담으로 화타는 옥에 갇혀 죽기 전, 책 한 권-연의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 《청낭서》 (靑囊書)라고 전해집니다-을 꺼내 간수에게 주었습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니, 분명 신기에 가까운 자신의 의술이 담겨 있는 의서였겠지요. 하지만 관리는 벌이 무서워 의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오히려 화타의 책을 태워버렸습니다.


다만 화타가 고안했다는 ‘오금희(五禽戲)’라는 건강체조는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의료체육의 효시로서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오금희’는 오행과 더불어 사슴, 새, 원숭이, 호랑이, 그리고 곰의 운동 형태와 특징을 본떠 만든 수련법입니다. 목(木)에 해당하는 사슴을 따라 하면 간이 좋아지고, 화(火)에 해당하는 새를 따라 하면 심장이 좋아지고.... 같은 식이지요.


화타오급희.png

그림. <양생연명록> 중 오금희 복원도. 출처: 화타오금희, http://www.qigong.co.kr/daoyin/daoyin04.html



오금희가 해당되는 짐승의 기운을 전해준다는 것은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 운동을 묘사한 그림들을 볼 때 상당히 높은 강도의 유산소 운동(High Intensity aerobic Exercise)의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강도 유산소 운동은 심혈관계의 건강을 증진하거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에서 증상을 호전시키고 진행 속도를 늦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4,5,6) 오금희를 비롯한 다양한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보는 것은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물론 모든 운동은 부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참고 문헌>

1. Anat Rec (Hoboken). 2022 May;305(5):1201-1214. Hiding in Plain Sight-ancient Chinese anatomy. Vivien Shaw, Rui Diogo, Isabelle Catherine Winder

2. Valença MM, Valença LP, Bordini CA, da Silva WF, Leite JP, AntunesRodrigues J, et al. Cerebral vasospasm and headache during sexual intercourse and masturbatory orgasms. Headache 2004; 44:244-248

3. Arch Neurol. 2004 Jul;61(7):1114-6. Ischemic stroke during sexual intercourse: a report of 4 cases in persons with patent foramen ovale. Kyra Becker, Elaine Skalabrin, Danial Hallam, Edward Gill

4. 오금희 근거. World J Cardiol. 2019 Jul 26;11(7):171–188. High-intensity interval training for health benefits and care of cardiac diseases - The key to an efficient exercise protocol. Shigenori Ito.

5. 오금희 근거.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23 Jan 5;1(1):CD013856. Physical exercise for people with Parkinson's disease: a systematic review and network meta-analysis. Moritz Ernst, Ann-Kristin Folkerts, Romina Gollan, et al.

6. JAMA Neurol. 2018 Feb 1;75(2):219-226. Effect of High-Intensity Treadmill Exercise on Motor Symptoms in Patients With De Novo Parkinson Disease: A Phase 2 Randomized Clinical Trial. Margaret Schenkman, Charity G Moore, Wendy M Kohrt, et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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