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일찍이 나는' 해설과 감상

- 나는 과연 존재하는가

by 한현수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8』(조선일보 연재, 2008)



[비평 노트] 기원 없는 발생과 실체 없는 소문으로서의 실존

이 작품이 응시하는 것은 한 개인의 비극적 생애가 아니라, 인간 존재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무근거성(無根據性)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을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에 비유하며 그 연속성과 목적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가 마주하는 진실은 그 뿌리가 내려앉을 지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어떤 필연적 의미나 초월적 의도 속에서 탄생한 주체가 아니라, 생물학적 우연성 속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발생한 하나의 '현상'일 뿐임을 선언합니다. 자신을 부패한 사체나 곰팡이와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비유는, 문명이 부여한 존엄의 외피를 벗겨냈을 때 드러나는 인간 실존의 기저가 목적도 근거도 없는 ‘무(無)’의 자리임을 폭로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존재의 지반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언어 또한 더 이상 실체를 담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사랑'이나 '행복'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단어들이 있고, 사회는 그러한 언어를 통해 개인의 존재를 기록하고 승인합니다. 그러나 화자에게 그 언어들은 실존을 설명해 주는 이름이 아니라, 실체 없는 존재 위에 덧씌워지는 공허한 표식에 불과합니다. 타인이 자신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해의 선언이 아니라 무근거한 존재를 서둘러 의미의 체계 속에 편입시키려는 형이상학적 폭력으로 감지됩니다. 그래서 화자는 어떠한 명명(命名)도 거부하며 스스로를 맥락 없는 소음의 상태로 남겨 둡니다.

이러한 인식의 끝에서는 ‘살아 있음’이라는 사실조차 확정된 실재로 남지 못합니다. 생존은 세계 속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는 사건이 아니라, 증명할 길 없이 떠도는 하나의 이야기, 곧 실체 없는 소문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화자 개인의 고립이 아니라, 자아란 본래 타인의 시선과 언어 속에서 구성되는 불안정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존적 통찰입니다. 화자는 인간 존재가 기원도 목적도 없는 ‘텅 빈 중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가식적으로 부여된 존재의 무게를 제거하고 ‘영원한 루머’라는 역설적인 언어로 그 서늘한 진실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

결국 이 작품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를 묻는 시가 아니라, ‘나는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인 것입니다.



존재의 근거가 지워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자기 인식

이 작품의 화자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한 인간으로 승인받는 과정을 거치기보다, 태초부터 어떠한 질서나 목적도 없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 그 자체의 상태를 응시합니다. 그는 자신을 구체적인 인격체로 형상화하는 대신, 생명력이 소멸하거나 가치가 사라진 사물들에 투사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불행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내에서 존재의 정당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실존의 본질적 체험을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를 이해하는 핵심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어떠한 형이상학적 긍정도 확보하지 못한 채, 존재의 시원(始原)에 놓인 ‘공허’를 대면하고 있는 화자의 상황에 있습니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존재 이전의 무(無)로 회귀하는 자기 인식

화자는 자신을 생명의 범주에서 밀어내고, 부패하거나 방치된 대상들에 자신을 비유합니다. 이는 화자가 무가치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자책이 아니라, 존재가 어떠한 본질적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물질’로서만 기능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자아를 설명하기보다 이미 오래전에 폐기된 것과 같은 상태로 자신을 규정함으로써, 화자는 존재의 출발점 자체가 필연성이 없는 우연의 산물임을 폭로합니다. 여기에는 자아를 둘러싼 모든 관습적 장식을 벗겨내고 존재의 맨살인 ‘무’를 드러내려는 근원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원 없는 실존이 마주하는 생존의 관성

여기서 말하는 ‘보호와 양육의 부재’는 특정 개인의 성장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정의하고 지탱해 줄 형이상학적 토대가 전혀 없는 실존의 조건을 의미합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에 던져진 존재(피투성)이며, 화자는 그 근원적 고립을 부모의 부재라는 상황으로 시각화하여 표현합니다.

이어지는 비천한 생존의 묘사들은 존재의 의미가 소멸한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는 생명 그 자체의 기계적인 지속을 보여줍니다. 이는 존재를 지탱할 본질적 명분이 사라진 자리에도 '살아남기'라는 생물학적 관성만이 징그럽게 작동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며, 상위의 근거가 부재한 생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상태'의 연속일 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스침뿐인 관계와 가치 언어의 무력함

이제 시선은 타자와의 관계로 확장되지만, 결코 결합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의 만남을 찰나의 스침으로 인식하는 화자에게, 서로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존재의 본질적 고립을 망각한 오만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타인을 거부할 뿐 아니라, 타인이 들고 오는 ‘행복’이나 ‘사랑’ 같은 실체적인 언어들이 자신의 무근거한 실존에는 결코 닿을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러한 가치 언어들은 화자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차라리 완전한 단절을 선택함으로써, 실존을 가리는 허구적인 의미 체계에 편입되기를 거부합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 있음조차 확정할 수 없는 존재의 실재성 회의

마지막에 이르러 화자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마저 확실한 진실이 아니라 떠도는 소문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생물학적 생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실체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증명되지 않는 실존적 공백을 표현한 것입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현상이 곧 존재의 확실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깨달음 속에서, 삶은 견고한 ‘사실’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루머’가 됩니다.

이로써 시는 자기부정에서 출발해, 존재의 실재성 자체가 거대한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의 정점에 도달합니다.



존재의 바닥을 통과해 획득한 현대적 자아의 언어

이 작품은 인간 존재를 긍정하거나 미화하려는 서정의 전통을 거부하고, 존재의 근거가 붕괴된 상태 자체를 실존의 본질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자신을 고양된 주체로 세우지 않고, 세계와의 단절과 관계의 허구성을 극단화함으로써 현대인이 직면한 근원적인 불안을 파괴적인 언어로 형상화합니다.

이러한 자기 해체의 과정은 단순한 파멸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들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아무것도 아님’을 유일한 진실로 삼는 새로운 자아 인식을 보여줍니다. 그 점에서 이 시는 개인의 우울을 넘어, 존재의 근거 없음이라는 비극적 조건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현대시의 정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네이버블로그 현대시 전문 해설과 감상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태일 '국토서시(國土序詩)' 해설과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