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면서도 서글픈 삶을 살았던 퀴클롭스, 폴리페모스의 이야기
외눈증이란 임신 중 태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눈이 두개로 분리되지 못하여 하나로 합쳐진 채 태어나는 현상에 대해 붙여진 병명입니다. 이 병명을 뜻하는 영단어는 ‘Cyclopia’인데, 이것의 어원 역시 그리스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다양한 이형(異形)의 존재들이 등장했으며, 그 중 하나가 외눈박이 거인들이었습니다.
외눈박이 거인족은 영어로는 싸이클롭스(Cyclopes), 그리스어로는 키클롭스 혹은 퀴클롭스(Κύκλωψ)라고 불리웠습니다.
최초의 퀴클롭스들은 앞서 나왔던 기간토마키아 시기에 활약합니다.
그들은 헤카톤케이레스와 형제로,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초기 신족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세 명이 바로 브론테스(천둥), 스테로페스(번개), 아르게스(벼락)라는 이름을 지닌 자들이었으며, 이들은 티탄족과의 전쟁, 그리고 기간테스들과의 전쟁에서 제우스 및 올림포스 신족들과 함께 열심히 싸워 승리를 얻는데 일조하였습니다(각주 1).
최초의 퀴클롭스들은 주로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보다 더 훌륭한 실력을 지닌 존재들로 여겨졌습니다. 어찌 보면 북유럽 신화의 난쟁이들이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놀도르 엘프나 드워프, 혹은 현대의 공학도 캐릭터의 효시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능력의 대단함과 유명세는 별개인 것인지, 정작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유명한 퀴클롭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형제가 아니라, 그들의 조카 손자 뻘이 되는 ‘폴리페모스(Polyphemus, Πολύφημος)’ 입니다.
폴리페모스는 일리아스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는 오디세이아(The Odyssey, Ὀδύσσεια: 각주 2)에 나오는 주요 빌런(Villain) 중 한 명이죠.
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과 이름 모를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퀴클롭스였습니다.
사실 어째서 폴리페모스에 초기 퀴클롭스의 자식이 아니라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는 설정이 붙은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숨겨져 있던 유전자가 발현한 것일 수도 있으며(각주 3), 온갖 신비한 괴물을 자손으로 많이 거느리는 포세이돈의 특성-바다라고 하는 거칠고 넓은, 미지의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인 만큼, 온갖 특이한 존재들을 다 잉태시킬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폴리페무스는 비극적인 연애담을 겪은 이후 외톨이처럼 조용한 섬에서 혼자 양을 키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연애담을 조금만 풀어보자면, 폴리페모스는 아름다운 바다의 님프인 갈라테아(Galatea, Γαλάτεια: 티탄 신족이었던 네레우스의 딸들인, 네레이드 중의 한 명)를 짝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름 스타일도 바꾸고 정중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등의 노력을 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갈라테아가 목축의 신인 판(각주 4)의 아들인 아키스(Acis or Akis: 아버지와 달리 매우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합니다)에게 푹 빠져있던 상태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폴리페모스는 질투에 휩싸이게 됩니다. 자신이 아무리 구애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그녀가,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느낌의 미청년에게 빠져 있는 모습에 분노와 절망을 함께 느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질투에 눈이 멀어 있던 폴리페모스의 눈에, 사이 좋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갈라테아와 아키스가 들어옵니다. 그 모습은 폴리페모스의 질투에 불을 질렀고, 결국 폴리페모스는 바위를 집어 던져 아키스를 죽였고, 이에 놀란 갈라테아는 바다로 도망쳐버립니다. 질투에 의한 살인이 벌어진 것이었죠.
폴리페모스의 비뚤어진 분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그 이후로는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아키스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분노를 계속 불태웠습니다. 퀴클롭스에서 식인 괴물이란 존재로 변모한 것이죠. 그래서 폴리페모스의 전설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초기 퀴클롭스들의 놀라운 손재주나 티타노마키아에서의 활약상은 뭔가 괴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높은 지능을 지닌 존재였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의해 망가질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그들의 이름과 어울리는 번개창이란 무기를 만들어내었죠. [그리스 신화 속 최강 빌런] 이야기 참조!
2. 그리스 측 영웅인 이타카의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귀한하기까지의 10년 여정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3. 포세이돈도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손자이며, 근친혼을 거듭하던 가계임을 생각해보면 이형에 대한 유전자가 어느 순간 발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사람에서 열성 유전인자에 의해 발생하는 유전병의 경우는 한 세대를 건넌 후에 발병되기도 하죠.
4. Pan, 로마에서는 파우누스(Faumus)라고 불리운, 머리에는 염소의 뿔이 돋아나 있고, 하반신은 아예 염소의 모습을 한 신입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판의 외침] 포스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