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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l 08. 2021

외눈증의 어원도 그리스 신화 속에: 후편

잔혹하면서도 서글픈 삶을 살았던 퀴클롭스, 폴리페모스의 이야기

앞 글에 이어서 계속 됩니다.


다시 오디세이아로 돌아와서, 식인 괴물이 되어버린 폴리페모스의 섬에 오디세우스의 일행이 머물게 됩니다. 이 때의 오디세우스와 그 일행들은 트로이를 떠난지 얼마 안 된 상태로, 귀향을 위한 기나긴 항해를 대비하여 보급품을 마련하고자 잠깐 들려본 섬이 식인 괴물의 본거지인 줄은 몰랐던 것이죠.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By 워터하우스(1891)


식량을 찾고자 헤메다가 실수로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들어갔던 오디세우스 일행은, 결국 동굴로 돌아온 폴리페모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고,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무슨 간식 마냥 잡아먹히게 됩니다.

한 번에 두 명씩 잡아 동굴벽에 던져 죽인 후 뇌수까지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찌되었던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그의 특기인 지혜를 짜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폴리페모스에게 매우 공손한 태도로 포도주를 주며 환심을 사는데, 자신의 비위를 맞추며 맛있는 음료를 주는 오디세우스에게 호감이 생긴 폴리페모스는 이름을 물어보게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사람 좋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은 우티스(Outis, Ουτις)라 답했는데, 이 단어의 뜻은 ‘아무도 아니다’였습니다.

술을 받아마시는 폴리페모스(좌)와 완전히 취해서 무방비하게 잠든 폴리페모스(우).


신나게 술을 받아 마시던 폴리페모스는 만취하게 되었고, 완전히 정신을 잃고 깊은 잠 들게 되었습니다. 이 틈에 오디세우스와 살아남은 부하들은 폴리페모스의 눈에 말뚝을 박아 눈을 뽑아내었고(그냥 죽이게 되면 동굴의 입구를 막은 돌을 치울 수 없어서 눈만 뽑게 됩니다), 폴리페모스는 눈이 뽑히는 통증에 놀라 일어났으나 이미 시력을 잃어서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을 바로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하는 오디세우스(The Blinding of Polyphemus). By Pellegrino Tibaldi (1527-1596)


통증에 울부짖으며 동료 퀴클롭스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누가 너를 다치게 했느냐?’라는 퀴클롭스들의 질문에 ‘우티스(아무도 아니다)가 이리 했다네!’라고 답하니, ‘아무도 아닌 존재가 한 것이라면 신의 힘이니 우리가 도와줄 수는 없다.’라는 이야기만 듣게 됩니다.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결국 아침이 밝아 동굴 밖으로 양과 함께 나가야했으나, 동굴 입구가 열린 틈에 인간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폴리페모스는 입구를 지키고 서서 자신의 양만 지나가게 했고, 양들 틈에 인간들이 섞이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양들을 한마리씩 쓰다듬고 보내주었습니다.

폴리페모스의 동굴 속의 오디세우스(Odysseus in the Cave of Polyphemus). By Jacob Jordaens (1635)


이 때 오디세우스는 또 다시 꾀를 내어, 자신의 부하들에게 양의 배 밑으로 매달리도록 지시하였고, 양의 배까지 만져볼 생각을 못했던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을 모두 놓치고 맙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의 끝에 겨우 도망친 오디세우스는 배에 올라타서 출항하고 나자, 폴리페모스를 약 올리고 싶어집니다.


어느 정도 섬에서 멀어지자, 해변가를 서성이는 폴리페모스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댑니다. 당신을 장님으로 만들고 탈출한 것은 바로 이 ‘오디세우스’이며, 당신은 나의 꾀에 당한 어리석은 존재라는 식의 내용을 담아서 말이죠.

오디세우스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틀림 없이 희대의 키보드 워리어나 어그로꾼으로 활약했을 겁니다.


물론 눈이 먼 것일 뿐 청력은 멀쩡한 폴리페모스는 그 소리를 듣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바위를 집어 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운 좋게도 배를 지나쳐 떨어지긴 했으나, 조금만 더 멀리 날라왔으면 배에 부딪혀 선체를 부수고 모든 선원을 물고기밥으로 만들 기세였으므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모두 달려들어 오디세우스의 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배를 향해 바위를 던지는 폴리페모스(원제: Odysseus and Polyphemus). By Arnold Böcklin (1827–1901)


사랑을 잃었을 때도(잃었다기 보다는 못 가질 것을 탐낸 것이지만), 눈을 잃었을 때도 바위를 던지는 파괴적인 행동으로만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던, 조금은 안타까운 괴물 폴리페모스였습니다.


입이 방정인 오디세우스는 이 때의 도발로 폴리페모스의 아버지인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서, 10년 간 바다를 헤매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실제 현재 알려진 트로이와 이타카 사이의 거리는 해로로 1000km 정도로, 현대의 선박으로는 20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고 합니다. 아무리 고대의 배가 느리다고 한들 10년 동안 걸릴 거리는 아니라는 것이죠.

성경의 출애굽기에서 사막을 40년 간 방황한 유대인들과 비슷한 정도의 헤맴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이 내리는 저주의 무거움과 오만함의 위험성에 대해 동시에 강조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싸이클롭스라는 영어 단어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명한 영화인 ‘엑스맨(X-men)’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눈에서 강력한 광선이 나가는 초능력자인 싸이클롭스는 엑스맨 시리즈의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이며, 그 초능력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수 고글을 쓴 모습이 외눈박이 거인과 닮아 그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엑스맨 영화 속 등장인물인 싸이클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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