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목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42』(조선일보 연재, 2008) -
텍스트가 요구하는 시대의 독법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겨울나무가 봄나무로 변모하는 자연의 섭리를 다루는 생태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텍스트를 자세히 뜯어보면, 우리는 곧 자연의 질서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낯선 징후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붙잡는 것은 ‘벌(罰)’이라는 단어입니다. 자연에는 죄와 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자는 나무를 향해 '벌 받는 자세'로 서 있다고 묘사합니다. 이 순간,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순수한 자연의 숲이 아니라 죄와 벌, 감시와 억압이 작동하는 인간의 사회적 공간으로 의미가 바뀝니다.
또한, 나무는 묵묵히 추위를 견디는 대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며 현재의 상황을 치열하게 부정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식물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 거듭된 자기 부정은,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 부조리한 현실을 자각한 이성적 주체의 목소리를 닮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평화로운 성장이 아니라, ‘으스러지고’, ‘터지는’ 파열과 투쟁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은 결정적입니다. 이는 생명의 탄생 과정을 넘어, 무언가를 부수고 쟁취해야만 하는 혁명적 과업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시 곳곳에 박힌 ‘형벌’, ‘부정’, ‘투쟁’의 언어들은 텍스트가 스스로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현실의 맥락을 끌어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시의 ‘겨울’을 단순한 계절이 아닌 혹독한 시대로, ‘몸의 투쟁’을 구체적인 역사의 저항으로 읽어내는 것은, 시어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필연적인 독법이 될 것입니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거짓의 시대, 유일한 진실은 '몸'이다
화자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라고 단언하며 시를 엽니다. 나무에게 중요한 것은 잎이나 꽃 같은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지금 덩그러니 놓인 ‘몸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정신이나 영혼이 아닌, 만져지고 상처 입는 구체적인 물성(몸)만이 존재를 증명한다는 이 선언은, 공허한 구호가 난무하던 시대적 상황과 겹쳐지며 무게를 더합니다. 결국 진실은 추상적인 이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각하는 민중의 몸, 그 실체 안에 있다는 비장한 출발점인 셈입니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뿌리 박힌 생명, 도망칠 수 없는 시민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영하 13도, 20도’의 지상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박혀 있어 동굴로 피할 수도,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이 생물학적인 비극, 즉 도망칠 수 없는 숙명은 곧바로 당대의 현실로 치환됩니다. 살을 에는 듯한 정치적 혹한기(계엄, 독재) 속에서, 조국을 등질 수 없기에 그 살벌한 추위를 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던 시민들의 막막한 현실이 ‘지상에 뿌리 박힌 나무’의 모습 위로 오버랩됩니다.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나목에서 죄 없는 수난자를 보다
가장 시각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의 형상을, 화자는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포착해 냅니다.
이는 자연의 섭리 앞에 발가벗겨진 생명체의 근원적 고독을 보여줌과 동시에, 죄 없이 공권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시민들의 수난을 연상케 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그 벌 받는 자세는, 이유 없는 억압이 일상이었던 시대의 폭력성을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고발합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목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생존 본능이 역사적 각성이 되는 순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는 독백은 나무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부의 열을 올리는 생태적 반응입니다. 겉으로는 정지한 듯 보이지만, 나무의 내부는 살기 위해 뜨겁게 불타오릅니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거부는 시대적 맥락에서 ‘역사적 각성’으로 읽힙니다. 순응을 멈추고 '이 현실은 잘못되었다'라고 자각하는 순간, 나무의 뜨거운 수액은 단순한 체온을 넘어 부조리에 저항하는 혁명의 불씨로 변모합니다.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껍질을 깨는 고통, 억압을 뚫는 투쟁
나무는 이제 영하의 껍질을 영상의 기운으로 밀어 올립니다. 부피 생장을 위해 딱딱한 표피를 찢어야 하는 이 과정은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라는 처절한 통증으로 묘사됩니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이 자연의 산고(産苦)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시민들이 흘려야 했던 피와 땀의 역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껍질이 터지는 아픔 없이는 새순이 돋을 수 없듯, 으스러지는 희생 없이는 새로운 시대가 올 수 없음을 나무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혀처럼 내민 싹, 마침내 터진 함성
마침내 터져 나온 새싹을 화자는 붉고 뜨거운 ‘혀’에 비유했습니다. 정적인 나무가 가장 역동적인 감각 기관인 혀를 갖게 된 것입니다.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온 이 ‘혀’는 생명의 징후인 동시에,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되찾은 ‘발언권’이자 터져 나오는 함성입니다. 그렇게 나무가 하늘을 들이받으며 피워낸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억압을 뚫고 쟁취해 낸 자유의 깃발처럼 펄럭입니다.
생명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 '몸'
시인의 시선 속에서 나무와 인간, 자연과 역사는 둘이 아닙니다.'겨울을 어떻게 이기는가?'라는 생태적 질문과 '폭력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라는 사회적 질문은 ‘몸’이라는 하나의 해답에서 만납니다.
나무가 온몸으로 껍질을 찢으며 봄을 밀어 올리듯, 역사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몸과 고통을 통해서만 전진한다는 것. 이 시는 바로 그 뜨거운 생명의 원리를 통해,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가는 것’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