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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2. 2022
의사와 주술사의 경계에 있던 멜람푸스 이야기(2)
최면 요법과 정신 치료를 통한 정신성 발기부전의 진단과 치료?
멜람푸스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티탄 신족인 프로메테우스의 직계 자손이고, 포도주와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의 전도사이자, 이집트에서 예언능력 등을 배워왔다는 설이 있는 멜람푸스는 일종의 신통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동물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림. 한 때 한국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
이 능력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한 전승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름 모두 훈훈한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멜람푸스가 어렸을 때 자기 집에 들어온 뱀들을 죽이려던 하인을 말렸는데, 그에 고마움을 느낀 뱀들이 은혜를 갚는 의미로 신비한 능력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멜람푸스가 수레에 깔려 죽은 어미뱀과 그 옆에 있던 새끼뱀들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 모습을 불쌍히 여겨 어미뱀은 묻어주고 새끼뱀들을 도와줬더니 그 뱀들이 은혜를 갚고자 멜람푸스의 귀를 핥아서 신비한 능력을 갖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림.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속의 한 장면. 해리포터는 뱀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인 ‘파셀텅’이라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멜람푸스의 경우는 모든 동물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긴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뱀’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드는 능력이죠.
두 이야기의 결론은 모두 뱀을 도와주고 능력을 받은 것인데, 우리가 듣는 전래 동화나 우화에 나오는 ‘은혜 갚은 동물’ 이야기 형태이기도 하고, 고대 사람들이 뱀이라는 동물을 신성하게 여겼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지팡이에 휘감긴 뱀이듯이, 비슷하게 치유 능력을 지닌 멜람푸스 역시 뱀에 관련된 설화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림.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와 그를 상징하는 뱀이 휘감긴 지팡이.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을 때려죽이긴(?) 했지만, 어쨌든 뱀에게서 약초를 이용한 치유 능력을 배우게 됩니다.
어쨌든 멜람푸스는 이 신비한 능력을 본인이 여러가지 어려움에서 벗어나거나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는 방법(각주 1)으로도 사용하지만,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데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 치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아르고스(Argos)의 왕자(각주 2)였습니다.
이 왕자는 매우 ‘이상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남성 불임(Male infertility)의 상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현대에도 불임은 많은 가임기 성인들에게 큰 문제이지만(각주 3), 남성성을 중시하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이 불임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크게 타격을 받는 문제였고, 왕권을 계승 받고 후대에 넘겨줘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왕자라는 사회적 위치에서는 더욱 더 크게 고민될 수밖에 없는 증상이었습니다(각주 4).
그림. 제우스와 테티스. 현대의 관점으로는 무책임한 바람둥이지만, 올림포스의 제왕이자 수많은 여성을 임신시켜 아이를 얻은 제우스는, 고대 기준으로는 뛰어난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 반대로 남성이 불임인 경우에는…
왕자의 불임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생하게 된 것인지 자세히 표현되진 않지만, 의학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사회에서 ‘남성’이 원인이 되는 불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때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 or Impotence)’에 의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현대 의학적으로는 남성 불임의 원인을 호르몬 문제, 고환(testis)의 문제, 정관(seminal duct)의 문제, 정자의 문제(절대적인 양이 적거나 비정상 정자가 많은 것), 기타 원인 등으로 세분화해서 진단하지만, 고대의 의술로는 위와 같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검사 방법이 없었을 것이고, 남성의 발기부전과 같은 증상이 있을 때 ‘남성 불임’으로 확실하게 진단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림. 남성의 다양한 불임 원인(출처-https://www.invitra.com/en/male-sterility/). 고환 이전(Pre-testicular)의 원인으로는 유전자 이상이나 호르몬 문제가 있을 것이고, 고환 자체의 기형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고환 이후(Post-testicular) 문제로는 정관의 이상 등으로 인한 정자 전달이 불가능한 상황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자 자체의 수가 적거나 비정상 활동성을 보이는 것도 남성 불임의 원인이 됩니다.
발기부전의 원인도 매우 다양하지만(각주 5), 멜람푸스가 치료하게 된 왕자의 경우에는 정신성 발기 부전(Psychogenic Erectile Dysfunction)이 그 원인으로 의심됩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된 근거는 이야기 속에 등장합니다.
멜람푸스는 이 왕자가 시름시름 앓게 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동물들과 대화하는 힘을 이용하는데, 이를 위해 황소를 잡아서 그 사체를 가지고 대머리수리(Vulture)를 불러냅니다.
황소의 고기를 뜯어먹던 대머리수리는 자신이 전에도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고 멜람푸스에게 이야기해주는데, 그 일이 바로 왕자의 발기부전의 원인과 상관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왕이 일종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멜람푸스처럼 소를 잡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소를 죽이던 칼에 피가 잔뜩 묻어 매우 미끄러웠기에 손에서 빠져나가며 옆에 있던 나무로 날아가 박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나무가 하마드리아데스(나무의 님프-요정 혹은 정령-를 이르는 말)가 깃들여 있던 것이었기에, 칼에 찔려 화가 난 그 나무의 님프가 왕자에게 저주를 내렸고 그로 인해 왕자가 이상한 병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각주 6).
