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 해설과 감상

- 존재의 근원적 비애, 인연과 관계의 소멸

by 한현수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60』(조선일보 연재, 2008)



상실의 배경 위에 덧대진 사연

화자는 제삿날을 맞아 고향에 자리한 큰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곳은 자신의 뿌리가 있는 곳이지만, 이제는 늙고 쇠락해가는 친척들이 모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란 단순한 불안이 아닙니다. ‘제삿날’이 불러오는 죽음과 허무의 공기 위에, 친척들이 보여주는 끝자락 삶의 비애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서러운’이란 표현으로 보아 가슴에 깊은 응어리가 남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랑조차 무심한 세월에 꺾였거나, 죽음이 얽혀 있는 영원한 이별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바닥에 이미 관계와 인연의 상실에 대한 비애가 짙게 깔려 있기에, 화자는 친구의 이야기를 단순한 연애담으로 흘려듣지 못합니다.

그렇게 화자는 ‘인연과 관계의 소멸’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비애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고독한 동행과 존재론적 눈물

화자는 친구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이라고 말합니다. 제사의 상실감과 친척들의 늙고 쇠락한 분위기에 젖은 화자의 마음이, 친구의 서러운 사연과 공명하여 비애의 깊은 곳으로 이끌려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라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따스하지만 곧 기울어버릴 가을 햇살은 위로가 아니라, 화자의 고독을 더 또렷하게 비추는 배경입니다.

그렇게 제삿날의 정서 속에 타인의 비극을 내면화하며 걷다 이른 곳이 '등성이'입니다. 이곳은 지형적인 산마루이자,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정서의 분수령이 됩니다. 그 높은 곳에서 화자는 눈물이 흐릅니다. 이 눈물은 단순히 제사나 친구의 일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이든 삶이든, 모든 인연은 결국 저물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존재론적 비애’를 새삼 다시 깨닫는 순간의 반사적인 눈물입니다.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江)을 보것네.


쇠락하는 인간의 불빛, 타오르는 자연의 울음

화자의 시선은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에서 '해질녘 강물'로 이동합니다.

여기서 ‘모이는 불빛’은 단순히 전등의 빛이 아닐 것입니다. 제삿날은 화자를 포함해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고, '불빛'도 다음 행의 '해질녘 울음(노을. 인생의 황혼)'과 구조적으로 대응합니다. 그러니 '모이는 불빛'은, 제사를 위해 모인 그러나 이제는 생명력이 다해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노년의 친척들을 은유할 듯합니다. 그 불빛은 따뜻함보다 서글픔을 줍니다. 의식이 끝나면 흩어질 불빛이고, 머지않아 저 제사상 위의 존재가 될 운명의 불빛들이기 때문입니다.

화자의 시선은 이 ‘사람의 불빛'에서 ‘자연의 강물’로 넘어갑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의 개별적 비애가 존재의 근원적 비애로 확대되는 순간입니다. 바로 여기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라는 표현이 절창으로 살아납니다.

화자는 강을 보고 슬픔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친척들과 친구에게서 느낀 내면의 울음을 강물 위에 투영하여, 슬픔이 붉게 타오르는 시각적 형상으로 치환해 낸 것입니다. 즉, 가을강은 화자의 비애가 빌려 쓴 ‘풍경의 얼굴’인 것입니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것네.


마모(磨耗)되어 침묵이 된 슬픔, 그 증언

마지막 연에 이르러 화자는 '저것 봐, 저것 봐'라며 탄식합니다. 이것은 감탄사가 아니라, 마음속의 추상적인 허무가 눈앞의 강물 위에서 구체적인 법칙으로 입증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증언의 손짓입니다. '네 보담도 내 보담도'라는 구절 역시, 너와 나의 사연을 넘어선 ‘인연의 보편적 운명’으로 시선을 끌어올리는 장치입니다.

