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고 짧지만 분명하게
쬐그만 것이
노랗게 노랗게
전력을 다해 샛노랗게 피어 있다
아무 곳도 넘보지 않는다
다만 혼자
주어진 한계 그 안에서 아슬아슬
한치의 틈도 없이 끝까지
바위 새를 비집거나 잡초 속이거나
씨 뿌려진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
터를 잡고
물을 길어 올리는 실뿌리
어둠을 힘껏 밀어내는 떡잎
그리고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열심히 열심히 한 댓새
세상에 그밖에는 할 일이 없어서
아주 노랗게 노랗게만 피는 꽃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 꽃
쬐그만 것이지만 그 크기는
어떤 자로서도 잴 수 없다
아 민들레!
그래봤자
혼자 가는 자의 헛된 꿈
하지만 헛되어도 좋은 꿈 아니냐
한 댓새를 짐짓 영원인 양하고
보라 저기 민들레는 피어있다
작지만 분명한 것의 당당함
화자는 척박한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풍경 속이 아니라, 발밑에 치인 듯 피어 있는 작은 민들레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짧지만 분명한 것, 남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귀한 것'을 지켜 내는 태도에 있습니다. 민들레는 세상의 잣대로 재면 한없이 작고 덧없는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빛깔로 전력을 다해 피어난다는 점에서는 그 어느 꽃 못지않게 당당합니다. 화자가 이 작은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쬐그만 것이
노랗게 노랗게
전력을 다해 샛노랗게 피어 있다
전력을 다해 피어나는 노란 꽃
'쬐그만 것이'라는 정겨운 입말 속에는 이미 화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노랗게 노랗게'를 거듭 반복하다 마침내 '샛노랗게'로 색이 한층 더 짙어지는 흐름은, 민들레의 모든 에너지가 그 색깔 속에 응축되어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특히 '전력을 다해'라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작다고 해서 적당히 살지 않고, 오히려 작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놓는 태도가 보입니다.
아무 곳도 넘보지 않는다
다만 혼자
주어진 한계 그 안에서 아슬아슬
한치의 틈도 없이 끝까지
주어진 한계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민들레는 더 넓은 자리를 탐내지 않고, 다만 혼자 주어진 한계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아슬아슬'이라는 부사어가 참으로 절묘합니다. 언제 밟힐지 모르는 자리의 위태로움과,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팽팽함이 이 한마디에 함께 녹아 있습니다.
이어지는 '한치의 틈도 없이 끝까지'는 두 겹의 뜻으로 읽힙니다. 바위틈 같은 비좁은 자리를 여백 없이 꽉 채워 내는 모습이면서, 동시에 피어나는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단 한 번의 느슨함도 없이 긴장을 놓지 않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남의 영역을 탐내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주체적인 자세가 여기서 또렷이 드러납니다.
바위 새를 비집거나 잡초 속이거나
씨 뿌려진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
터를 잡고
씨 뿌려진 자리가 바로 내 자리
이제 민들레가 직접 말을 하는 듯합니다. 바위틈이든 잡초 속이든, 민들레는 자기 자리를 불평하지 않고 그곳을 곧 '내 자리'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는 굴복이나 체념이 아니라, 운명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되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완성해 내겠다는 당당한 결의가 있습니다.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능동적인 긍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을 길어 올리는 실뿌리
어둠을 힘껏 밀어내는 떡잎
그리고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열심히 열심히 한 댓새
한 댓새의 치열한 절정
민들레가 꽃을 피우기까지의 과정을 응축해서 보여줍니다. 땅속 깊이 내려가 물을 길어 올리는 실뿌리와, 어둠을 힘껏 밀어내는 떡잎의 수고로움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 끝에 얻어 내는 시간은 고작 '한 댓새'입니다. 민들레는 여러해살이풀이라 뿌리는 해마다 다시 살아나지만, 땅 위에서 노랗게 피어 있는 절정의 순간은 닷새 남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짧은 영광인 셈입니다. '열심히 열심히'라는 반복이 가슴에 울립니다. 짧기에 오히려 더 온 힘을 다하는 것이 민들레의 태도입니다.
세상에 그밖에는 할 일이 없어서
아주 노랗게 노랗게만 피는 꽃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 꽃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 꽃
화자는 민들레가 '세상에 그밖에는 할 일이 없어서' 노랗게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언뜻 쓸쓸히 들리는 이 구절은 사실 민들레의 순결한 전념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직 꽃 피우는 일 하나에 자신을 오롯이 바치는 태도가 이 말속에 담겨 있습니다.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 꽃'이라는 구절 역시 허무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 것을 알면서도 피기를 마다하지 않는 의연함이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장치입니다.
