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일하기 싫은 촌놈의 놀고먹기 판타지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결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5』(조선일보 연재, 2008)
노동의 곁눈질로 본 ‘나른한 풍요’
화자는 나른한 봄날 오후, 구장집 마당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품팔이꾼’으로 보입니다. 일은 하기 싫고 온몸은 노곤하기만 한데, 눈앞 평상에는 주인집 마누라가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화자는 그 태평한 모습을 곁눈질하며, 밀려오는 졸음과 부러움을 엉뚱하고도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냅니다. 제목 ‘봄바다’는 실제 바다가 아니라, 고단한 일꾼을 덮쳐오는 거대한 졸음과 욕망의 파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 했(었)지'를 반복하는 종결어미는, 훗날 친구들이 모여 구장집 마누라의 거대한 살집을 비롯한 지난 일들을 웃음거리 삼아 얘기하는 술자리의 한담 풍경이 생각나게 합니다.
'다라이만 했지'와 '묏등만 했지'의 반복도 화자의 말에 맞장구치는 친구들의 반응을 연상시킵니다.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능청’이 판치는 한담자리의 회상
'방뎅이는 다라이만 하고', '젖통은 묏등만 하다'라는 원색적인 비유는 점잖지는 않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뭐 특별한 성적 의도를 지닌 듯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봄날 힘들게 일하는 자신 앞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주인집 마누라가 못마땅해서 부리는 심술이자 투덜거림 정도인 듯합니다.
그 잠 결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봄바다(잠)’의 물결에 빠지고 싶은 욕망
'그 낮잠 결에 나도 따라 /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에서 ‘결’은 그녀의 잠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리듬이자 분위기입니다. 화자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옆자리가 아니라, 그녀가 빠져 있는 잠에 나도 빠져 그냥 널브러져 자고 싶다는 절실한 휴식의 욕망입니다. 대청마루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마당 구석의 작고 납작한 ‘채송화’처럼 땅바닥에 엎드려서라도, 저 아득한 코골이 소리(봄바다) 속에 ‘풍덩’ 빠져 힘든 일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것입니다.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인물’을 밑천 삼은 완벽한 ‘놀고먹기’의 판타지
화자의 상상은 한 단계를 더 넘어갑니다.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하여 '서울 부잣집 과부'를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마누라가 '헌 런닝구'를 입기는 했지만 구장집은 화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끼니 걱정이 없는 집일 터입니다. '셋째아들'이면 집안에 대한 책임도 거의 없을 것이고, 게다가 '미끈덩 인물도 좋'다면 제멋대로 살기에는 아주 최적의 조건입니다. 땀 흘려 일하는 지금의 투박한 몸으로는 어림없으니, 다음 생엔 자유롭고 수려한 외모를 무기 삼아 돈 많은 과부를 홀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놀고먹었으면(기둥서방) 하는 바람입니다. 생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능청스럽고 뻔뻔한 ‘무위도식’의 판타지이자 일하기 싫은 놈의 귀여운 소망입니다.
고단한 현실을 뛰어넘는 웃음의 힘
제목 ‘봄바다’는 실제 바다가 아니라, 화자를 덮쳐 오는 거대한 졸음이자, 놀고먹는 세계에 대한 동경입니다. 이 시는 봄의 정취를 곱게 노래하는 대신, '에라이, 나도 잘생기게 다시 태어나 여자 덕 좀 보고 펑펑 놀아 보자' 하고 뇌까리는 가난한 일꾼의 환타지를 보여줍니다.
그 허풍이 너무 뻔뻔해서 피식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단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고단한 현실을 잠시 뛰어넘게 하는 건강한 해학의 힘입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힘으로, 삶의 비애를 미워할 수 없는 웃음으로 바꿔 놓습니다.
[비평 노트]
기존 해설들이 이 시를 ‘토속적 음담이 섞인 봄날의 익살’ 정도로 읽었다면, 나는 땀 흘리는 품팔이꾼의 해학적인 ‘춘몽’으로 보았습니다. 웃음의 근거 또한 성적 호기심이 아니라, 노동과 놀고먹기 사이의 격차에서 오는 심술과 도피의 욕망이 됩니다.
1. 가장 큰 차이는 화자를 막연한 구경꾼이 아닌 ‘구장집 마당의 일꾼’으로 고정한 점입니다. 그래야만 안주인의 낮잠을 오래 쳐다보며 투덜거리고, 일손을 놓고 딴청을 피우다 잠결로 생각이 번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2. 이에 따라 '다라이', '묏등' 같은 비유는 음심이 아니라, 일하고 있는 내 앞에서 자고 있는 집주인을 향한 ‘능청스러운 빈정거림’이 됩니다. 그녀의 육중함은 ‘풍요가 허락한 게으름’이고, 화자의 말투는 말로라도 주인을 놀려 보려는 일꾼의 입담인 것입니다.
3. ‘봄바다’의 의미 또한 성적 은유가 아닌 ‘잠의 파장’으로 구체화됩니다. 화자가 원하는 것은 옆자리가 아니라, 코골이 소리(결)에 휩쓸려 노동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때 코골이는 졸음의 파도가 되고, ‘봄바다’는 잠기운이 밀려오는 심리적 풍경으로 완성됩니다.
4. 마지막으로 환생을 신분 상승이 아닌 ‘무위도식하는 한량의 꿈’으로 규정했습니다. 화자는 과부의 돈으로 놀고먹길 원하기에, 과부가 매달릴 만한 '미끈덩 인물'은 그 꿈을 위한 필수 밑천이 됩니다. 이로써 시는 노동의 비애를 도덕으로 포장하는 대신, 뻔뻔한 춘몽의 해학으로 유쾌하게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