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 같은 매력이 21세기에도 잘 들어맞았다?
천만 관객의 마음을 훔친 옛날이야기
최근 극장가에 2년 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나는 개봉 초기에 일찌감치 극장을 찾아 이 영화를 만났다. 사실 작년 초부터 여러가지 일로 바빠서 '내 글'을 잘 못 쓰고 있었는데, 작년 겨울 무렵부터 혼자 꽂혀서 쓰고 있던 글(수요 없는 공급)의 소재가 '단종-수양'의 서사와 연관이 있어서 끌렸던 것도 있었다.
맨 처음 봤을 때는 역시나 의사의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했었는데(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불안이 심해져서 식욕이 사라진 단종, 그를 치유하는 엄흥도 이하 마을 사람들, 그러한 관계를 통해 장기-중증 질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보호자 간의 관계 분석 등등 식의...--;), 어느 순간 이 영화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왕사남 관람'이 하나의 현상이 되는 것을 보니 내 안에서 또 다른 관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의사란 직업 특성을 뺀 한 명의 관객의 입장으로 말이다.
영화를 보고 온지 꽤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영알못(영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비록 [영화관에 간 의사]라는 책은 썼지만ㅋㅋㅋ)'인 내가 거창한 미장센이나 연출 의도를 상세히 논할 순 없겠지만, 극장을 나서며 느꼈던 그 서글픈 여운만큼은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이미 성공해버린 이 영화를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별 의미 없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의 거대한 성공은, 어쩌면 아주 소박하고 구수한 매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스크린 위로 걸어 나온 '전기수'들
<왕과 사는 남자>가 다루는 단종과 엄흥도의 서사는 사실 우리에게 제법을 넘어서 매우 익숙한 역사다. 예전부터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로 반복적으로 재생산 되었기에 한국인이라면 대충은 아는 이야기... 아는 맛이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
게다가 '믿고 있던 숙부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죄 없이 죽어간 어린 왕'이라는 소재는 고전 비극의 비장미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예고편만 봐도 관객들은 어느 정도 감정선을 준비하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대신 너무 잘 아는 이야기기에 뻔하고 지루하다고 욕 먹을 수 있다는 위험 요소도 있지만...
어쨌든 결말까지 짐작되는 이 서사가 이토록 흡인력 있게 다가온 이유는 평이한 듯 하면서도 맛깔나게 진행되는 연출과 온 몸을 불사르며 열연을 한 배우들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유해진, 박지훈을 비롯한 배우들은 스크린 속 배역을 넘어 마치 조선시대 장터의 '전기수(책 읽어주는 사람)' 같았다. 그들이 툭툭 내뱉는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는 이미 아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호연이라는 표현을 하기보다는 정말 시장에 나온 평범한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야기꾼들의 모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 하나 놓치지 않고 자신들 앞에 앉혀서 기어이 이야기를 끝까지 듣게 만들겠다는 열의가 느껴졌달까?
시장바닥에 철푸덕 앉아 듣는 편안함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문턱이 낮다'는 것이다. 역사 영화라고 해서 시종일관 무게를 잡거나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동네 시장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부담 없이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편안하다.
어렵게 머리를 쥐어짜며 볼 필요 없이, 그저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몸을 맡긴 채 실컷 웃고 울면 그만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극장이라는 장소도 은근히 큰 맘 먹고 나가야 하는 요즘, 가족이나 친구, 혹은 혼자서라도 나가서 잠시 휴대폰은 보지 않고 스크린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편안한 감상은 큰 즐거움이자 일종의 위로로 다가왔을 것이다.
멋지게 차려입고 셰프들의 설명을 들으며 먹는 화려한 플레이팅의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이 항상 그런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국밥집에 가서 한 그릇 편하게 먹고 나오고 싶은 마음도 있는 법이다.
파인다이닝 같은 명작 영화들도 보고나면 여운이 남고 뇌를 쓰는 즐거움(?)이 꽤 크지만, 조금은 편하게 보고 단순하지만 확실한 날 것의 감정을 쏟아내게 해주는 국밥 같은 영화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언가를 보고 듣고 즐긴다는 것은 내 안의 카타르시스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니까 말이다.
익숙한 구수함, 세대를 아우르는 힘
맹자가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 했듯이, 왕사남이 이렇게까지 돌풍을 일으킨데에는 연휴(설연휴-삼일절 연휴)라는 개봉 시기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장기 흥행의 원동력은 누구와 함께 봐도 좋은 '보편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친구, 혹은 동네 사람 그 누구와 함께 가서 봐도 어색해지거나 불편한 구석이 없다. 영화 감상평은 저마다 달라도, '**와 함께 가서 보는데 불편했다.'라는 이야기는 아직 못 들어본 것 같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왕과 사는 남자>는 잘 끓여낸 뚝배기 된장찌개 같은 '익숙한 구수함'으로 승부했다. 그 따뜻한 정서적 교감이 전 세대 관객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이끌었고, 결국 천만이라는 숫자로 증명된 셈이다. 아무리 AI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그리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