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의자' 해설과 감상

- 삶이란 그늘에 의자를 내놓는 일

by 한현수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6』(조선일보 연재, 2008)



허리의 통증이 바꿔 놓은 세계의 윤곽

이 시의 화자는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갈 채비를 하는 어머니 곁에 서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의 통증은 단순한 노환의 증상을 넘어,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이 됩니다.

몸이 아파지면 사람은 '어디에 기대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때부터 세상은 전부 ‘의자’로 보입니다. 여기서 의자는 단순히 편리한 가구가 아니라, 존재를 잠시라도 버티게 하는 받침입니다. 시는 이 의자 이미지를 통해, 사람과 생명이 서로를 받쳐 주며 살아가는 상호 부양의 감각을 생활어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통증이 일깨운 역지사지의 시선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니까 /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여야’는 남도 사투리의 평서형 어미로 ‘보여/보이더라’의 의미일 듯합니다. 즉, 통증을 겪고 나니 세상이 저절로 그렇게 보인다는 체험을 진술한 것입니다.

허리가 아프니, 앉을 곳, 기대어 쉴 곳, 받쳐 줄 곳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식으로 세계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그래서 꽃과 열매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엇엔가 기대어 자기 몸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존재의 자세가 먼저 들어오는 것입니다. 통증은 삶을 왜소하게 만들지만, 이렇게 남의 고단함을 알아보게도 해 줍니다.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가족이라는 의자

어머니는 주말에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라고 합니다. 큰아들인 화자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고 말합니다. 이때 의자는 부모가 자식에게서 얻는 정서적 의지, 즉 마음 놓을 자리입니다. 동시에 이 말에는 무게도 은근히 실려 있습니다. ‘좋은 의자’였다는 칭찬은 곧 계속 그 자리에 있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랑과 책임이 한마디 안에 겹쳐 들어가며, 가족 관계의 따뜻함과 부담이 함께 드러납니다.

이런 말들이 눈물겨운 고백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생활 말투로 툭 던져짐으로써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식물에게까지 확장되는 배려

어머니는 침을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를 깔고, 호박 밑에 똬리를 받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라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의자’는 앉는 자리가 아니라 받쳐 주는 자리입니다. 지푸라기와 똬리는 열매가 땅의 습기와 무게에 상하지 않도록 돕는 작은 받침입니다. 어머니에게 밭작물은 소유물이 아니라 '식구'입니다. 그렇게 돌봄은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작물에게까지 넓어집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상호 의지가 사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는 것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삶의 의미와 평화, 의자를 내놓는 배려

마지막에 어머니는 '싸우지 말고 살아라'라고 당부하며,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일이 '별거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혼 또 인생을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의자는 열렬한 환대가 아닙니다. 아내가 또 누군가가 지쳤을 때 잠시 앉게 해 주고, 말없이 기대어 쉬게 해 주는 은근한 마음의 자리입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평화는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리를 내어 주는 소박한 실천입니다. 어머니는 인생을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서로에게 ‘의자’를 내주는 방식으로 완성되는 삶이라고 다시 알려줍니다.



생활어가 끌어올린 환대의 철학

이 작품의 힘은 어려운 관념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습니다. 투박한 구어체와 사투리의 리듬 속에서 ‘사랑’과 ‘희생’ 같은 말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의자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그 가치들을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의자는 처음엔 '내가 앉고 싶은 자리'처럼 보이지만, 시가 끝날 무렵에는 '남을 받쳐 주기 위해 내놓는 자리'가 됩니다. 이 변화의 동선 속에서 작품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희미해지기 쉬운 배려의 마음을 다시 일으킵니다.

결국 좋은 삶이란, 그늘 좋고 풍경 좋은 곳에 누군가가 잠시 머물 의자 몇 개를 내어 놓을 줄 아는 삶입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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