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창을 밟고 오는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중 50』(조선일보 연재, 2008)
새 시대의 확신
이 시에서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닙니다. 화자는 봄을 ‘너’로 부르며 의인화하고, '온다'를 단정적으로 반복하여 도래의 필연성을 못 박습니다. 그런데 그 봄은 꽃길로 오지 않습니다. '뻘밭', '썩은 물웅덩이' 같은 현실의 진창을 기웃거리며, '싸움'과 '지침'의 과정을 거쳐 더디게 도착합니다. 그래서 이 시의 봄은 낭만적 위안이라기보다, 고난을 통과한 뒤 마침내 도착하는 ‘승리’에 가깝습니다.
이 시는 발표 당시의 현실(1970년대의 억압적 분위기, 자유를 향한 열망)과 관련지어, 대체로 봄을 새 시대·민주주의·해방(혹은 화해와 통일) 같은 가치로 확장해 읽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인은 1970년대에 노동 현장과 민중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시세계를 펼쳤고, 자유실천문인협회 창립에 가담했으며 유신체제를 거부하는 문학인 서명에 동참한 이력이 있습니다. 다만 시는 그것을 직접 말하지 않고, ‘겨울 같은 시간을 이겨낸 뒤 봄의 도래'라는 방식으로 상징의 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필연적인 도래
‘봄’의 도착을 내 마음의 상태와 무관한 필연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아도, 지쳐 희망을 놓아버린 때(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마저도 '너는 온다'고 합니다. 이 단정은 개인적 위로이면서, 역사적 흐름으로 읽을 때에는 억압이 길어져도 끝내 바뀔 것은 바뀐다는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고난과 역경의 과정
화자는 봄을 꽃밭이 아니라 '썩은 물웅덩이'도 기웃거린다고 합니다. 진짜 희망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뻘밭 같은 내 마음의 바닥, 우리 삶의 가장 냄새나는 상처들을 기웃거리고 보듬으면서 더디지만 확실하게 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한눈', '싸움', '나자빠져' 같은 속된 말투는 봄을 성스러운 구원자로 꾸미지 않습니다. 오히려 봄을 방황도 하고, 충돌도 하고, 지쳐 쓰러지기도 하는 존재로 만듭니다. 이 지점에서 ‘저항/민주주의’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싸움도 한 판'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라, 새 시대가 오기까지 겪어야 할 투쟁과 긴장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봄을 깨우는 매개입니다. ‘다급한 사연’을 싣고 달려와 흔들어 깨운다는 구조는, 잠든 봄(혹은 잠든 의식)을 흔드는 사건·소식·각성의 계기를 암시합니다. 이를 ‘선구자’로 좁혀 읽어도 되고, 더 넓게는 시대의 움직임(거리의 소리, 변화의 징후)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더디지만 확실한 도착
봄은 번쩍 순간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눈 부비며'는 겨우 눈을 비비며 깨어나듯, 변화가 서서히 온다는 체감입니다. 그러나 느림은 좌절이 아니라 도착의 리듬일 뿐입니다. '더디게'의 반복이 시간을 늘리고, '마침내'가 결론을 찍습니다. 역사적 의미로 확장해 읽으면, 변화는 늦고 굼떠도 결국 올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는 신념이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감격적인 조우
봄을 기다렸다면 보통은 환영해야 할 텐데, 화자는 도리어 몸이 굳습니다. '눈부셔'는 봄의 가치가 찬란하다는 뜻이면서, 그 앞에서 화자가 압도당해 무력해지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말은 '굳어' 예고도 선언도 못 합니다. 새 시대를 맞는 감격이 기쁨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고통과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전율로 그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주제의 집약
'가까스로'는 이 만남이 얼마나 벅찬지 드러냅니다. 봄은 ‘저절로’ 오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몸은 간신히 움직입니다.
결구의 '이기고 돌아온 사람'은 결정적입니다. 봄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시련을 통과해 승리한 인격체가 됩니다. 그래서 ‘저항/민주주의’로 읽는다면, 봄은 거저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투쟁 끝에 돌아온 승리로 이해됩니다.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강하게 붙이지 않더라도, 삶의 고난을 이겨낸 뒤의 회복과 귀환으로도 충분히 읽힙니다. 이 두 길을 시는 함께 열어 둡니다.
시대적 용기와 발화의 대담성
1970년대는 정치적 발언뿐 아니라 글과 출판의 자유도 크게 위축된 시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봄’을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새 시대의 도래로 읽게 만들고, 그것을 '온다', '마침내 올 것이 온다'처럼 단정으로 못 박는 일은 결코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시는 ‘희망을 말하고 싶어도 말이 굳는’ 현실을 스스로 드러내면서도, 끝내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승리의 어휘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 단정과 결구는 당시 독자에게 현실을 견디게 하는 격려이자, 권력의 겨울을 넘어서는 정신적 저항의 선언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미학을 넘어 시대적 용기라는 가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