강물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 같던 젊은 날의 생명력은 사라지고, 이별 후에 터져 나오던 '울음'마저 세월의 물살에 깎이고 녹아내립니다. 이것은 치유가 아닙니다. 너무 많이 울고 너무 오래 흘러서, 이제는 소리 낼 힘조차 남지 않을 만큼 감정이 마모(磨耗)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는 것이 '소리죽은 가을강'입니다. 이것은 평온한 강이 아니라, 울음마저 닳아버린 뒤에 남는 깊은 탈진의 침묵입니다.

화자가 '처음 보것네'라고 말한 것은, 익숙했던 고향의 강에서 난생처음으로 ‘소멸 쪽으로 기우는 내 운명의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울음 끝에 닿는 침묵의 바다

결국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슬픔의 ‘소리’가 아니라 슬픔의 ‘깊이’입니다.

산골 물소리(기쁨)에서 시작된 인생은 통곡(울음)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는 적막(침묵)이 되어 바다로 갑니다. 화자는 늙어가는 친척들의 모습과 친구의 실연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그 모든 인연이 흘러가 닿게 될 침묵의 바다, 그 서러운 종착지를 가을강이라는 풍경으로 우리 앞에 펼쳐 놓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이야말로, 이 시의 비애가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며 보여주는 숭고한 미학인 것입니다.



[비평 노트]

관념적, 추상적 해석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여러 번 다시 읽은 뒤에 '제삿집에 모이는 불빛'을 '쇠락해 가는 노년의 친척들'로 비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의 뜻이 와닿아 작품의 정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막연한 정취가 아닌 ‘쇠락(衰落)의 현장’에서 출발했습니다. 기존 해설들이 1연의 ‘마음이 못 앉는’ 상태를 단순히 가을의 쓸쓸한 분위기 탓으로 돌렸다면, 나는 ‘늙고 병들어가는 친척들이 모인 제삿날'이라는 구체적이고 슬픈 현장을 원인으로 잡았습니다. 화자의 불안은 막연한 감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생명력이 꺼져가는 혈육들을 보며 느끼는 실존적인 전율입니다.

둘째, ‘불빛’을 물리적 조명이 아닌 ‘저물어가는 생명’으로 읽었습니다. 2연의 '모이는 불빛'을 단순히 제사상을 밝히는 전등이나 촛불로 보지 않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모여든 노년의 친척들을 빗댄 비유로 해석했습니다. 이로써 ‘불빛’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머지않아 사라질 운명을 가진 ‘인간의 서글픈 초상’이 되어 시의 비극성을 극대화합니다.

셋째, ‘개별적 상실’에서 ‘보편적 법칙’으로 나아가는 위계를 보았습니다. ‘친구의 실연’과 ‘친척들의 쇠락’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개별적인 상실의 사건들로 규정하고, 화자가 이 아픔들을 통해 인생 일반의 존재론적 비애를 ‘가을강’으로 묶어내는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즉, 화자의 시선 이동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작은 슬픔들에서 거대한 운명의 흐름으로 나아가는 필연적인 도약입니다.

넷째, 풍경이 감정을 만든 게 아니라, 비애가 풍경을 빌린 것입니다. 화자가 강을 보고 슬픔을 느낀다는 기존의 수동적 해석을 거부했습니다. 내면에 꽉 차 있던 죽음과 이별의 비애가 먼저이고, 그 비애가 강물 위에 투영되어 ‘울음이 타는’ 얼굴을 얻게 되었다는 주체적인 형상화의 원리를 규명했습니다.

다섯째, 침묵을 평온이 아닌 ‘마모(磨耗)된 탈진’으로 재정의했습니다. 결구의 '소리죽은' 상태를 상처의 치유나 달관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의 소리가 울음이 되고, 그 울음마저 긴 세월 흐르며 닳고 닳아 더 이상 소리 낼 힘조차 남지 않은 ‘탈진의 침묵’으로 해석하여, 슬픔의 깊이를 현대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으로 보았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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