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바람의 말' 해설과 감상

- 죽음 너머의 재회와 화해

by 한현수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49』(조선일보 연재, 2008)



육신이 사라진 후

이 시는 삶의 건너편, 곧 ‘우리’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의 시공간을 전제로 한 작품입니다. 화자는 이승의 옷을 벗은 뒤에야 가능해지는, 영혼과 영혼이 마주하는 순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의 ‘바람’은 단순한 기상 현상도, 살아 있는 자가 흔히 기대는 감상적 비유도 아닙니다. 그것은 육신의 제약이 사라진 자리에서 당신에게 건네는 영혼의 인기척,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관계의 새로운 언어입니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우리가 모두 떠난 뒤 - 영혼으로 스치는 재회

화자는 '우리가 모두 떠난 뒤'라는 전제로 시를 엽니다. 이는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떠나는 사별의 구도가 아니라, 너와 나 모두가 생의 시간을 끝낸 뒤의 일임을 가리킵니다. 그때 화자는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생전의 말과 몸짓은 끝났고, 이제는 스침 같은 미세한 접촉만이 가능한 언어가 됩니다.

그런데 화자는 곧바로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라고 당부합니다. 그때 당신 곁을 스치는 것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연 현상으로 나를 치부하지 말고, 우리가 영혼 대 영혼으로 다시 만나는 순간임을 알아 달라는 간곡한 당부가 이 한 줄에 들어 있습니다.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저승에서의 화해와 해방

'나 오늘 - 심어 놓으려니'는 사후의 재회를 위한 준비가 살아 있는 현재에 이루어짐을 말해 줍니다. ‘그대 알았던 땅’이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우리가 다음에 저승에서 만났을 때는 살아 있는 지금은 이미 과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우리가 그 땅에서 만나서(알았던) 생전의 기억과 상처를 남겼음을 암시합니다. 화자가 말하는 '그림자 한 모서리'는 관계의 어두운 구석, 혹은 우리가 겪었던 고통의 흔적이 남은 자리인 것입니다.

화자는 바로 그곳에 꽃나무를 심어 두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이라는 가정은 막연한 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우리 둘이 이승의 시간을 끝내고 저승으로 함께 건너간 운명의 때를 가리킵니다. 화자는 그때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고 말합니다. 지금 심은 나무에서 핀 꽃이 흩어질 때, 살아서 겪은 관계의 고통, 서로에게 남긴 상처, 스스로 짊어졌던 무게도 영혼의 세계에서 꽃잎처럼 가벼운 형상으로 바뀌어 흩어지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도착하는 화해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저 세상의 말에 귀 귀울이고

화자는 이 일이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처럼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의 감각과 논리로 보면 영혼의 기대와 기원은 허황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묻습니다.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여기서 ‘지척의 자’는 눈앞의 것만 기준으로 삼아, 아득하고 먼 차원의 일을 함부로 재단해 버리는 이승의 잣대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이라고 말하며, 낡은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죽음 너머의 감각에 마음을 열기를 권합니다. 이때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은 이승에서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죽음 너머에서 영혼들이 주고받게 될 담백한 안부를 이쪽 말로 옮겨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라는 당부는 뼈아픈 현실 인식에서 나옵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당신은 생활의 무게에 눌려 자꾸만 지치고,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마음을 세우는 일부터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 고단함 속에서도, 언젠가 죽음 너머에서 다시 이어질 우리 관계의 언어—'바람의 말'만은 놓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것은 보증된 약속이라기보다, 끝내 그 방향을 잃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이자 기대입니다.



죽음 너머의 관계

이 작품은 죽음을 단절이나 소멸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람’이라는 매개를 통해, 육신이 사라진 뒤에도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고 관계를 이어 가는 과정을 상정합니다. 이 시는 죽을 자가 남겨진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내용이 아니라, 생의 굴레를 함께 벗은 영혼들이 꽃잎처럼 가볍게 서로를 스치며 나누는 투명한 대화의 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 시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서의 고뇌를 날려 버린 채 사랑과 인연이 모양을 달리해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장 절제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평 노트] 기존 해설과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무슨 까닭인지 대부분의 해설들은 이 시를 떠날 이가 사별 뒤 홀로 남을 이를 위로하는 노래로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는 문자 그대로 '너와 나가 모두 떠난 뒤'입니다. 작품의 무대는 모두의 육신이 소멸한 이후, 영혼들이 마주하는 사후의 시공간인 것입니다. 설정을 이렇게 보면 시 전체의 의미망이 근본적으로 다시 보일 것입니다.

2. 그에 따라 기존 해설에서 ‘바람’이 떠난 이를 떠올리게 하는 감상적 매개나 비유로 머물렀다면, 나는 '바람'을 이승의 옷을 벗은 영혼이 서로에게 건네는 실재적 인기척, 곧 죽음 너머에서도 지속되는 관계의 언어로 보았습니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후 소통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3. '꽃나무를 심는' 행위를 막연한 치유의 기원으로 처리하지 않고, 생전에 '알아서 얻은' 괴로움과 업보를 끝내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려는 기대나 기원으로 읽었습니다. 이로써, 작품의 정조가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숭고함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4. '지척의 자' 역시 단순한 세속적 욕심이나 현실주의의 표지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영혼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승의 인과율과 낡은 잣대로 보고, 시의 주제를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해방과 구원의 사유로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네이버블로그 현대시 전문 해설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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