피었다가 지는 한계가 꽃의 숙명이지만, 그 한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피어나는 용기가 이 구절의 진짜 울림입니다.
쬐그만 것이지만 그 크기는
어떤 자로서도 잴 수 없다
아 민들레!
어떤 자로도 잴 수 없는 크기
이제 시는 한 차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쬐그만 것'이라 부르던 그 꽃이, 사실은 '어떤 자로서도 잴 수 없는' 크기를 지녔다고 화자는 단언합니다. 세상의 자로 재면 작은 존재이지만,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무게로 재면 그 어느 것보다 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 민들레!'라는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시 전체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입니다. 이 한마디 안에는 경탄과 존경, 애틋함이 한꺼번에 녹아 있습니다.
그래봤자
혼자 가는 자의 헛된 꿈
하지만 헛되어도 좋은 꿈 아니냐
한 댓새를 짐짓 영원인 양하고
보라 저기 민들레는 피어있다
헛되어도 좋은 꿈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세상의 냉정한 잣대를 잠시 빌려 옵니다. '혼자 가는 자의 헛된 꿈'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민들레의 이 치열한 삶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한낱 덧없는 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곧바로 '하지만 헛되어도 좋은 꿈 아니냐'며 그 잣대를 맞받아칩니다.
여기가 이 작품의 정수입니다. 부정적 언술은 결코 허무를 인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상이 뭐라 부르든 상관없이 자기 삶을 당당히 살아 내는 태도야말로 값지다는 것을 더욱 빛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한 댓새를 짐짓 영원인 양'이라는 표현 속의 '짐짓'에는, 세상의 잣대를 의연히 모른 척하며 자신의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 내는 자의 당당함이 배어 있습니다.
마지막 행 '보라 저기 민들레는 피어있다'는 독자를 향한 조용한 초대입니다. 화자는 길게 설득하지 않고 그저 꽃을 가리킵니다. 저기 피어 있는 저 꽃의 당당함을 너희도 보라는 것입니다.
작지만 분명하게 지켜 내는 삶의 아름다움
이 시는 작고 분명한 것을 지켜 내는 일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세상은 민들레를 보잘것없다 할지도 모릅니다. 피어 있는 시간도 짧고, 자리도 초라하며, 홀로 선 처지도 외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민들레는 그 모든 조건을 가만히 끌어안은 채, 자기 자리에서 자기 빛깔로 전력을 다해 피어납니다. 그 태도가 이 시의 심장입니다.
이 작품의 묘미는 부정적인 언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대목에 있습니다. '헛된 꿈',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과 같은 차가운 말들은 허무의 고백이 아니라, 오히려 민들레의 당당함을 한층 빛나게 하는 배경으로 쓰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이 환하듯, 세상의 냉정한 잣대가 들이대어질수록 민들레의 의연함은 더욱 눈부시게 드러납니다.
이 시가 사랑받는 까닭은 화려한 수사 때문이 아닙니다. '쬐그만', '아슬아슬', '한 댓새', '짐짓' 같은 정겹고 소박한 우리말로, 오히려 가장 깊은 삶의 태도를 속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발밑에 한 송이 민들레를 피워 냅니다.
[비평 노트]
이 작품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 혹은 '낙화의 미학'이라는 두 틀 안에서 주로 읽는 듯합니다. '허무의 변증법'으로 묶어 설명하는 흐름도 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의 정조를 '허무와 그 극복'이라는 축 위에 놓지 않았습니다.
1. 이 시의 중심 태도를 '허무의 극복'이 아니라 '짧지만 분명한 것, 남의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귀한 것을 지켜 내는 당당함'으로 보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헛된 꿈', '피어선 질 수밖에 없는' 같은 부정적 언술은 화자의 진심이 아니라, 민들레의 당당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잠시 불러온 배경음입니다. 어둠을 칠해 빛을 빛내는 화법과 같습니다.
2. 민들레의 일생 전체로 읽은 '한 댓새'의 의미를 바로잡았습니다.
민들레는 여러해살이풀이고, '한 댓새'는 꽃송이가 피어 있는 절정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덧없이 짧은 생명의 애수'가 아니라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짧은 절정에 온 힘을 쏟는 의연함'의 시가 됩니다.
3. '아슬아슬', '한치의 틈', '짐짓' 같은 소박한 우리말 부사어들을 이 시의 결정적 말들로 보고 음미했습니다.
특히 '짐짓'이라는 한마디를 '세상의 잣대를 의연히 모른 척하는 당당함'으로 풀었고, 마지막 행 '보라 저기 민들레는 피어있다'를 설득이 아닌 '독자를 향한 조용한 초대'로 읽었습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브런치스토리 비회원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에 다 모아 놓았습니다.