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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l 12. 2021

두 개의 성별을 모두 가진 그리스-로마 신화 속 존재

반음양의 어원이 된 헤르마프로디토스

사람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성별을 지닌, 양성 생식(gamogenesis)을 하는 동물입니다. 그러나 드물게 두 성별의 생식 기관을 완벽하게 혹은 부분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상태를 반음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나타나는 형태에 따라 가성반음양(거짓남녀한몸증, Pseudohermaphroditism)과 진성반음양(참남녀한몸증, True hermaphroditism)이 있습니다. 


가성반음양은 염색체는 46,XX(여성) 혹은 46,XY(남성)로 가지고 있으나, 여러가지 다른 질환에 의해 자신의 염색체의 성별과 실제 나타나는 겉모습의 성별이 서로 다른 경우를 지칭합니다. 가성반음양의 경우에는 남성 가성반음양과 여성 가성반음양이 있습니다. 


남성 가성반음양의 경우는 염색체는 XY이고 몸 속에 정소(Testis)와 같은 남성 생식기관이 있으나 외음부는 여성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고, 여성 가성반음양의 경우는 외음부는 남성이 형태이나 염색체와 내부 생식기관(난소; Ovary)은 여성의 것입니다(각주 1). 


가성 반음양증(좌)과 진성 반음양증(우)


진성 반음양의 경우는 겉모습과 관계없이 내부에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관인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갖게 되는 경우입니다. 보통 염색체는 46,XX 형태가 가장 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배아 형성 과정에서의 문제로 모자이시즘(mosaicism)이 발생하여 XX 염색체를 가진 세포와 XY 염색체를 가진 세포가 섞이게 되고, 이에 따라 남녀 생식기관 조직이 혼재하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경우에는 염색체 형이 46,XX/46,XY의 형태를 지니게 됩니다(각주 2).



이 증상에 대한 기원 역시 그리스 신화인데,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tophroditos, Ἑρμαφρόδιτος)가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헤르마토프로디토스는 원래는 아름다운 남성이었으나, 그를 짝사랑한 샘물의 님프 살마키스(Salmacis, Σαλμακίς)에 의해 운명이 송두리째 뒤바뀌게 됩니다. 살마키스의 사랑은 매우 집착적이었는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그녀를 부담스러워하며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쫓아오던 살마키스를 피해서 도망치다가 어떤 샘에 도착한 헤르마토프로디토스는 그 샘에 들어가 땀을 식히기로 합니다. 

The Nymph Salmacis and Hermaphroditus by François-Joseph Navez (1829)


헤르마디토스의 방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 새 그를 따라잡은 살마키스는 샘에서 목욕 중인 그를 발견하자 자신도 옷을 벗고 샘으로 들어가 그를 꼭 껴안은 채 신들에게 소원을 빕니다. 그 소원이라는 것은 바로 영원히 그와 하나가 되게 해달라...였습니다.


기이한 소원을 잘 들어주는 그리스 신들 답게, 이 소원은 또 덜컥 이루어져 살마키스는 헤르마토프로디토스와 한몸이 되었고, 결국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몸안에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다 들어있게 되었습니다

헤르마프로디토스. 2세기, 로마, 사진 출처-https://art.khan.kr/entry/사랑의-절정이란-이런-것


자신의 변해버린 모습에 놀란 헤르마토프로디토스는 자신만 이런 모습이 된 것에 절망했는지 자신의 부모인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에게 부탁하여, 자신이 들어갔던 샘에 닿은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각주 3). 물귀신 작전 같지만, 본인만 그러한 특성을 지니고 살아갈 것이 너무도 괴로운 마음에 그러한 극단적인 소원을 빈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대에는, 그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의 성지라고 여겨지는 키프로스에서 아프로디테의 남성형인 아프로디투스(Aphroditus)가 숭배되다가 후에는 헤르마토프로디토스로 여겨졌으며, 그를 숭배하는 제사에서는 남자의 옷을 입힌 여자와 여자의 옷을 입힌 남자를 제물로 바쳤다고 전해집니다(각주 4).


중세 시대 들어서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갖춘데다가(각주 5), 연금술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헤르메스의 아들이기에 헤르마토프로디토스 역시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크게 숭배 받았다고 합니다. 연금학에서는 헤르마토디토스는 'Resbis'라는 이름으로 신성시되었는데, Rebis라는 단어는 '이중 물질(dual matter)'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키프로스에서 발견된 아프로디투스 조각상(좌)과 연금술에서 숭배되던 헤르마토디토스(우).-각주 6


그리고 현대에는 앞서 언급했던 반음양증이라는 의학 단어 안에 그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 각주

1. Pseudohermaphroditism. Richard E. Jones PhD, Kristin H. Lopez PhD, in Human Reproductive Biology (Fourth Edition), 2014

2. Bisexual Gonads: True Hermaphroditism. Claire Bouvattier, in Pediatric Urology, 2010

3.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다른 신이 내린 권능을 완벽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설명이 있어,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로서도 아들의 몸을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살마키스의 소원을 들어준 신은 누구였던 것일까요???

4. Three books of occult philosophy by Heinrich Cornelius Agrippa von Nettesheim (1993) p. 495

5. 연금술에서는 음양 혹은 남녀의 합일을 위대한 일로 보았습니다.

6. Resbis 그림: From Theoria Philosophiae Hermeticae (1617) by Heinrich Nol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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