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살아 내야 할 땅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77』(조선일보 연재, 2008)
어둠의 70년대, 국토를 몸으로 다시 붙잡는 서시
이 시는 ‘우리 땅이 아름답다’는 찬가가 아닙니다. 1970년대의 억압적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발 딛고 사는 이 땅을 어떻게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것인가를 묻는 시입니다. 화자는 국토를 멀리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닳는 발바닥, 타는 숨결, 야윈 팔다리 같은 몸의 감각으로 국토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마치 거친 벌판을 맨발로 건너온 듯한 생명력이 남습니다. 그 힘은 반복되는 말투에서 분명해집니다. 국토를 밟고, 하늘 아래를 서성이고,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니는 일은 취향이나 선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발바닥, 국토와 만나는 자리
시의 시작은 ‘발’입니다. 발바닥이 닳고도 다시 새 살이 돋을 때까지 땅을 밟는다는 말은, 고난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실천을 뜻합니다. 국토는 눈으로 감상하는 풍경이 아니라, 마모되는 몸으로 확인되는 현실입니다. 상처와 재생이 반복되는 그 자리에서, 화자는 '우리는 결국 이 땅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숙명을 받아들입니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 소진과 재생의 자리
다음으로 화자는 숨을 이야기합니다. 숨이 다 타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살아가는 일이 거칠고 위태롭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끝에서 '새 숨결'이 열린다고 말함으로써, 이 시는 절망에 머물지 않습니다. 희망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버티는 과정 속에서 간신히 열리는 재생입니다. 삶이 혹독할수록, 숨은 더 뜨겁게 타고, 그만큼 새 숨의 가능성도 더 절실해집니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야윈 팔다리로 휘젓기
화자의 몸은 억세지 못합니다. 야윈 팔다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한껏 휘젓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상황이 어렵다'는 고백과 '그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시의 생명력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약한 몸일지언정 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에서 나옵니다.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슴으로 맞대기, 공동의 감정 윤리
화자는 슬픔도 기쁨도 가슴으로 맞댄다고 합니다. 이 말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공동체가 겪는 삶의 무게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입니다. 또한 ‘가락’은 단지 민요의 장단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의 리듬과 역사적 호흡입니다. 화자는 그 리듬 속을 ‘거닐’며, 개인의 삶을 공동의 삶과 겹쳐 놓습니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작고 소외된 존재들의 끈질긴 생
버려진 땅에서 돋는 풀잎,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같은 대상은, 크지 않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외되었으나 끈질기게 살아가는 민중적 생명력의 상징일 것입니다. 국토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그런 작은 존재들이 흩어져 숨 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불 지피기와 보태기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삶을 '불 지필 일'로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꺼지지 않게 스스로 점화하겠다는 결의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숨결, 더 나아가 피와 살과 뼈까지 보태겠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비장하지만, 그것은 곧 '죽겠다'는 순교의 말이라기보다, 자기 삶 전체를 현실 속에 투입하겠다는 실천의 언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결의는 자기희생의 미담이 아니라, 끝까지 삶을 살아 내겠다는 윤리로 작동합니다.
국토를 관념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바꾼 시
이 작품의 표현들은 모두 '몸이 국토에 닿는 방식'입니다. 닳는 발바닥은 멈추지 않는 실천을, 새 살과 새 숨결은 시련 뒤의 재생을, 풀잎과 돌멩이는 소외된 존재들의 끈질긴 생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불 지필 일'은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마지막의 피·살·뼈는 국토와 공동의 삶을 위해 자기 존재 전체를 보태려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시는 국토를 찬양하는 시가 아니라, 국토를 살아내는 방식을 말하는 시입니다. 반복되는 '~할 수밖에 없다'는 말투는 우리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요구합니다. 발바닥과 숨결이라는 구체적인 감각이 국토를 관념에서 끌어내려 몸의 현실로 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조국'이라는 말이 공허해질 때마다, 그 말에 다시 체온을 불어넣습니다. 국토는 구호가 아니라, 닳고 타고 다시 살아나는 몸으로 끝내 지켜내야 할 삶의 자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조태일 ‘국토시’의 출발점이자 1970년대 민중적 서정의 강한 서시로 남아 있습니다.
* 이 작품은 하나의 독립된 시이면서도, 이후에 이어질 조태일의 ‘국토’ 시편 전체를 여는 선언적 서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