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판'의 외침

공황장애의 어원

공황 발작(panic attack)은 갑자기 극도의 불안, 두려움, 초조감, 죽을 것 같은 공포감 등을 느끼는 것으로 이에 따른 신체 증상(호흡 곤란, 심계 항진, 흉통, 어지럼증 등)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공황 장애(panic disorders)는 이와 같은 공황 발작이 다시 발생하며, 이렇게 다시 발작이 나타날 것에 대한 걱정을 하거나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며, 비슷한 신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질환(갑상선 기능 항진증, 저혈당증, 뇌전증 등)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감별 진단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치료로는 약물을 이용한 치료와 인지-행동 요법이 있으며, 이 두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 치료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황발작을 이미지화한 그림.

공황 장애의 어원은 목양의 신인 판(Pan, Πάν)의 이름에서 온 것인데, 이 신은 아르카디아(Arcardia, Ἀρκαδία-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중부 지방) 지방에서 들판, 수풀, 나무그늘이나 성(sex)에 관계된 존재로 숭배 받았었습니다. 판이 생식력 및 생명이 번창하는 계절인 봄과 연관되어 있어서 이러한 숭배를 받았던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판은 보통 머리엔 염소의 뿔이 솟아나 있고, 하반신 역시 염소의 뒷다리가 달려 있는 형태로 묘사됩니다. 하체가 완전히 말의 형태인 켄타우로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반인반수라 볼 수 있습니다. 신화 속에서는, 사티로스라는 남성형 요정 및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잘 어울려다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판'의 삽화. 1918. Jozef Cantré(좌). 디오니소스, 판, 그리고 사티로스(중앙). 사티로스(Satyr, σάτυρος, 혹은 Silenos)(우).

판이 공황장애의 어원이 된 이유로는, 판의 외침이 가진 힘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판은 자신의 낮잠이 방해 받으면 큰 소리를 질러 상대방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이 능력을 올림포스 신들이 티탄 신족과 싸울 때 활용하여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기원 전 490년에 있었던 마라톤 전투(Battle of Marathon)에서도, 판은 아테네인들의 편을 들어 그들의 적인 페르시아 병사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켰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도와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마도 2~3배 이상 많은 페르시아 군대를, 200명도 안 되는 병력 손실만 입으며 크게 물리쳤기 때문에 무언가 신과 같은 존재의 도움이 있었다는 상상이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라톤 전투 상상화

이 외에도 제우스가 티폰(Typhon, Τυφῶν)이라는 하반신이 뱀인 거인과 싸울 때도, 판이 제우스를 돕기 위해 무서운 목소리를 내어 티폰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판에게도 안타까운 연애담이 있긴 합니다. 시링크스(Syrinx, Σύριγξ)라고 하는 님프에 대한 짝사랑 이야기이죠. 판은 시링크스에게 첫눈에 반하여 그녀를 쫓아다녔으나, 시링크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며 순결 서약을 한데다가 판을 싫어하기도 하여 피해 다녔습니다. 

판과 시링크스. By Peter Paul Rubens (1620-25)

그러던 어느 날, 판에게 붙잡힐 것 같은 상황이 되자 시링크스는 여신에게 부탁하여 갈대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판은 갈대를 잘라 최초의 팬플룻(pan flute)을 만들어 연주했다고 하며, 그래서 판을 나타낸 그림이나 조각상에는 팬플룻이 같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팬플룻을 연주하는 판(좌)과 주사기의 이미지(우). 출처-위키피디아

시링크스는 주사기를 의미하는 단어인 ‘syringe’의 어원이기도 한데요, 판이 싫어 도망다녔던 그녀가 일부 사람들이 꽤나 두려워하는 바늘공포증(Trypanophobia)과 관계된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