그림. 나무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님프들. Dance of the Dryads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병의 원인을 알게 된 멜람푸스 그 나무에 꽂혀 있던 칼을 뽑아내어 끓는 와인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칼에 묻어 있던 녹을 긁어내어 와인에 섞은 후 열흘 동안 왕자에게 마시도록 하였습니다. 신비하게도, 그 와인을 마신 왕자는 님프의 저주에서 해방되었고, 결국 그의 불임(발기부전) 증상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왕자가 겪은 증상은, 신화적으로는 ‘님프에 저주’의한 것이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세 불안(Castration anxiety)에 의해 발생한 정신적 발기부전 증상에 가깝습니다.
왕자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소를 죽이는 잔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 모습에서 아버지가 그 칼로 자신의 성기를 자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결국 성인이 되었을 때 발기부전 증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라 분석해보면,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발기부전의 40% 정도는 심리적인 원인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각주 7). 특히 다른 기저 질환이 없는 젊은 남성에게 발기부전 증상을 경험할 경우에는 이와 같은 심리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와의 상담과 검사를 통해 정신적 발기부전이라고 진단되었다면, 정신치료(Psychotherapy), 커플 상담, 이완 요법, 그리고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각주 8).
멜람푸스가 왕자에게 녹이 섞인 와인을 먹인 것도 주술적이긴 하지만, 일종의 정신 치료로 볼 수 있습니다(각주 9). 환자에게 공포심을 심어줬던 칼을 나무에서 제거하고(나무에 꽂혀 있는 광경 자체가 거세 공포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칼을 씻어내고(기억 속 잔인한 광경을 지워내기) 그 녹이 들어 있는 와인을 삼키게 함으로서 불안을 제거하는(알코올에 의한 이완 효과) 효과를 이끌어냈던 게 아닐까요?
이 이야기에서 한가지 더 주목해볼 점은 처음 왕자의 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대머리수리를 불러내 이야기를 한다는 내용인데, 사실 이것도 신화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생각해본다면 일종의 최면 요법(Hypnosis)을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멜람푸스가 실제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이야기 속의 왕자가 받았을 심리적인 충격과 그 원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는 왕자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와 상담하여 그 병에 걸린 원인에 대해 상담해보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때 느낀 감정을 말하며, 그 원인(피 묻은 칼)을 제거하면 증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데 사용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최면 요법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독수리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왕자와 대화...).
그림. 최면 요법. 출처- https://www.pennmedicine.org/updates/blogs/health-and-wellness/2019/january/hypnosis
물론 고대 그리스에 최면 요법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멜람푸스가 지닌 ‘디오니소스 신앙’의 전도사라는 속성과 그 신앙이 신도들에게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멜람푸스가 현대적인 최면 요법은 아니라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능력을 발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멜람푸스라고 하는 신화 속 인물은 여러가지 의미로 정말 독특합니다. 의사(치유사)의 역할도 하고 주술사 같은 행위도 하며, 종교를 전파하기도 하고 동물과 소통하는 초능력도 보여주는 등 다채로운 속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었든 간에, 멜람푸스가 보여주는 신비함과 그가 이뤄낸 업적들(아르고스 왕국의 2/3를 얻고 디오니소스 종교를 퍼뜨리는 것과 같은)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최초의 의사들에게 가졌던 경외심이 녹아 있는 것도 같습니다.
<각주>
1. 고대 그리스 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서, 멜람푸스는 미다스(Midas) 왕(황금을 만드는 손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의 귀가 당나귀 귀 형태로 변했다는 사실을 ‘새’들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어 그 사실을 소문 내게 됩니다.
2. 첫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아르고스의 왕 프로이투스(Proetus)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고(대체 이 집안에는 무슨 마가 낀 것인지… 딸들은 미치고 아들도 아프고…), 혹은 프로이투스의 손자 뻘이었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왕의 아들이란 전승도 있습니다. 뒤의 전승이 맞다면, 아낙사고라스는 멜람푸스가 얻었던 왕국의 2/3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계승 받아 다스리던 중 자신의 아들의 상태가 이상하자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필라스(테살리아 지방의 도시)의 왕자인 이피클루스(Iphiclus)가 멜람푸스의 환자였다고도 합니다.
3. 남성 불임은 전체 불임 원인의 20~3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Ashok Agarwal, Aditi Mulgund, Alaa Hamada, and Michelle Renee Chyatte. A unique view on male infertility around the globe. Reprod Biol Endocrinol. 2015; 13: 37.
4. Georgios Tzeferakos and Athanasios Douzenis. Sacred psychiatry in ancient Greece. Ann Gen Psychiatry. 2014; 13: 11.
5.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기저 심혈관 질환, 흡연, 그리고 우울, 불안, 스트레스와 같은 다양한 심리적 원인 역시 발기부전 증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6. 이와 닮은 꼴의 이야기가 바로 ‘끝없는 배고픔의 저주’를 받은 에리식톤에 관한 것이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신화적인 믿음이 엿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