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너와집 한 채' 해설과 감상

- 사회적 임종의 여정

by 한현수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질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은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4』(조선일보 연재, 2008)



전원생활이 아니라 자기 유배

이 시는 안락한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마음이 세상의 끝까지 밀려가,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과정을 그립니다.

화자는 '길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주문처럼 외며 산골 두천의 버려진 너와집을 향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안식처가 아니라, 되돌아갈 길을 스스로 지워버리기 위한 ‘결별의 장소’입니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 너와집 : 강원도 산간 오지에서 붉은 소나무 널판(너와)을 기와 대신 지붕에 얹은 집

* 마장 : 말이 한 번에 갈 만한 거리(2~4Km)

* 말재 : 지명. 말이 넘기 힘들 정도의 가파른 고개. 말등처럼 생긴 고개

* 비탈바다 : 바다 같은 산비탈


능동적인 실종

화자는 길이 있을는지도 모를 두천의 너와집을 찾아들겠다고 하고서도, 더 깊은 곳(눈 아래 골짜기)으로 돌아다니며 '길을 잃겠네'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실수로 인한 조난이 아니라, 그만큼 깊은 곳을 다니며 세상과의 연결 고리를 끊겠다는 능동적인 의지의 표현입니다.

단풍이 붉게 '불 붙을 때', 그 불은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이 타오르는 고통의 시각화입니다. 썩은 나무껍질에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눈물을 흘린다는 진술은, 그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캐한 삶의 비애 한가운데 서 있음을 감각으로 증명합니다. 그는 결국 ‘집을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집 없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러 가는 것입니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질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은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은폐의 욕망 - 시간마저 비껴가는 곳

쪽문을 열면 환한 빛 대신 '더욱 쓸쓸해질 그늘'과 '문득 죽음'이 기다립니다. 이곳의 가을은 풍요가 아니라 '들풀처럼 버팅길(버티고 있는)'만큼 위태로운 생존의 현장입니다. 화자는 그런 곳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더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간 비껴' 길을 찾는다는 것은, 흐르는 세속의 시간에서 이탈하겠다는 말입니다. 거기서 화자는 단풍과 함께 불붙고자 합니다. 자연의 풍경(단풍)을 빌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고통과 소멸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그 뜨거운 비애를 산골짜기 전체와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두천의 산길, 그 골짜기를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는 행위도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그리고 나 또한 세상을 보지 않도록 경계를 두껍게 만드는 은폐의 욕망입니다.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 토방 :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조금 높직한 흙마루


가질 수 없는 평범함 - 상상 속의 행복

화자는 세상에서의 뼈아픈 슬픔, 잊을 수 없는 세월이 마음속에서 정리되면, 이 무너질 듯한 너와집 토방 앞마당에 누렁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겠다고 합니다. 거창한 복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생명 하나로 삶을 다시 붙들어 보려는 시도입니다.

세속에서 화자에게 사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나 봅니다(아주 잊었던 연모). 그런데 이제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를 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처녀는 실제로 화자의 여자가 아닙니다. '외간 남자'라는 표현은, 그런 처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남자가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마저 머리 위에 별처럼 띄워놓겠답니다. 상상만 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소박한 행복에 대한 동경과 그것이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이 동시에 울리는 애잔한 대목입니다.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영원한 귀로의 차단

처지(물색)가 그러하니 화자의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립니다. 은둔을 결심했지만, 마음의 평화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화자는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처럼 지명을 되뇌며 더 깊이 들어갑니다. 이 반복은 안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거는 되돌림 금지의 주문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언합니다.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 돌아서지 않겠네.' 이 비장한 결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아닙니다.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퇴로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섬뜩한 단절의 선언입니다.

결국 이 시는 한 채의 집을 노래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물러설 곳 없는 한 인간이 자신의 생을 가장 깊은 골짜기에 유기(遺棄)하는, 슬프고도 치열한 실존의 기록입니다.



사회적 임종의 여정

이 시는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사회적 자아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화자가 찾는 너와집은 실패를 ‘치유’하는 곳이 아니라, 실패와 상처를 그대로 껴안고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사라지기 위한 자리입니다. 단풍처럼 한때 온몸이 타오르다 결국 재가 되듯, 골짜기 '구름 연기' 속에 자신을 섞어버리고 싶은 생각을 시의 끝까지 유지합니다.

그래서 이 시는 전원의 찬가가 아니라, 실존적 도피와 비극적 안식을 가장 감각적인 언어(불·연기·매움·덜컹거림)로 밀어붙인, 쓸쓸하고도 치열한 ‘사회적 임종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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