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 끝까지 인간으로 마주하기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3』(조선일보 연재, 2008)
상가(喪家)에서 들은 내밀한 이야기
이 시는 화자가 ‘그의 상가’에 문상을 가서 '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육신의 기능이 다하여 아들에게 몸을 의탁해야 했던 아흔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뉘었던 환갑의 아들. 이 시는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인 배설의 순간을 말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험한 현장에서 가장 숭고한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발견해 냅니다. ‘쉬’라는 짧은 의성어 한마디가 어떻게 한 개인의 방을 넘어 우주적 정적(靜寂)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수치심을 덮어 주는 안심의 말
육체는 쇠락했으나 정신은 '초롱' 같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반신을 의탁해야 하는 상황은 몹시 난감하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아들은 이 마음을 알기에 위력이나 짜증 대신 '쉬, 쉬이, 어이쿠' 하며 농담 겸 어리광을 부립니다. 여기서 아들의 말은 어린아이에게 하는 배설을 재촉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안심의 가리개’이자,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따뜻한 주문입니다. 아들은 이 농담과 어리광을 통해 아버지의 무너진 체면을 지켜주는 사려 깊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몸의 부채’ 상환과 아버지의 배려
이 장면에서 아들의 돌봄은 도덕적 '효(孝)'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사무쳐'는 '깊이 스며들어'의 뜻입니다. 아버지를 안는 아들의 몸으로 아버지와의 뼈아픈 일체감이 '사무쳐 들어가듯' 느껴집니다. 또, '몸 갚아드리듯'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몸을 태어나게 하고 길러준 아버지의 몸에 대해 이제 아들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갚는 필연적인 부채 상환임을 뜻할 것입니다. 이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일이기에 뼛속까지 사무치는 것입니다.
아들의 품에 안긴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립니다. '더 작게, 더 가볍게' 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노쇠 현상이 아닙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무게를 줄이려는, 아버지로서의 배려의 능동적인 몸짓입니다. 서로를 위해 온몸을 다하는 이 순간이 눈물겹도록 애틋합니다.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따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생(生)을 두고 벌이는 조용한 줄다리기
'툭, 툭, 끊기는 오줌발'은 쇠락해 가는 육신의 징후이지만, 화자는 이를 '길고 긴 뜨신 끈'으로 표현합니다. 이 끈을 사이에 두고 부자의 마음은 엇갈립니다. 아들은 그 따뜻한 생명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이승의 땅에 자꾸만 '붙들어매려' 안타까워하고, 아버지는 이제 그만 그 끈을 '풀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오줌 누는 행위 속에 삶을 붙잡아 두려고 하는 자와 놓아 버리려 하는 자의 조용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인간적 교감의 우주적 승화
마지막 행의 '쉬!'는 시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게 만드는 결정적 한마디입니다. 앞부분 끝의 '쉬-'가 배설과 생명의 여운이라면, 이 '쉬!'는 모든 언어를 잠재우는 침묵의 언어입니다. 늙음과 병듦, 수치와 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 방 안에서 하나로 만날 때, 세계는 말이 사라진 거대한 정적이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몸으로 섞이며 만들어낸 그 지극한 사랑의 순간,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소거되고 오직 두 존재의 교감만이 우주를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늙음의 비애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비애를 인간의 존엄으로 바꾸는 말과 몸의 윤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쉬’는 기능적 소리에서 출발해 위로의 언어가 되고, 끝내 생과 사의 경계에서 생기는 고요로 확장됩니다.
'효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배설, 부축, 수치)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마주하는 일임을 보여주고, 모든 말들을 잠재울 만큼 엄숙한 일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