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리 이전에 내상이 두려워서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7』(조선일보 연재, 2008)
무심코에서 통증으로
이 작품의 화자는 사과를 깎아 먹는 평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화자가 포크 대신 칼끝으로 사과를 찍어 올려 입에 넣는 무심한 몸짓이, 곧바로 기억의 스위치를 켜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기억 속의 자신을 성찰하지만, 그 성찰은 ‘반성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과 깎기 → 칼로 먹기 → 언니의 말 → 입장 바꿔 보기 → 자책이 ‘무심코’ 하는 행위들의 연결로 이어지면서, 화자는 생각보다 먼저 그리고 깊이 통증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니의 말은 원래 '칼로 먹으면 네가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경고입니다. 즉 ‘내가 받을 상처’에 대한 말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 경고를 ‘당함’의 문제로 말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칼로 먹이는 사람'을 떠올리고 관심을 내가 주는 상처와 내가 받는 아픔 쪽으로 꺾어 버립니다. 이 시의 깊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깁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한 기억을 옳고 그름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화자 자신에게 먼저 아픔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감각의 정밀함 - 무심한 행위에서 사건 만들기
사과 껍질, 흐르는 즙, 스며드는 향을 세밀하게 펼쳐 보이는 까닭은 단순한 기교가 아닌 듯합니다. 현재의 감각을 또렷하게 고정해 두어야, 뒤에 따라오는 기억도 ‘생각’이 아니라 몸에서 되살아나는 일처럼 올라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정밀한 감각은 결국 손끝과 칼끝으로 모여서, ‘무심코’라는 작은 동작 하나가 큰 통증을 열어젖힐 준비를 하게 됩니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무심코 한 몸짓 - 칼끝으로 먹는 일이 '문'을 연다
화자는 사과를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찍어 올려 입에 넣습니다. 여기서 ‘무심히’가 중요한 듯합니다. 상처는 늘 악의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흔한 상처는 익숙함 속에서 조심이 풀리는 무심함 때문에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자는 그 무심함이 어떻게 기억과 자책을 불러내는지, 가장 일상적인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언니의 말 - '당할 상처'가 '줄 상처'를 깨우는 역전
언니의 말은 당할 피해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그 말을 듣고, ‘내가 당할 불행’보다 ‘내가 남에게 줄 상처’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래서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칼의 의미는 식탁의 도구에서 관계의 칼날로 바뀌게 됩니다.
화자의 불안은, 불행을 당할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불행을 줄 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화자도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로 바뀌게 됩니다.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윤리적 결론이 아니라, 불안의 주석
이 말은 단정이 아니라 추측입니다. '~겠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말끝이고, 괄호는 그 말끝을 더 낮추어 줍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가해자도 이해하자'와 같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라, '누군가를 아프게 하면 내 가슴도 결국 다칠 것이다'라는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가해자의 심리를 분석해서 정리하는 말이 아니라, 그 결과 아프게 한 사람이 겪게 될 필연적 아픔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스쳐 가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자백 - '왜 그랬을까'라는 비명
성찰은 일반론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화자는 자신이 ‘당할’ 불행이 아니라, 자신이 칼날이 되었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왜 그랬을까……'는 논리적인 반성문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준 상처가 되돌아와 나를 찌를 때 터져 나오는 비명에 가깝습니다. 화자의 말은 도덕적인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으로 자신이 내뱉게 되는 아픔의 신음인 것입니다.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행위의 반복과 '-건데' - 무디지 못한 자의 숙명적 불안
화자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습니다. 이것은 결심의 실행이라기보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계속 확인하게 되는 상태일 것입니다. 마지막 괄호의 '-건데'도 각성이 아니라 걱정의 말투입니다.
젊음은 앞으로 상처가 생길 시간이 많다는 예보이지만, 화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받을 상처’보다 ‘줄 상처’와 그로 인해 자신이 입을 내상인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있는데, 그걸 무심하게 넘길 만큼 무뎌지지도 못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플까'라는 막막함이 '-건데'라는 말끝에 남습니다.
상처의 굴레 - 윤리가 아닌 아픔으로 남는 인간 운명
이 작품은 ‘무심코’ 저지르는 가해와, 그 때문에 ‘유심하게’ 앓아야 하는 내상이 엮인 인간 운명의 독백입니다. 화자가 마주한 진실은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서 도망치기 어렵다는 확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깊이는 상처를 윤리로 정리하지 않고 가슴앓이로 남겨 두는 데 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줄 상처와 그로 인한 아픔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기적 공포’가 아니라, 나와 타자가 엉켜 있을 수밖에 없는 삶이 낳는 관계적 불안이 이 작품의 핵심 정서인 것입니다.
[비평 노트]
1. 성찰의 동력과 전개 방식(무심코의 연쇄)
기존 해설들이 화자의 ‘의지적 반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나는 사과 깎기→칼로 먹기→언니 말→입장 전환→자책이 모두 ‘무심코’의 도미노로 이어지며 성찰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2. 시선의 방향
언니의 말, 즉 ‘내가 당할 불행’에 머무르는 해설이 많습니다. 나는 화자가 그 말을 곧장 ‘내가 줄 상처’ 쪽으로 비틀어 받아들여, 작품이 ‘훈계(윤리)’가 아니라 가해 기억이 남기는 내상(가슴앓이)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3. 불안의 실체
마지막 부분에 화자가 보이는 불안을, 받을 상처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남에게 줄 상처와 그로 인해 가해자인 화자가 안게 될 내상(內傷)에 대한 근심으로 보았습니다.
4. 젊음의 재정의
화자가 젊음을, 상처를 줄 시간이 많이 남았음과 그 사실을 두려워하는 예민함 자체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